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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 2023 대한민국,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 페미니즘과 진보주의 그리고 아마추어리즘 - 청년의 미래 - 어쨌든 새로운 세대는 오고 있다 2. 페미니즘이 바꾸어 놓은 사회 분위기 - 과거로 돌아갈 수도,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다 - 페미니즘 문화혁명 - 정상 가족과 페미니즘 - 진정한 주체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고민해야 한다 -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이다 3. 2016-2018 촛불혁명의 미학을 기억하는가 - 촛불 광장의 추억 - ‘민주적 공론장’의 양가성 - 촛불혁명과 페미니즘 - 의도되지 않은 파시즘의 출현 - 문재인 정부의 짧은 황금기와 부조리한 추락 - 나는 안희정 캠프의 막내, 마지막 참모였습니다. 4. 2018년 3월 5일, 안희정 사건 - 2018.3.5. 인터뷰 당일 - 인터뷰 이후 며칠 - 천사와 악마의 환영들 속에서 - 진실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다 - 안희정 사건을 둘러싼 진영논리와 정치적 이슈들에 대하여 - 당시 정치상황에 관하여 안희정 지사와 주고받은 서신들 5. 정치적 미투, 가장 고요하고 가장 잔인한 광풍 - 어느 여성계 인사와의 대화 - 피해자다움과 2차 가해 논쟁에 대하여 - 페미니즘은 인문학이다 - 피해자 중심주의, 성인지 감수성, 2차 가해 개념의 본질적 의미와 오.남용 양상에 대하여 - 헛 똑똑이 나라 - 진보주의의 아이러니 - 진보주의의 영웅들을 추억하며 6. 퇴행하는 사회를 저지해야 한다 - 잘못된 방향으로 쏘아진 정의의 화살 - 진보주의와 진보정신, 빈사 상태에 빠지다 - 페미니즘 진영과 586세대의 기묘한 관계 7. K-페미니즘과 미투 운동, 젠더 갈등에 대한 분석 - 대한민국에서 미투의 초상은 어떠한가 - 페미니즘? K페미니즘! -한국형 페미니즘과 젠더문제에 대하여(죄인 취급받게 된 MZ세대 남성들) 8. 엘리트의 원죄 - ‘현재형 진보’를 찾아서 - 펜과 권력과 돈, 그리고 청년들 - 새로운 진보주의는 가능한가 - 나는 어떻게 진보주의자가 되었는가 - MZ세대와 진보주의 - 모든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다 9. 초기 미투의 작은 영웅들을 추억하며- 서지현 검사와 이윤택 고발자들 - 진정한 의미의 미투는 무엇인가 - 진짜 미투와 가짜 미투의 차이점에 대하여 - 권력의 꽃을 겨냥한 서지현 검사의 미투는 실패했다 - 이윤택 미투, 끝없는 슬픔 10. 폭력이란 무엇인가 - 인간주의적인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 A의 이야기 - 책을 마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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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동력을 빠르게 상실시켰다면, 페미니즘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한 수순을 밟았다. 페미니즘은 문재인 정부의 시대정신으로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이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완전히 비정상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K-페미니즘의 특성상, 조금의 비판이라도 ‘백래시’로 규정되면서 비판자로 하여금 죄의식을 갖게 하고, 또 비판자는 사회에서 배척당하게 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그래서였는지 정치권 1호 미투였던 안희정 미투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정신을 지킨다는 미명 하에 민주당의 ‘사과와 자학의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 p.87 *내가 실체적 진실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나의 내부에서부터의 움직임이 아니라 외부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사건 초기 나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 이미 2차 가해로 매도된다거나 -매도된 상태로 이미 내부자들 사이에서 인식되어 있거나-, 또는 사건에 개입할 자격을 상실할 만큼의 중대한 배신으로 간주되는 것을 보고 나는 비로소 진실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상술한 상황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캠프 구성원들의 행동을 보고, ‘도대체 진상이 어떻길래?’ ‘저들이 하려는 일이 무엇이길래?’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생각엔 진실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운동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나는 보았던 것이다. 그들이 일종의 ‘정의감 중독’에 빠져 진실을 역사의 너머로 추방하는 사람들에 속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만의 이념과 구호를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올려 놓으려는 어긋난 의욕과, 그 위에서 혁명의 주체로서 행세하려고 하는 모습이 내게는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누군가의 순수해 보이는 감정에도, 옳아 보이는 말에도, 액면 그대로의 내용 이상의 층위가 있다는 사실을 배워나갔던 것 같다. --- pp.116~117 *사건과 사건 사이의 관계에 대해 내가 파악한 바를 나는 수감상태의 안희정 지사에게 편지로 써 보냈다. 내가 보낸 편지는 A4 57쪽 분량으로 조금만 손보면 단행본이 될 수도 있는 분량 정도인데, 모두 손글씨로 되어 있다. 나는 원래 이 서신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안희정 지사께서 그러지 말아 달라는 뜻을 전했다. 나는 그 뜻을 최대한 지키고자, 서신 일부만 발췌하여 여기에 소개할 예정이다. 일전에 방송인 김어준 씨가 내 ‘분노의 서신’에 대해 언젠가 꼭 이야기해 달라고 했었는데, 드디어 -일부라도- 공개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서신은 3심 재판이 끝난 후, 안 지사가 수감된 지 1년쯤 되었을 때 보낸 것이다. 기결수에게 서신을 보내려면 역사책에서나 들어보았던 우체국 사서함을 이용해야 했다. --- pp.132~133 * 안희정 지사 2심 이후 언론을 달구었던 ‘피해자다움’과 ‘2차 가해’논쟁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한국이 그렇게 미개한 나라는 아니라고. 심지어 증거가 없거나 모두가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의 결백이 사회적 동의를 얻는다면 그는 피해자 그 이상의 지위에 오를 수도 있다. 한국이 국가 폭력에 대한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가진 나라이고, 부당한 권력의 작동 구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피해자가 되려면 피해자로 입증받거나 최소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받아야 한다. 법은 신이 아니다. 따라서 법원의 판결은 완벽하게 정의로울 수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사법 폭력과 일반 범죄의 희생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의 정서가 있고,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한 나라가 아니라는 의견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팽배하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피해자임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하기만 해도, 가해자는 충분히 처벌받을 수 있으며 사회 변화도 꾀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합리성과 사회정의에 대한 욕망이 크며, 타인을 자신과 같이 생각하는 정情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역동적이고 변화를 향해 열려 있으며, 사회적 캠페인에 대한 반응도 빠른 사회이다. 특히 불의에 대한 집단적 분노와 개혁 추진력의 측면에서는 따라올 국가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pp.166~168 * 내 서신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쏘아진 정의의 화살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위선을 타파하려다가 생겨나는 또 다른 위선의 얼굴'이 될 수도 있었다. 아포리즘이나 경구를 연상시키는 나의 이 화두는 당시의 정치 상황을 보는 나의 관점이 되었다. 사실, 정치 이슈와 사회 현상들에 이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실은 그리 건전한 방법도, 좋은 태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애초에,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는 정치 상황과 그들이 읽어내는 계파 구도는, 실제 정치권 내부 사정에 비하면 극히 추상적이다. 안희정 지사가 낙마한 후 나는 더 이상 ‘정치권 사람’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었고, 이러한 아마추어적 방식은 나의 최선이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쏘아진 정의의 화살의 비극’ '위선을 타파하려다가 생겨나는 또 다른 위선의 얼굴' 이 두 말은, 내가 안희정 지사 사건부터 박원순 시장의 죽음까지, 조국 사태 이후 ‘내로남불 정당’으로 바뀌어버린 민주당의 정체성과 잃어버린 명예, 그리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까지 가능하게 한 ‘진보 진영의 부조리한 실패’를 해석하는 데에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 pp.203~204 * 안희정 미투 2심부터 본격적인 페미니즘 광풍이 시작되었다고 나는 분석하고 있다. 1심에서 안희정 지사가 승소하자, 페미니스트들은 ‘사법부가 유죄다’라며 저항에 나섰다. 지금은 마치 원래 있었던 단어처럼 익숙한 ‘성인지 감수성’, ‘2차 가해’, ‘피해자 중심주의’, ‘위력’ 등의 단어가 이 시점에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페미니스트들은, ‘위력이 존재했으나 행사되지 않았으므로 무죄’라는 1심 판결에 대하여 ‘위력은 존재함으로써 행사되고, 원고는 위력으로 인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는, 심리적 얼어붙음 상태에 있었으므로 피고는 유죄’라고 반박했다. 2심 재판부는 원심을 완전히 뒤집고, 공소사실 10개 중 9개를 유죄로 인정함으로써 페미니즘 진영의 손을 들어주었다. --- p.219 * 사람은 어떤 억압적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들에게 주입되는 언어들과 그들을 속박하는 -마치 영원처럼 속박하는- 제도 너머의 것을 판단할 능력이 있다. 그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정상적 인간이라면 타인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을 빼앗기지는 않는다.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그 능력은, 진실을 밝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직감과 직관, 영성과 양심이 함께 활동하는, 살아 있는 기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심오한 양심은 모든 비인간적인 것으로부터 탈주하도록 명령하는, 우리 안에 있는 생명철학이다. 양심은 신이 부여한 원초적 선의 최후의 보루가 된다. 건전한 직관과 함께하는 양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의 것이었다. 혁명가들의 죽음은 ‘건전한 직관’의 소유자들에 대한 권력자들의 혐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사람들이 살아있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정의로웠을 것이며, 정서적으로 풍요롭고 발전적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pp.266~267 * 특히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재판 결과가 나오면 사법부를 규탄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재판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상대측에겐 감히 재판부의 판결에 딴지를 건다며 맹렬히 비난하는 여성계의 막무가내 행태에 염증이 일었다. 그들은 건건마다 그런 식이었으므로, 자기 모순조차 느끼지 못하는 괴상한 조직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유일무이한 조직이라고 과시하는 듯한 인상까지 받았던 것이다. --- pp.306~307 * 증거 없는 성범죄 사건만큼 첨예하게, 진실과 거짓이 마구 뒤집히며 마치 환영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까지 주는 사건이 또 있을까? 책을 집필하며 조사한 사례들 속에서, 나는 정상적 인간성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졌고, 그 의문이 나를 회의주의자로 만들어 내 젊은 생명력을 퇴색시키는 일을 막으려고 사력을 다했다. 진실을 수면 위로 올리려면 말의 힘을 빌려야 하지만, 그렇게 세상에 나온 말을 통해서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어떤 언어를 빌려서도 백 퍼센트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마음일 뿐이다. 그렇기에 마음은, 기적적으로 통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완벽하게 속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성폭행 사례와 무고 사례를 조사하며,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자꾸만 되뇌이게 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성인지 감수성은, ‘마음의 권력’을 장악하려는 무서운 시도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증거 없는 성폭행 사례로 책을 마무리하는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다. --- pp.314~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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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비판도, 사유할 기회도 배척되며 흘러가버린 시간을 소환하는 책”
“교도소 사서함으로 부쳤던 편지를 다시 꺼내며”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든 지 5년 만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우리는 완전한 민주화와 더욱 발전된 국가를 위해 촛불을 들었지만, 그렇게 찾아온 새로운 시대는 촛불과 함께 또다른 권력이 되어버린 페미니즘 세력과, 조국 사태를 비롯한 검찰 기득권, 무력하고 교조적이었던 여당의 대응으로 인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시대가 되어 버렸다. 미투 운동은 초기의 순수한 취지로부터 점점 멀어지며 빠르게 정치 이슈화되었고, 사회 정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은 조국 장관 일가가 받는 입시특혜 의혹을 향했으나, 그 배후에서 조국 장관을 직권 수사하던 윤석열 검찰의 위험성까지 발견하지는 못했다. 일순간에 ‘내로남불, 더듬어만진당’이 되어버린 민주당은 변명과 사과를 거듭하며, 페미니즘 앞에서는 무조건 고개 숙이는 정당이 되었고, 여기에는 아예 페미니즘 정당화된 정의당도 가세했다. 정의당과 민주당은 갈등하는 듯 보였지만 페미니즘 의제에 관해서만은 한패였고, 정의당은 오히려 민주당더러 ‘더욱 더 레디컬해져라’고 비판했다. 정의당과 민주당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인권과 처우 그 자체보다, 안희정 지사 모친상에 조화를 보낸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에 더 열성적이었다. 언론 역시 페미니스트들의 논조에 지배되며 잠식당한 듯했다. 이 책은 안희정 대선경선 캠프의 막내 사무원이, 당시 상황과 미처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미투 사건의 이면을 회상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파괴할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하여 생각하며 쓴 글이다. 저자는 당시 안희정 사건의 내부자로서, 안희정 사건이 초기의 순수했던 미투의 연장선상에서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고, 사건과 관련된 모든 비판과 의구심이 2차 가해로 취급되는 것을 지켜봐 왔다. 때문에 급격히 광풍화되어가는 페미니즘의 독단과 위선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저자의 작은 목소리가 공론화된 적은 없었다. 당시에는 여당, 야당 그리고 언론 모두가 무조건, 가해자라고 지목된 사람은 가해자로, 피해자라고 자칭한 이는 피해자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전제로 성인지 감수성을 이야기했다. 페미니즘 광풍은 그것의 매개가 된 미투 사건들의 성폭행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한 시대의 풍경이 되어버렸고, 세상은 피해 여성들을 중심축으로, 페미니즘 권력이 몽상하는 그대로 흘러가며 새롭게 해석된 진실, 또는 진실을 해석하는 또 다른 관점을 보편 인권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늘 끝까지 갈 것만 같던 페미니즘 광풍은 시간이 가며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고, 어떤 이들은 그 광풍이 만들어둔 폐허 위에서, 그것이 있기 전의 세상, 그것에 의해 변화된 세상, 그것이 지나간 이후의 세상을 회상하고 반추하며 떠올리고 있다. ‘어떤 이들’ 중에는 안희정 지사, 박원순 시장의 영령과 그를 추모하는 이들, 이 책의 저자, 그리고 이 책의 저자와 같은 편에서 목소리를 내었으나 ‘2차 가해자’로 매도되기만 했던, 생각보다 많은 수의 시민 등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들 중 한 사람으로서 페미니즘과 함께했던 시대를 정식 기록으로 남기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비판점들을 찾아내는 지적 여정에 독자들을 초대하고자 한다. 아래 페미니즘 관련 논제에 대해, 나는 반복해서 물어보곤 한다. ·“정신적 장애가 없는 성인을 상대로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위력만으로 강간이 성립되는가?”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다면, 피해를 호소한 것만으로도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한가?” ·“피해자란 무엇인가? -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인가, 피해를 이미 입증한 사람인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피해자’에 관해 피해 사실 또는 실체적 진실에 대한 의구심을 표현하는 것은 2차 가해인가?” ·“성인지 감수성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일상적 대화 중 여성이 성희롱이라고 느낀 것들은 모두 범죄인가?” ·“성인지 감수성과 피해자 중심주의를 적용한다면, 남성의 방어권은 어떤 방식으로 보장되어야 하는가?” ·“남성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과 피해자 중심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양립 가능한가?”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으로 혐의가 입증될 수 있는가?” 이러한 논쟁들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주장한 ‘비동의 강간죄’와 ‘무고죄 폐지’ 논란과도 합쳐져, 성 담론에 관한 총체적 혼란상으로 이어졌다. 만약 내가 남성이었다면, 나는 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몸캠 CCTV를 하나 차고 다녔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