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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남명학파
이상필유근종 사진
한국문화사 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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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차례

Ⅰ. 들머리

Ⅱ. 진주와 남명 및 남명학


1. 진주와 남명
2. 남명학의 특징

Ⅲ. 남명학파의 주요 가문과 학맥

1. 남명학파를 이끈 가문들에 대한 개황
2. 진주의 남명학파 주요 가문
1) 진양하씨
2) 태안박씨
3) 창녕성씨
4) 함안조씨
5) 그 밖의 남명학파 가문들
3. 진주의 남명학파 학맥 개요
1) 남명 정맥
2) 겸퇴계 계열
3) 겸율곡 계열

Ⅳ. 진주의 남명학파 인물 및 학문 성향

1. 수우당 최영경
2. 각재 하항
3. 부사 성여신
4. 송정 하수일
5. 능허 박민
6. 겸재 하홍도
7. 지명당 하세응
8. 서계 박태무
9. 태와 하필청과 그 문인들
10. 월고 조성가
11. 회봉 하겸진

Ⅴ. 맺음말

도움받은 글

저자 소개 2

李相弼

경상국립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이다. 1955년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났다. 1981년에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를 취득했다. 1998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한문학전공 문학박사를 취득하였다. 1992년부터 2020년까지 경상대학교 교수로 근무했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경상남도 문화재위원을,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등 논저 및 논문 50여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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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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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사진가로 대학에서 러시아학을 전공했으며 「아, 아르바뜨!」, 「9288, 그 여름의 꿈」, 「겨울 꿈」 등 러시아 사진 전시회를 했고 2023년에는 「진주 근대문화유산」과 「자작나무 숲에서 놀다」로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문화재와 건축물 사진을 주로 찍고 틈틈이 러시아를 다니며 러시아와 러시아인을 찍고 글을 쓰며 가끔 러시아의 문화와 사진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참여한 책으로는 『복자 정찬문』, 『진주성 촉석루』와 『조선 선비들의 답사일번지』, 『진주의 남명학파』 등이 있으며 각종 사보나 사외보에 다양한 사진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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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80쪽 | 140*190*20mm
ISBN13
9791169190466

책 속으로

진주(晉州)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이 만년에 지리산 아래 덕산의 산천재에서 도학(道學)을 강론한 이래 도학에 뜻을 둔 전국 학자들의 관심 대상 지역이 되었다. 산천재는 서울에서 보면 골짝 가운데서도 골짝에 속하는 곳이지만 토정(土亭) 이지함(李之?, 1517-1578) 같은 이도 찾아온 적이 있고,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 같은 이도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예를 갖추어 제자가 되었다.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뛰어난 인물이 있으면 그를 직접 만나보고 그에게서 깨우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늘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남명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고, 그래서 조선후기 실학파를 일으킨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이 그의 저술 『성호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천여 년 세월이 흐른 뒤 성스러운 우리 조선이 건국되었고 중세 이후에는 퇴계가 소백산 아래에서 태어났고 남명이 두류산 동쪽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모두 영남 땅인데, 상도(上道)는 인(仁)을 숭상하고 하도(下道)는 의(義)를 주장했다. 유학의 교화와 기상 및 절개가 마치 바다가 넓고 산이 높은 듯하였다. 비로소 문명이 극에 이르렀다.

중원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퇴계와 남명이 태어나서 우리 문명이 극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는 이러한 언급은, 남명의 학문과 그가 이룬 정신세계의 깊이를 객관적이고도 적확하게 이해한 표현이다.

그러나 남명학파는 그 첫 번째 계승자인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 1536-1623)이 계해정변(癸亥政變)으로 집권한 인조 정권에 의해 적신(賊臣)으로 몰려 처형당함으로써 정치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고, 이후 100여 년 뒤 1728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 때 경상우도의 남명학파가 이에 가담함으로써 설상가상의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가 1796년 정조가 친히 남명에 대한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내게 함으로써 다시 학풍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200여 년 동안 위축되어 있던 사기가 올라 그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기에 이르렀다.
남명학파가 그 사이에 어떻게 계승되고 변화되었는지 그 전개 모습을 그려보되,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남명학파 주요 가문과 계해정변 이후 변화된 여러 학문 계열에 따른 학자의 존재 양상을 정리하고, 그 주요 인물이 남명학파의 학문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Ⅰ. 들머리」중에서

출판사 리뷰

성호 이익은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이 지리산과 소백산 아래에서 태어난 이후 우리나라가 문명의 극에 이르렀다고 언급하였다. 남명은 만년에 지리산 아래 진주 덕산으로 들어가 조용히 지내면서 학문을 더욱 온축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전국에 명성이 더 알려져 이후 10여 년 동안 제자들이 줄을 이어 문하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목릉성세(穆陵城勢)로 알려진 선조 임금 시대에 덕계 오건, 약포 정탁, 수우당 최영경, 내암 정인홍, 각재 하항, 동강 김우옹, 한강 정구, 부사 성여신, 망우당 곽재우 등 쟁쟁한 인물들이 그의 문하에서 나와, 한편으로는 정계에서 한편으로는 학계에서 남명의 학문과 정신세계를 나라 안에 크게 떨쳤으며, 임진왜란을 당해서는 그의 문인 정인홍, 김면, 곽재우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문인과 재전 문인들이 총궐기하여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킴으로 인해 결국은 왜적이 물러가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선조 임금이 ‘산천초목(山川草木)도 그대의 이름을 알고 있다’던 그 정인홍은 선조에 이어 광해군의 예우를 극진히 입었으나 인조에 의해 일어난 계해정변(癸亥政變)으로 인해 적신(賊臣)으로 몰린 뒤 300여 년 동안 신원(伸?)이 되지 못함으로 인해 남명학파는 정치적·학문적으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더구나 그 100여 년 뒤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에 경상우도 지역 남명학파 인물들이 참여함으로 인해 지역적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지명당 하세응 같은 이가 학문적으로 중심을 잡고 남명의 학문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왔기에 남명학파가 진주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까지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그 명맥을 굳건하게 이어올 수 있었다.

이번에 진주문화연구소에서 [진주문화를 찾아서]라는 기획시리즈의 하나로 본 주제를 선정하여 필자에게 의뢰함으로 해서 이러한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목숨을 걸고 정신을 수양하는 자세와 의리에 입각한 처세 태도, 현실을 바탕으로 합리와 실질을 추구하는 남명의 학문 정신이 진주는 물론 경상남도, 나아가 우리나라 전역에까지 광범위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알려진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한층 고양될 것임은 물론 정치나 경제의 측면에서도 세계 제일의 경지에 이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진주문화연구소의 김중섭 소장과 편집위원 김준형 명예교수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함과 동시에 독자 여러분의 진심 어린 질정을 바라마지 않는다.

2022년 8월 27일 문산 연묵서사(淵?書舍)에서

이상필은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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