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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창조한 생텍쥐페리의 세계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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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사
사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앙투안 갈리마르, 갈리마르 출판사 대표)
파리의 어린 왕자 (올리비에 가베, 파리 장식미술관 관장)

동화 같은 어린 시절 _ 어떤 사람들은 늙지 않고 시인으로 남는 법을 안다
비행기 조종사 작가 _ 비행기에 대한 이야기를 쓸 거야.
인물의 탄생 _ 나는 너무 당황했다!
뉴욕의 어린 왕자 _《어린 왕자》는 베빈하우스의 커다란 불에서 태어났습니다.
원고에서 출판으로 _ 그렇게 꽃 한 송이가 태어났다….
어린 왕자 속 작가의 초상 _ 이것은 저자 자신이 그린 초상이다.

《어린 왕자》 깊이 읽기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와 그의 어린 왕자 (안 모니에 반리브)
본질적인 것을 보이게 만들다 (알방 스리지에)

저자 소개2

원저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관심작가 알림신청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입관 되었으나 비행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1921년 4월에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 사업도 하였다. 1923년 파리의 회사에 회계사로 입사하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다가 트럭 회사의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입관 되었으나 비행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1921년 4월에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 사업도 하였다. 1923년 파리의 회사에 회계사로 입사하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다가 트럭 회사의 외판원으로 다시 입사한 후 틈틈이 비행 연습을 한다.

1929년 장편소설 『남방우편기(Ourrier sub)』로 작가로 데뷔하였다. 두 번째 소설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상을 수상, 이후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의 대지』는 같은 해 미국에서 『바람,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번역·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40년에 나치 독일에 의해 프랑스 북부가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동화가 삶의 유일한 진실임을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던 생텍쥐페리는 이 시기에 『어린 왕자』를 집필했고, 1943년 미국 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불문판과 영문판(캐서린 우즈 역)이 함께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46년 프랑스 Gallimard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35년 비행 도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바탕으로 쓰였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는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 작품이다.

생텍쥐페리는 1943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공군 조종사로 활동했으며, 1944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군용기 조종사로 지냈다. 1944년 33비행정찰대가 이동하고 이미 5회의출격을 초과하여 8회 출격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격하기로 한 7월 31일 오전 8시 반, 정찰 비행에 출격한다. 대전 말기에 정찰비행중 행방불명 되었다. 1944년 7월 31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짐작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항하여 오는 길에 코르시카 수도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해 전사하였다고 한다. 유작 "성채I(tadelle)”는 이후에 친구들이 생텍쥐페리의 녹음본과 초벌 원고를 정리하여 1948년 발표되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다른 상품

스물다섯 살에 번역을 시작했고 서른이 넘어 전업으로 번역을 하게 되었으며 어느덧 번역 일을 하지 않았던 세월보다 이 일을 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더 긴 출판번역가. 서강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과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 당시 종로구 사간동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을 드나든 것이 계기가 되어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프랑스 문학에 매력을 느껴 대학원에서 계속 공부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 프랑스에도 잠시 다녀왔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대학원 재학 시절 처음 발을 들였던 번역 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직업으
스물다섯 살에 번역을 시작했고 서른이 넘어 전업으로 번역을 하게 되었으며 어느덧 번역 일을 하지 않았던 세월보다 이 일을 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더 긴 출판번역가.

서강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과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 당시 종로구 사간동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을 드나든 것이 계기가 되어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프랑스 문학에 매력을 느껴 대학원에서 계속 공부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 프랑스에도 잠시 다녀왔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대학원 재학 시절 처음 발을 들였던 번역 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유학도 잠시 다녀오고 회사도 잠시 다녀보고 하면서 출판번역이야말로 나의 적성과 라이프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27년 차 출판번역가로서, 단어 몇 개로 이루어진 유아용 서적에서부터 세계적인 학자의 저서들까지 누구보다 다양한 책을 다루어왔다. 번역가는 정적인 직업이지만 생각지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대 이상의 보람을 느끼는 과정은 꽤 역동적이기도 하다. 업계의 사정은 27년 전보다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다른 직업을 택했더라면 지금 누리는 이 평온한 만족감이나 지적 자극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옮긴 책으로는 『돌아온 꼬마 니콜라』,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모두가 세상을똑같이 살지 않아』, 『아노말리』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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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19일
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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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154.05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4만자, 약 4.2만 단어, A4 약 88쪽 ?
ISBN13
9791168129399

출판사 리뷰

“나는 나의 어린 시절에서 왔다.”
평생 어린 시인으로 남은 생텍쥐페리의 특별한 동화


《어린 왕자》의 미국판과 프랑스판 교정쇄에서는 헌사를 찾아볼 수 없다. 생텍쥐페리는 마지막까지 책의 첫머리에 담길 헌사를 고민했고, 결국 편집 막바지에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썼다. 이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어른에게 헌정한다는 것에 대한 난처함을 모면하기 위한 표현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은 생텍쥐페리가 놓은 문학적 장치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는 《어린 왕자》를 어린이를 위해 썼다고 했지만, 처음부터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시절이 마치 어떤 장소인 것처럼, 자신은 ‘어린 시절에서 왔다’라는 표현을 곧잘 썼다. ‘출신지’는 우리의 깊숙한 정체성을 규정하는 곳이고,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생텍쥐페리에게 있어 ‘어린 시절’은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영원한 그의 출신지이고, 그는 이를 잊지 않은 것이다. 예술가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생텍쥐페리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에는 그가 어머니에게 보낸 몇 통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카사블랑카 복무 후 쓴 1921년 편지에는 소행성 B612의 작은 의자를 연상시키듯 “작은 초록색 의자를 끌고 다니던 보잘것없는 아이였을 때와 똑같이”라는 문구를 썼다. 또 1930년 편지에는 “어릴 적 지어낸 말과 놀이의 세상, 아이들의 추억으로 가득한 세상이 다른 세상보다 한없이 진실해 보였다”는 말로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늘 ‘어린이였음을 잊지 않은 어른’은 자연스럽게 《어린 왕자》에 행복한 어린 시절에 대한 암시를 가득 채우며 어른에게 말을 건다.

사람들은 어릴 때 읽었던 《어린 왕자》를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읽을 때마다, 그리고 나이, 시기, 때로는 장소에 따라 다른 울림을 준다고도 한다. 이는 애초 생텍쥐페리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해 《어린 왕자》를 썼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출발점을 망각한 어른에게 보내는 특별한 메시지다.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
최초 공개 자료와 미수록 삽화, 편지의 숨은 의미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를 위해 대중에게 공개된 적 없는 뉴욕 모건도서관?박물관의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예외적인 수채화들이 발견됐다. 하나는 망치를 든 인간의 손을 어린 왕자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난 장면이거나, 이후 조종사가 꽃의 존재를 알게 되는 장면으로 유추된다. 《어린 왕자》에서 조종사는 어른으로서의 의식을 대변한다. 결국 최종본에는 삽입되지 않은 이 삽화를 통해 생텍쥐페리가 초반에는 좀더 적극적으로 ‘어른’을 드러내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어린 왕자가 인간과 함께 있는 수채화도 볼 수 있다. 어린 왕자를 반기는 기색이 전혀 없는 부부의 모습은 낯선 것을 대하는 어른의 태도와 다름 없다. 그러나 책에는 수록되지 않은 것에서, 이런 직접적인 방식은 이야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텍쥐페리의 판단을 읽을 수 있다.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는 생텍쥐페리와 부인 콘수엘로의 원만하지 않았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어린 왕자》를 구상하기 훨씬 전인 1930년, 생텍쥐페리는 부인 콘수엘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보물을 품지 못하는 우울한 아이’로 묘사한다. 부부는 약 7년을 살다가 헤어졌고, 생텍쥐페리가 미국에 온 후 재결합했지만,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혼란스러웠던 부부의 삶은 일찍이 작가에게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품게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어린 왕자》는 보아뱀이 맹수를 집어삼키는 그림과 함께, 조종사가 여섯 살 때 읽은 책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초기 원고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라는 조종사의 고백이 첫 문장이었다. 그리고 조종사가 그린 배, 보아뱀, 비행기를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후 자신의 그림을 알아봐주는 어린 왕자를 만난 조종사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을 테지만, 생텍쥐페리는 1장을 완전히 수정했다. 이 외에도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에만 실린 방대한 자료는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을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가능한 한 많은 초상화를 그려볼 것이다.”
오랜 시간 고치고, 연습하고, 고민하는 천재의 결과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많은 어린 왕자의 그림 중 ‘어린 왕자의 초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명한 그림이 있다. 어린 왕자가 옥색과 붉은 색으로 된 망토를 입은 모습으로, 미국 초판 인쇄 이후 자료 보관처에만 있어서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가, 드디어 색상이 복원되어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에 수록되었다. 이외에도 초판의 표지, 자기 행성의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등 책에서는 우리가 아는 다양한 어린 왕자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의 모습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준비 노트와 많은 양의 소묘 및 습작이다. 어린이의 얼굴을 다채로운 형태로 연습하기도 하고, 날개 달린 어린 왕자를 그려보기도 한다. 여우의 자세를 잡기 위한 것인지 개의 동작들을 그리기도 하고, 양, 우물, 꽃 등 어린 왕자와의 만남에서 중요한 단어들을 휘갈겨 써놓기도 했다. 생텍쥐페리가 출판사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우리는 1942년 10월 말에는 그가 출판사에 원고와 삽화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준비 노트와 습작 들은 1942년까지 계속된다. 즉, 마지막까지 마음에 드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계속 쓰고, 그리고, 보완해간 것이다. 《어린 왕자》에서 조종사는 사하라 사막에서 사고를 당해 홀로 6년 동안 지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뉴욕 모건도서관·박물관의 원고에는 4년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최종 편집 시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생텍쥐페리는 이 작품에 자신을 전적으로 담아야 했고, 그는 《어린 왕자》의 시간적 배경으로부터 6년 전에 리비아 사막에서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잘 될지는 정말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보면서 모색한다”라고 했다. 우리는 그를 ‘천재’라고 여기곤 한다. 천재니까 이런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말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 속 자료와 그의 인생을 되짚어보면,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몰두하고 치열하게 고뇌하면서, 더 나은 작품을 쓴 노력가다. 《어린 왕자》가 80년을 한결같이, 전 세계의 어린이와 어른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된 이유를 우리는 드디어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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