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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프롤로그 기다림이 마르길 기다린다 _장 라신, [페드르] 나 자신으로 사랑받길 원해요 _에드몽 로스탕,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너와 나, 이별의 ‘사이’ _안톤 체호프, [벚꽃 동산] 엄마, 괜찮아 _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예르마] 난 외로워, 무척이나 _테네시 윌리엄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너에 대한 나의 기억 _루비 래 슈피겔, [마른 대지]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겠는가? _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 광화문 사거리를 울면서 걸었다 _피터 섀퍼, [아마데우스] 시절 인연처럼 _배삼식, [3월의 눈] 참고 문헌 |
최여정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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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하루만 산다. 같은 희곡, 같은 무대, 같은 배우일지라도, 어젯밤 보았던 연극이 오늘과 같을 수 없다. 내겐 사랑도 그랬다. 어제의 사랑이 오늘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프롤로그」중에서 이 비극에 불을 붙였을 작은 불씨 하나를 찾아 끄집어내본다. 처음부터 계획된, 양아들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아프로디테의 저주가 아니라 오랫동안 집을 비운 남편을 향한 페드르의 슬픈 기다림이다. 여자는 사랑의 믿음이 흔들릴 때 가장 위험하다. 에우리피데스도, 세네카도, 장 라신도 쓰지 않았지만, 페드르는 아마도 사랑했던 남자의 부재와 배신에 이미 오랫동안 신음했을 것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들리는 소식은 바다 건너 멀리 어느 곳에서 남편의 영웅적인 행적 뒤에 이어지는 그의 여자들 이야기였다. ---「기다림이 마르길 기다린다 _장 라신, [페드르]」중에서 빈 무대에 조명이 켜지면 보이는 스탠딩 마이크 하나. 그 공간을 채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이제부터 온전히 보게 될 건, 1897년 파리에서 발표된 희곡 속 인물들이 사랑하고 버림받고 외로워하는 순간. 이제부터 온전히 듣게 될 건, 희곡 속 넘실대는 언어들이 지금 살아 숨 쉬는 순간. 바로 이것이 연극의 마법이다…(중략)…NT Live로 중계된 이 [시라노]의 가장 독창적인 시도는 200여 년 전 초연한 이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시라노의 큰 코를 떼어 버린 것이다.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큰 칼을 휘두르며 싸우던 카데(cadet, 총사)들은 워커와 점퍼 차림으로 빈 무대에 등장해서 스탠딩 마이크를 잡고 랩 배틀을 한다. ---「나 자신으로 사랑받길 원해요 _에드몽 로스탕,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중에서 희곡에는 ‘사이’라는 지문이 있다. 대화 중간의 말 없음, 이어지는 행동 앞의 잠시 멈춤,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사이. 그 수많은 ‘사이’들 중, 로파힌과 바랴의 이별 장면의 사이가 가장 쓸쓸하다. 왜 날 떠나는 거니, 그 이유가 미치도록 궁금할 때가 있었다. 그 이유를 끊임없이 채근해서 들으려 했다. 하지만 사랑에 이유가 없듯, 이별에도 뭐 그리 대단한 이유가 있을까. 싸우고, 화해하고, 이별을 말하며 나누었던 수많은 말들은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서로의 마지막을 진심으로 예감할 때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안부를 묻고, 침묵할 수 있었다. 안녕, 이라는 인사도 필요 없다. 두 사람은 그저 바라본다. ‘사이’. ---「너와 나, 이별의 ‘사이’ _안톤 체호프, [벚꽃 동산]」중에서 예르마(Yerma). 천천히 이 불행한 여자의 이름을 불러 본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저 잔인한 태양이 떠올라 사방의 대기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지상의 모든 물기를 말려버리면, 지평선을 삼킬 듯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지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스페인어로 ‘황무지’라는 의미를 가진 이 저주받은 것 같은 이름은, 한 여자의 말라 버린 자궁과 끝내 시들어 버리는 결혼 생활을 예고한다. 왜 예르마는 그토록 아이를 원했을까. ---「엄마, 괜찮아 _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예르마]」중에서 나는 그때 무얼 두려워했던 걸까. 혼자 있고 싶어 했던 엄마를? 가끔 들리던 엄마의 한숨을? 나는 엄마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엄마는 엄마로 살았던 삶이 행복했을까?…(중략)…엄마는 침묵 속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나를 사랑했다. 때론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자책감으로, 때론 꿈을 포기한 아쉬움으로. 그 모든 감정이 그리는 그림자를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 괜찮아_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예르마]」중에서 두렵지만 끝난 사랑은 놓아두자. 다행인 건 영원한 이별이란 없다는 것. 삶이란 만나고 헤어지고, 또 누군가를 만나는 기적의 순환. 그래서 우리는 이 외로운 별에서 살아간다. ---「난 외로워, 무척이나 _테네시 윌리엄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중에서 아버지의 헝클어진 뒷모습을 본다. 낮잠을 한숨 주무시고 나오셨나. 납작하게 눌린 아버지 뒷머리에 초가을 오후 햇살이 내려앉는다. 한 살배기 아기 정수리에 소용돌이치듯 솟아난 보드랍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같네. 눈에 띄게 헐렁해진 아버지 허리춤 사이로 바람이 지나고, 당신의 남은 시간들이 흘러간다. 설렁, 스치는 가을 바람에 휘청이는 아버지를 붙들러 뛰어간다. 아버지가, 깃털 같다.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겠는가? _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중에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했나. 기뻤고, 슬펐다. 원했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서 슬펐고, 원했던 곳에서 일하게 되어 기뻤다. 선택의 결과가 숫자로, 또 합격과 불합격으로 나뉘어서 통보를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간편한 일인가. 답은 명쾌했으니까. 하지만 사랑이라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나니 늘 두려웠다. 난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우린 언제까지나, 오래오래, 사랑하고, 행복할까. ---「시절 인연처럼 _배삼식, [3월의 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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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뻔한 희곡, 그 무수한 변주
사람들은 늘 사랑의 시작을 궁금해하지만, 저자 최여정은 지나간 사랑의 끝을 쫓으며 글을 썼다. 사랑을 이야기하기로 하자 당연한 듯이 연극이 따라 나왔다. ‘찐사랑’은 바로 나야, 라는 듯이. 같은 희곡으로 같은 배우가 같은 무대에 서도 매일의 연극이 다르듯이, 사랑도 그렇다. 고전 희곡이 영원히 그대로일 것 같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무대와 연출에 따라 변하듯 사랑도 그렇다. 저자는 이별의 아픈 시간을 겪으며 연극 속에서 하나씩 사랑을 길어 올렸다. 사랑과 헤어짐, 결혼과 이혼, 기다림과 외로움. 아프고 시린 사랑도, 사랑의 사랑했던 친구도, 아버지와 엄마도 연극을 통해 떠올리며 바라본다. 사랑으로 방황했던 경험이 있는 이에게 사랑은 달콤한 행복의 약속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용기를 내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는 사랑을 마주하게 된다. ·지적이고 예술적인 ‘풀코스의 파인다이닝’ ·가슴이나 머리로 짜내지 않고 배로 써내려간 듯한 글맛 공연·문화 기획자이자 마케터, 경기도문화의전당 공채 1기로 시작해 대학로 연극열전을 거쳐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로 자리를 옮겨가며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쌓아온 탄탄한 경험과 지식이 책 속에서 화려한 성찬으로 펼쳐진다. 지적인 사유와 예술적 통찰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 권의 책과 고정 칼럼으로 다져진 최여정의 글맛이 쉬지 않고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시냇물이 흐르듯 빠르다가 느려지고 굽었다가 다시 쏟아지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와 함께 연극뿐 아니라 책과 영화, 무대와 작가와 배우를 오가며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다시 사랑하게 된다. 저자는 때로는 냉소적이다가 때로는 연민하고 안타까워한다. 독자와의 거리 없이 훅 다가서며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펼쳐두었던 감정을 매만지며 정돈한다. · 아홉 편의 연극과 전하는 위로와 용기 이 책에는 차례로 제시되는 아홉 편의 연극보다 더 많은 작품이, 그 작품보다 더 많은 인생과 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서투른 십 대의 사랑도, 뜨거운 열정과 체념, 격정과 분노,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부모의 모습도, 나이든 부부의 익숙한 편안함도 우리의 모습이다. 지나간 사랑에 혼란스러워하며 글을 시작한 저자는 이별을 받아들이며 차분하게 감정을 정리한다. 연극 속 인생이 다양하듯, 연극보다도 더 가열차게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괜찮아, 라고 말한다. 이제 나는 용기를 낸다. 사랑의 시작에 귀 기울일 용기, 다채로운 사랑 앞에서 등 돌리지 않을 용기, 사랑이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완성된다는 깨달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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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얇아지고 사고는 쪼개지는 시대에 모처럼 오케스트라의 종합 편성을 가진 글을 만나는 반가움. 지적이고 예술적인 ‘풀코스의 파인다이닝’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이런 생각의 근육을 가진 이가 우리 다음 세대에 있고 더구나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젊은 친구라니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한때 ‘벚꽃 동산’의 주인이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시절, 규범과 도리에 진심인 아버지와 그저 모성일 수만은 없었던 엄마, 그리고 나의 길고 짧은 사랑들과 다시 다가오는 사랑, 최여정 40년 여정의 모자이크를 완성해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 조선희 (작가 | 『세 여자』,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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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일까. 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이런 의문으로 책을 펼쳤다. 이토록 섹시하면서도 지적인 책이라니. 사랑이라고 소리 내어 읽고 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사랑이 찬란하고 눈부신 달콤함만이 아님을 알게 된 오늘이라서일까.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녀의 글을 따라 연극을 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다. 글이 참 달지만 시큰거려 마음에 손을 대고 “괜찮아.” 하고 말해 본다. 그새 마음이 환하고 해사하게 피어났다. 참 봄꽃 같은 책이다. 온 힘을 다해 생을 사랑하고픈 이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그래도 사랑. - 윤정은 (작가 |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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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딱 읽었습니다. 산문집을 이렇게 단숨에 읽어 보기도 처음입니다. 독자의 마음을 속속까지 읽어 가며 씁니다. 연극을 깊이 사랑해서일까요. 말을 그만두어야 할 때, 지적으로 인용을 해야 할 때, 감상에 잠겨야 할 때를 제대로 압니다. 그래서 구애됨이 없이 막 읽힙니다. 시냇물이 흘러가네 싶을 정도의 천연 그대로라서 지루할 새가 없습니다. 길어 올린 글들은 가슴이나 머리로 짜내지 않고, 배로 쓴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와서 부딪히는 말맛과 말의 힘에 저릿저릿해집니다. 솔직하면서 풋풋하고, 세련되었으나 유기농스럽습니다. 단언합니다. 이 산문집을 읽고 나면 최여정과 기필코 와인 한 잔을 하면서 수다를 떨고 싶으실 겁니다. 문득 그녀가 소설을 쓰면 어떨까 지극하게 궁금해졌습니다. 마지막 챕터를 덮는 순간, 제 마음을 곧장 이해하실 겁니다. - 고선웅 (연출가 | 서울시립극단 예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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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어쩌면 가장 뻔한 희곡은 누가, 언제, 누구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지에 따라 매번 다른 작품이 된다. “같은 희곡, 같은 무대라도 어젯밤 보았던 연극이 오늘과 같을 수 없는” 연극처럼. 40대 여성 작가 최여정의 버전은 청춘처럼 마냥 달뜨지도, 노인처럼 완고하게 단념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고유하다. 연극과 사랑을 수려하게 포개 놓은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는 찬란했기에 더 처절했던 지난 사랑이 생생하게 ‘상영’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최윤아 (한겨레신문 기자 |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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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만지고, 냄새 맡기 위한, 객관적 거리 따위는 없다. 최여정은 그냥 안는다. 아주 강하고, 때로는 처절한 끌어안음. 그는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이 무대 위의 ‘극’인지, 자기 가슴의 ‘혼’인지 굳이 구분하지도 않는다. 다만 무대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서 무수한 크랙을 내곤 거기에 유동하는 무엇인가를 들이붓는다. 사랑? 그래 사랑! 최여정의 사랑은 마치 ‘자성유체(ferrofluid)’ 같달까. 나노 단위로 섬세하게 부서진 쇳가루는 액체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영원히 부유한다. 말하자면 읽는 자의 눈을 액화해 버리는 문장. 그의 문장은 순식간에 스며들어 누구도 쉽게는 예상할 수 없는 모양을 만든다. 우리가 사랑하려는 모든 것의 모양. 그게 연극이든, 인생이든. 여기까지 쓰고 나니 아무것도 못 쓰겠다. - 김성신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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