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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콜타임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오십팔키로 바람직한 청소년 가족오락관 리뷰 - 김병운(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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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 : (화가 나서) 그런데 지금 그 얘기 왜 하세요?
범순 : 미안합니다. 은호 : (말 끊으며) 퀴어신 거죠? 범순 : ……. 은호 : 퀴어요. 사이 은호 : 아니세요? 사이 범순 : 레즈비언이에요? 은호 : 예. 사이 은호 : 배우님은요? 범순 : (정색하며) 전, 아니에요. 은호 : 뭐가 아닌데요? 사이 은호 : 저 벽장 아니에요. 범순 : 숨긴다는 거죠? 은호 : 숨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숨긴 적 없다고요. 전 오픈이에요. 사이 은호 : 아까 저랑 어, 저랑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퀴어가 아니에요? 범순 : 그냥…… 은호 씨가, 은호 씨가 오늘, 아까― 좋았던 거예요. 범순의 말이 은호에게 상처가 된다. 은호 : 그냥 조금 전에.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거죠. 사이 범순 : 예. 은호 : (코웃음 치며) 저 배우님 때문에 여기 들어왔어요. 사이 은호 : 아니면 이렇게 개빻은 프로덕션에서 일 안 해요. 사이 범순, 머리에 손을 짚고, 휘청인다. ---「콜타임」중에서 예수 : ……나는 니가 이렇게 바로 결정을 내리는 게 좀 걱정돼. 혜인 : ……. 예수 : ……. 예수 : 집사님도 많이 놀라실 거고……. 혜인 : 엄마는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얘기할게. 사이 예수 : (너무 약해져서) 안 헤어지면 안 될까. 혜인 : ……. 예수 : 기도해봤는데……. : 혜인 : ……. 예수 : 때가 아니라고 하셨어. 혜인 : ……. 예수 : ……. 혜인 : (힘없이, 체념에 닿은 듯) 때가 아니라고 하셨어? 예수 : 응. 혜인 : 예수야. 예수 : ……. (혜인이를 본다.) 혜인 : 넌 가끔 하나님을 이용해. 난 그렇게 느껴. 예수, 쭈뼛쭈뼛거린다. 예수 : 자기야. 혜인 : 예수야, 우리 끝났어. 정말 미안하지만, 나 이제 이 얘기 그만하고 싶어. 내가 너한테 이미 (사이) 너무 많이 말했어. 나는 이제 (짧은 사이) 남은 게 없어. 예수 : ……. 혜인 : ……. 예수 : ……미안해. 혜인 : 나는 니가 너 말고 나를 걱정했으면 좋겠어. 예수 : ……. 둘 사이에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쾌한 분위기가 감돈다. 예수 : 그래. 혜인 : 기도할게. 예수 : (손가락으로 쉿, 하며) 하지 마. 그 말 하지 마. 혜인 : 알았어. 사이 혜인, 나가려는데 예수 : (원망하듯) 우리 이렇게 끝나는 거에, 하나님이 어디 계셔? 사이 혜인 : (건조한 말투로) 넌 어디 있었어? 나 혼자 있었을 때. 예수, 대답하지 못한다.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중에서 성우 : 얼마지? 연경 : 33만 원인가 그래. 미친 거 아니냐, 33만 원. 나 한 달 용돈 5만 원이야. 성우 : 야, 제주도는 비행기만 해도 20만 원이야. 연경 : 아니? 우리 사촌 언니가 제주도 갔는데 비행기로 왕복 4만 9천 원에 갔다 왔다 그랬는데? 성우 : 구라까지 말라 그래. 연경 : 아닌데? 사촌 언니 구라 아닌데? 성우 : 그런 거 없거든? 연경 : 아니거든? 있거든? 여튼 엄마한테 존나 미안했어. 비싸서. 성우 : 어. 엄마가 돈 주면서 손 벌벌 떨린다고, 왜 제주도까지 가냐 그랬어. 경주나 가지, 씨발 애들을 제주도까지 보낸다고. 연경 : 니네 엄마 욕해? 성우 : 어. 욕 맨날 해. 입에 걸레 물었어. 사이 연경 : 너 제주도 가봤어? 성우 : 아니. 연경 : 처음 가는 거야? 성우 : 어. 연경 : 난 가봤어. 난 중1 때 여름방학에 엄마랑 오빠랑 갔었어. 성우 : 좋겠네. 연경 : 너 제주 흑돼지 먹어봤어? 성우 : 아니. 연경 : 장난 아니야. 존맛. 성우 : 흑돼지 제주에서만 파는 거 아니야. 마트 가면 다 팔아. 연경 : 제주도에서 먹는 거랑 같냐? 성우 : 그래도 안산에도 제주 흑돼지 파는 데 있어. 나 그런 데서 많이 먹어봤는데? 연경 : 나 그리고 회도 먹었어. 바다 보면서. 성우 : 좋겠네. 연경 : 어, 진짜. 개꿀이었어. 성우 : 근데 배 타면 더 싼 거 아니냐? 연경 : 몰라, 올 때는 비행기 타잖아. 성우 : 비행기 타는 거였어? 연경 : 몰랐냐? 성우 : 아, 맞다. 사이 성우 : 그래도 우리 엄마 착해. 사이 성우 : 33만 원 너무 비싸. 돌았어. 연경 : 어, 돌았어. ---「오십팔키로」중에서 이레 : 내가 써줄까. 현신 : 뭐? 이레 : 니 반성문……. 나 잘 쓸 수 있는데. 현신 : 뭔 개소리야. 니가 왜 내 걸 써. 이레 : 어차피…… 학교에서 좋아하게 쓰면 되는 거잖아. 너, 이번에 잘 안 되면 퇴학당하는 거 아니야? 벌점도 엄청 쌓였다고……. 동생이랑 너랑 세트로…… 대박이네. 현신 : 닥쳐라. 사이 현신 : 글씨체는. 이레 : 내가 불러줄게. 니가 받아 적어. 사이 현신은 이레의 의중을 모르겠다. 현신 : 너 왜 이러냐? 이레, 대답이 없다. 이레 : 너, 졸업하고 싶어? 현신 : 아 씨발, 최꼬추부터 시작해서……. 이레 : (말 끊으며) 대학 갈 거야? 현신 : 왜? 이레 : 대답해봐, 갈 거야? 대학? 현신 : 갈 거야. 이레 : 왜? 현신 : 대학은 나와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이레 : 어디 갈 건데? 이름도 모르는 지잡대? 돈만 내면 가는 데? 현신 : 닥쳐. 이레 : 그럼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아? 빵셔틀이나 하는 한심한 애랑. 죙일 거울만 보는 못생긴 애랑 놀다 인생 쭉 말아먹으려고? 현신 : 셋 셀 때까지 닥쳐라. 아님 너 이빨 털린다. 하나. 이레 : 난 너처럼 막 사는 애들 보면 되게 신기했었어. 뭐 믿는 데가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난 돈도 빽도 없어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취직해서. 현신 : 둘. 이레 : (멈추지 않고) 잘 먹고 잘살 생각이거든. 너랑 니 동생까지 학교에서 짤리면 니네한테는 절대 오지 않을 미래겠……. 현신 : 셋. 현신, 이레를 때려 바닥에 넘어뜨리고 얼굴을 발로 밟는다. 이레 : (현신에게 밟힌 채) 나 좀 도와줘. ---「바람직한 청소년」중에서 반상을 사이에 놓고 앉아 살인 계획을 세우는 주정과 명진. 명진은 노트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쓴다. 명진 : 지문은 남기면 안 되잖아요. 수술용 장갑 같은 거 낄까? 주정 : 사람 몸에도 지문이 남는대니? 명진 : 남을 거예요, 아마. 주정 : 컴퓨터 해봐라. 컴퓨터 앞으로 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는 명진. 명주, 문을 열고 들어온다. 주정과 명진,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명진 : 남는대요. 주정 : 그럼 장갑은 무조건 껴야겠다. 명진 : 엄마. 주정 : 어? 명진 : 그 집도 애가 있었죠? 주정 : 그래, 여자애 둘 있지. 큰애는 시집간 거 같더라. 다행이지. 명진 : 뭐가요? 주정 : 시집. 명진 : 그게, 다행이에요? 주정 : 그래도 낫잖니. (사이) 니네보단. 명진 : (힘들게) 그 집도. 우리 집처럼 될까요? 사이 주정 : 명진아. 명진 : 네. 주정 : 우리 집에 매년 설날마다 배달 오는 갈비 있잖아. 한우 1등급. 명진 : 고모가 보내주는 거요? 주정 : 그거 그 사람이 보낸 거다. 명진 : 뭐요? 엄마 미쳤어요? 우리한테 그걸……. 왜 말 안 했어요? 주정 : 처음에는 도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니네 아빠 살아 있을 때도 한 번도 못 먹어봤던 거잖아. 명진 : 아니, 아무리 그래도……. 주정 : (말 자르며) 니네가 너무 잘 먹었어. 명진, 대답 못 한다. 주정 : 너무 맛있게, 많이 먹었어. 입에 뭐 넣어주면 맨날 뱉어내는 니네 할머니도 꼭꼭 씹어 삼키고. 니네 할아버지야, 말할 것도 없고. 나도, 먹었어. 맛있었으니까. 그런데, 자꾸 그 사람을 용서하는 기분이 들더라. 용서해달라고 보내는 고기를 먹었어. 우리 모두가. (짧은 사이) 그 사람은. 용서받은 줄로 알 거야. ---「가족오락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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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기록을 남기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연극은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 완성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 양 빈 무대로 돌아가지만, 희곡은 그렇지가 않다. 희곡이 문학이라면 쓰이고 읽히는 건 당연한 일일진대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극작가로 글을 쓰다가 2018년 연극계 미투가 있었고, 그 이후로는 연출로도 활동하면서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했다. 계속 내 속도가 느리다고 느꼈고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기보다는 과거에 수렴하며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꾸 자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들이 다양한 독자를 만나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어주는 분들이라면 번잡스러운 이야기들 안에서 저마다의 작은 용기를 발견할 것이라 믿는다. _서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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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진의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발만 동동 구르다가도 기어이 한 발을 내딛게 만들고,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어서 혼란하고 불안한 나날을 어떻게든 견디게 만든다. 서로를 결코 혼자 내버려두는 법이 없기에,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건 애초에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기에 서로의 세계에 포섭되고 휘말린다. 이오진의 인물들이 보여준 각양각색의 용기는 내게도 그렇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내게 이런 용기가 있는 줄도 모른 채로 낙망하던 순간에 호랑이 기운처럼 갑자기 솟아났던 것 같다. 하루는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것처럼 자신만만해졌다가도 또 하루는 작은 점처럼 한없이 움츠러들 때,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으려 하기보다는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오진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용기는 조금씩 자라났을 테니까.
- 김병운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