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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문화를 찾아서]를 새롭게 시작하며
머리말 1. 1910년대 진주문인 2. 1920년대 진주문인 3. 1930년대 진주문인 4. 1940년대 진주문인 5. 1950년대 진주문인 6. 1960년대 진주문인 7. 1970년대 진주문인 8.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반의 진주문인 9.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10여년 진주문인 10. 마무리 |
하정昰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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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명기
진주문인들의 활동은 여명기인 1910년대에 지역신문 《경남일보》를 통해 발표되는 개화기소설로부터 비롯된다. 《경남일보》는 1909년 10월 15일 경남 진주에서 창간된 국내 최초의 지방신문이었다. 제작자는 장지연, 초대사장은 김홍조, 2대사장은 강위수였다. 《경남일보》에 실린 5편 개화기 소설은 박영운이 발표한 「교기원」, 「옥련당」, 「금산월」, 「부벽완월」, 「운외운」 등이다. 그런데 작품은 지역신문 《경남일보》에 실리지만 작가는 진주 사람이 아닌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면 출신 ‘소설기자’이다. 본고에서는 작가가 진주지역 밖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지역의 신문지상에 작품을 발표하여 지역문학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이어 한국문학사 정립에 기초를 세웠을 경우 진주문학의 범주에 넣고자 한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박영운은 1875년 의주 출생으로 의약분야에 전문 지식을 갖춘 의생이었다. 기독교인이고 부인은 주강숙이라는 개화여성이었다. 그는 의주신사회(義州新社會)를 조직하여 신학문과 지식을 탐구하고 정치와 법률을 강구하고 장차 학교를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사진 박람원을 설립하고 서간도 목민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일찍부터 개화에 눈을 뜨고 근대적 서구문물을 도입하여 국내에 소개했던 개화인이었다. 이런 본격적인 개화인이 진주의 문단 여명기에 한 사람의 선구자로 지역에 나타난 것이었다. 2) 지역에 선보인 개화기 소설 나라 잃은 경술년 이후 1년 이상이 지난 뒤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지 《경남일보》에 개화기소설(신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경남일보》 1911년 12월 13일부터 25일까지 사보가 다음과 같이 게재되었다. 오늘의 표기법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본사에서 각종 소설꺼리 이야기 될 만하고 자미 있는 사적을 많이 모집을 이에 포고하오니 만약 1개월 15회 게재할 많은 소설건을 보내 주시면 1개월 본보를 무대금으로 발송하겠사오니 강호제군은 참조하심을 삼가 바람. 경남일보사 사고.” 바로 이 무렵 박영운의 「교기원」의 연재가 시작되었다. 사고를 보고 박영운이 응모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박영운이 《경남일보》 소설기자가 된 것이다. 소설기자라는 기자직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편의상 해당 연구자가 붙인 이름일 것이다. 박영운의 소설 발표지면이 《경남일보》로 거의 국한되고 그 영향력이 한국 개화기 소설사에 지대한 입지가 인정되는 것이므로 이 작가의 진주문인으로서의 역할에 주목할 수 있다. 박영운 작가 작품의 판본별 분류를 하면 다음과 같다. 「교기원」, 「옥련당」, 「금산월」, 「부벽완월」, 「운외운」(1912.1.6.-1913.7.2.) 『금지환』(동양서원), 『옥련당』(박문서관), 『운외운』(춘포약방), 『공산명월』(박문서관) 위의 분류를 참고하면 박영운의 총 발표작 7편 중 《경남일보》에 5편, 단행본 출판으로 2편이 추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알려진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운외운」은 의주 성중에 사는 강지사의 딸 수영과 의주 인근의 용천 고을에 사는 고참봉의 아들 정백 간의 혼례를 전후한 이야기이다. 나이 어린 정백과 혼례를 치른 수영은 시어머니로부터 견디기 힘든 음해를 당하게 되며, 끝내 우물에 투신하여 자살을 시도하지만 어느 노부부에게 구조된다. 그 후 수영이 이곳저곳으로 떠돌면서 겪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꾸며져 있다. 단행본으로 나온 『공산명월』(2019)은 박초시와 백경옥 부부가 나쁜 계략에 걸려서 겪는 기구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중심 공간 역시 의주군이다. 여주인공 백경옥의 투신 장소도 압록강으로 설정되었다. 이 소설에는 의주와 주변 지역의 물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이 두 소설에서 보면 개화기시대의 시대상이 가정은 가정대로 불안정한 가부장제의 흔들림을 보이고 사회는 사회대로 계략이나 불평등이 지배하는 시대상을 보인다. 작가는 이런 시대의 전통 악습을 깨고 바르고 정의롭고 문명한 새시대를 갈구하고자 그 시대 그 소설을 선택했던 것이다. ---「1. 1910년대 진주문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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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진주문화연구소 기획으로 두 번째 원고를 쓰게 되었다. 첫 번째는 『진주 팔경』이었고 두 번째는 『진주문인』이다. 『진주문인』은 어떤 차례로 써야 할까? 진주문학 또는 진주문인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누구, 누구가 있으니 놀랍지 아니한가요?’하고 소개해 주는 책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문인들이 활동했던 역사를 쉽게 기술해 달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출중한 문인에 거룩한 결실을 이룬 진주의 문학과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 되면 책이 갖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되리라. 그러나 필자는 50여 년 시를 창작하고 가르치는 일에 매달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진주 문단이나 문인들에 대한 이해도도 약하고 그 이론적 비평적 넓이와 깊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 적이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필자는 필자가 바라보고 익혀온 주변을 필자 나름의 교양과 창작적 잣대로 근현대 진주문학의 흐름과 문인들을 20세기와 21세기 20년에 걸쳐서 기술해 보고자 한다. 진주의 문학은 1910년대 진주에서 발행된 『경남일보』에 실린 ‘개화기소설’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실질로는 1920년대 한국 동인지 문단시대에 여명의 닻을 올린다고 볼 수 있다. 진주는 경상남도 수부도시의 역할을 수백 년 해온 역정이 있어서 지방신문의 효시라든가 형평운동의 온상이었다든가 농민운동의 출발지라든가 소년운동의 발상지라든가 하는 국중 기록이 다채한 터에 그중 소년운동의 발상에 때맞춘 소년운동 지도자의 지도와 아동문학이 연접하는 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이 주목되었다. 새싹회 멤버이자 진주 소년운동 지도자인 강영호가 진주 아동문학의 씨를 뿌린 것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진주는 1920년대 동인지 문단시대에 걸맞게 지방에서 처음으로 1928년 『신시단』이라는 시잡지가 나오고 1940년대와 1950년대는 『영문』이라는 문예지가, 1970년대 1980년대에는 『문예정신』이라는 문예지가, 2011년에는 『시와 환상』이라는 계간 시지가 각각 나옴으로써 20세기 진주는 중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주 스스로의 텃밭에 문예지를 가지겠다는 각오로 문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다 그때그때 동인지들이 나와, 소그룹이 끊임없이 결성 되어 지면의 갈증 해소를 시도하고 있었다. 문인들이 전반적으로 사회운동이라는 큰 운동의 테두리 안에서 광복 이후는 우리나라 최초로 축제를 문인 연대로 만들어낸 점은 기록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 책에서 말하는 ‘진주문인’이라는 범위를 문학사 기술 편의상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정리했음을 밝힌다. 진주문인이란 첫째 진주에서 태어나 활동한 문인(주요 출향문인 포함), 둘째 진주에서 학교를 다닌 문인, 셋째 진주에서 직장을 다닌 문인, 넷째 진주 인근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진주문학에 영향을 끼친 문인, 다섯째 진주지방 신문에 투고한 사람으로 우리나라 문학 사상 기초를 이룬 문인 등 다섯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사람으로 제한했다. 개념이 모호한 대목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범위로 정하고 기술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앞으로 이 책을 기울 기회가 올 때는 좀 더 보충된 자료로 지금의 미비점을 채워나갈까 한다. 독자 여러분의 채찍을 기다린다. 강희근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