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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순진의 시련
돼지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여우 돼지의 변신 비극의 시작 여우와 진주의 러브스토리 돼지의 본질 권위란 2 앵무새들 최소한의 자존심 Korean Air 2부 내 영혼의 수몰지구를 찾아서 굳은 빵에 버터 바르듯 햇빛 속의 여인 서울의 방 대화 상대 알겠니? 황혼 바람 부는 날 한국 영화를 위하여 서른아홉 세기말, 제기랄 옛날 시인 3부 축구장에서 생각한 육체와 정신 축구는 내게?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남북축구대회에 나타난 반공의 딸 닮은 꼴 인생보다 진실한 게임 공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는다 나는 왜 수비수가 되었나 인간의 두 부류 4부 달리는 폐허 위에서 노트르담의 오르간 베르사유의 가을 “ICI REPOSE 여기 쉬다” 베니스의 유령 발자크의 집을 다녀와 런던의 실비아 플래스 외국어로 고백하기 지중해의 노을 5부 짐승의 시간, 인간의 시간 건널목을 건너며 대학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에게 산과 바다 시대의 우울 권력의 얼굴 짐승의 시간 44년 전의 오늘 이장(移葬) 육체와 영혼에 대한 어떤 문답 눈 감고 헤엄치기 시인의 말 |
Choi Young Mi,崔泳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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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탐내는 ‘돼지’와 탐욕스러운 ‘여우’, 우리 시대의 우화 詩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허나 그건 금이 간 진주. 그는 모른다. 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 _〈돼지들에게〉에서 ‘돼지’와 ‘여우’, 그리고 ‘진주’로 비유되는 탐욕과 교활, 그리고 숨겨진 순수의 구조는 돼지와 여우, 진주의 러브 스토리로 풍자된다(〈비극의 시작〉, 〈여우와 진주의 러브스토리〉). 진주를 탐내는 돼지와 여우의 탐욕스러움과 교활함은 진주를 은근히 유혹하는 대목에서 극에 달한다. 돼지와 여우, 진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층위로 읽힐 수 있다. 시인은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돼지와 여우로 상징되는 대상들에게 정파를 가리지 않고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위선에 가득 찬 지식인들뿐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일부 세력의 횡포와 탐욕도, 폭압적인 북한 정권도, 미국 제국주의도 모두 ‘돼지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 앨범에는 이십대가 없다 입학식과 졸업식만 있지 중간이 텅 비었다 셔터를 누르는 몇 초 만이라도 편안히 멈추어 나를 응시할 계절이 없었으니- 누가 누구와 친한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이미지에 불과한 종잇조각 때문에 곤란한 일을 당할까봐 우리는 우리의 싱그러운 젊은 날들을,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청춘을 기념하지 않았다. _〈대학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에게〉에서 ‘돼지들에게’ 연작이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시인의 면모를 드러내주었다면, 〈대학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에게〉라는 작품은 시인의 진정성과 언어 조탁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 텍스트로서, 시인과 평론가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등 문단의 찬사를 받았다. 어느 날 시사 월간지 기자가 원고를 청탁하며 대학 때 찍은 사진을 달라고 부탁했고, 마땅히 줄 사진이 없었던 그는 이에 영감을 얻어 단숨에 시를 써내려갔다.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청춘’, ‘뻥 뚫린 부재’, ‘빼앗긴 봄날’ 등의 시어를 가만히 곱씹다 보면 뻥 뚫린 채 비어버린 시인의 한 시절이 눈앞에 아른거려 절로 가슴이 저며온다.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을 속였는지,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 위선이 숨을 구석이 없다. _〈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에서 3부 ‘축구장에서 생각한 육체와 정신’에 실린 일련의 시들도 독특하다. 축구로 정치 세태와 인생을 풍자하는 그의 재치는 통찰 어린 시선에 힘입어 더욱 유쾌하게 읽힌다. 그녀에게 축구는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어느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였는지,/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운동장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으며/위선은 숨을 구석이 없”(〈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는 신선한 발견이며, 이미 너무 많은 위선과 거짓으로 덧칠된 세상에서 오로지 축구만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소년도 총을 내려놓고/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순결하고 공정한 장이다. 기꺼이 이 시집의 한 부가 바쳐진 ‘축구’란 장르는 어쩌면 관습을 파괴하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녀의 위험스런 모험과 닮은 듯 보이기도 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씌어진 詩의 무늬 최영미 시인의 시는 해석 불가능한 시, 형식과 문법 파괴 등 이른바 전위적인 시들의 계보에 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충분히 당혹스럽고 또한 강렬하다. 진정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솔직한 고백으로 씌어진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사랑 그리고 운명에 대한 질문은 최영미 시의 근간을 이루며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다. “한 끼의 밥을 위해 건들건들 건널목을 건너”(〈건널목을 건너며〉) 가는 사십대의 생활이 엄연한 현실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44년 동안 미역국을 끓여주시는 어머니의 성가신 애정에 콧날이 시큰해지는(〈44년 전의 오늘〉) 그런 일상의 힘들이 절망에서 우리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된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시인은 이야기한다. 때문에 “배반당하더라도/이 지저분한 일상을 끌고 여행을 계속하련다(〈런던의 실비아 플래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최영미 시인에게는 ‘차가우면서 들끓는 시인’, ‘그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시인’ 등등 수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이 시집의 시들을 읽다가 나는 자칫 그 원고를 떨어트릴 뻔했다”는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그의 불온하며 강철처럼 단련된 시들이 2014년의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자못 궁금해진다. 산다는 건 내게 치욕이다. 시는 그 치욕의 강을 건너는 다리 같은 것. 내가 왜 어떤 항구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방랑자가 되었는지, 돌아갈 고향이 없는 나그네처럼 떠돌았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들을 나직이 풀어놓을 힘이 내게 남아 있으면 좋겠다. 해변에 엉거주춤 서 있는 저 가엾은 백로들도 훌훌 털고 비상할 때가 있으리라. _〈바람 부는 날〉의 詩作 노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