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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1부 2부 3부 4부 에필로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Sergio Bla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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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 저는 〈테베랜드〉라고 불리는 지금 이 프로젝트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산마르틴 집행부에 프로젝트 첫 번째 초안을 제출하자마자 좋은 평가를 받고, 그때부터 존속 살해 주제를 다룬 이 작업의 공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무대에서 진짜 죄수, 진짜 존속 살해범과 작업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산마르틴 극장과 첫 번째로 결정한 것은 무대에서 진짜 죄수와 함께 작업할 수 있게 정부와 모든 법적인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진실함의 문제는 이 프로젝트의 세부적인 사항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제 관심은 연극이 아니라 거의 실제 형식으로서 존속 살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도 이미 상상하셨듯이 바로 이런 이유로 무대 장치를 케이지나 격자창 같은 종류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정부가 우리에게 제시한 조건 중 하나였습니다. 정부는 우리에게 정해진 안전 조치를 지켜야 한다는 조건으로 공연을 허락해 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무대에 케이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내무부가 동의한 서류는 ‘최소 3미터 높이를 가진 울타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요구 사항을 한 치 어긋남도 없이 수용했습니다. 처음에 케이지에 대한 아이디어로 우리는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존속 살해범 마르틴, 이것이 그의 이름입니다, 마르틴 산토스를 처음으로 만나기 위해 감옥에 갔던 날까지 저는 케이지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산마르틴 극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놀랍게도 우리의 첫 번째 약속은 농구장에서였습니다. 그 농구장은 모든 감옥이 그러하듯이 이 같은 케이지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것을 보자마자 저는 우리가 안전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시 저는 무대는 케이지로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대 장치 관점에서 정부 당국이 안심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연극적인 관점에서 마르틴과의 만남 공간을 창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결국 모든 요구 사항을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좀 논외인데, 여러분에게 고백하자면, 연극 카탈로그와 이 프로젝트의 예술적인 지시 사항이 부분적으로 내무부 공식 성명에 의해 언급되는 것도 저는 예술적으로 흥미로웠습니다. 교도소장에게 처음부터 마르틴과의 모든 만남을 농구장에서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던 게 생각나는군요. 대답은 긍정적이었습니다. 좋습니다. … 어쩌면 이제 우리는 우리 첫 번째 만남을 공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본 순간이요. 괜찮죠? 좋습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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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히오 블랑코는 현재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유명한 극작가이자 연출가다. 2023년 〈테베랜드〉 한국 초연을 위해 내한해 관객과 만났다. 드라마는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인물 ‘S’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S’는 존속 살해를 주제로 한 연극에 진짜 존속 살해범을 출연시키겠다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관객과 독자를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우리 모두는 오이디푸스처럼 모호한 테베를 가지고 있어요. 조금 혼란스럽고 어두운 곳. 이해할 수 없는 영역 같은 거요. 연극의 주제는 첫 장면에서 작가에 의해 제시된다. ‘존속 살해’다. 곧바로 존속 살해의 상징 오이디푸스가 소환된다. 마르틴은 현대판 오이디푸스 같은 인물이다.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마르틴이 잔혹하게 아버지를 살해하게 된 배경이 드러난다. 이 드라마는 “마르틴이 왜 아버지를 죽였을까?” 살해 동기를 파헤치도록 설계된 미스터리 추리물이 아니다. 질문은 다른 데서 터진다. “오이디푸스를 존속 살해범으로 볼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는 웬 노인을 몽둥인지 뭔지로 쳐 죽일 때 상대가 아버지인 줄 몰랐다. 마찬가지로 스핑크스에게서 테베를 구하고 그 공로로 테베 왕비와 결혼할 때 상대가 어머니인 줄 몰랐다. 이를 진짜 존속 살해, 근친상간이라 할 수 있을까? 라이오스는 아들에게 왕국을 빼앗기리라는 예언에 겁먹고 갓 태어난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를 진짜 아버지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로부터 제목이 정해졌다. “테베랜드”! 모호하고 혼란스럽고 어둡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 ‘S’는 우리 모두가 그런 ‘테베’를 가졌다고 말한다. ‘테베’는 한때의 아들들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발목을 묶고 뛰어내려야만 하는 바누아트의 절벽인 걸까? 모두들 조금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요 마르틴이 ‘S’에게 묻는다. “당신도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적 있나요?” 바로 그날 아침에도 아버지와 통화하며 애정을 나눈 ‘S’도 나중엔 말끝을 흐리며 어쩌면 틀림없이 그랬을 거라고 고백한다. 오이디푸스와 명백히 다른 점은 마르틴도, S도, 우리도 죽이고 싶었던 상대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존속 살해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되었지만 실제 ‘존속 살해’라는 죄에서는 완전히 자유롭다. 그러나 상징을 읽고 쓰는 우리는 최소 존속 살해 기도(?)범이다. 이제 오이디푸스와 마르틴에게서 빠져나온 질문이 독자, 관객에게 돌진한다. 우리는 각자의 테베랜드에서 어떤 죄와 벌을 감당했을까, 혹은 감당하게 될까? 사실 그 거리가 바로 예술을 항상 현실보다 더 우월하게 만들죠 이 모든 이야기가 바로 실제처럼 재현된다. ‘S’는 세르히오 블랑코 자신 같고, 마르틴은 그가 인터뷰한 재소자 같다. 그렇게 ‘테베랜드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결과물인 이 텍스트, 이 연극을 보게 된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실제인지 허구인지 모를 이 모호함은 작가이자 연출가로 설정된 1인칭 서술자가 이야기를 전하면서 비롯된다. ‘오토픽션’ 전략이다. 극과 현실의 경계도 이처럼 모호한데 페데리코라는 배우의 존재는 극과 극중극의 경계까지 흩트린다. 마르틴은 연극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을 재현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누구도 마르틴을 대신할 수 없다. 마르틴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할 수도 없다. 연극은 그 거리감으로부터 인물과 사건을 창조해 내는 예술이다. 단순 모방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존속 살해라는 고전 주제 아래서 정치 철학 예술을 깊이 파고드는 질문들이 종횡으로 만난다. 정교하게 코드화된 작품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해독하는 “지적 유희”를 즐겨 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