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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들
황정은 희곡집
황정은
제철소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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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사막 속의 흰개미
죽음들
오피스
산악기상관측

리뷰|당신의 희곡을 읽는 이 순간 - 김미월(소설가)

저자 소개 1

극작가.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원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예술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2018년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창작대본 공모에 [사막 속의 흰개미]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연극 [애인(愛人)] [노스체] [베드타운], 오페라 [레테] 등을 무대에 올렸다. [죽음들]로 경기아트센터가 주관한 2023년 창작희곡 공모전에 당선되었으며, 개인 희곡집 『애인(愛人)』 『노스체』, 공저 희곡집 『우리는 처음 만났거나 너무 오래 알았다』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극작가.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원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예술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2018년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창작대본 공모에 [사막 속의 흰개미]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연극 [애인(愛人)] [노스체] [베드타운], 오페라 [레테] 등을 무대에 올렸다. [죽음들]로 경기아트센터가 주관한 2023년 창작희곡 공모전에 당선되었으며, 개인 희곡집 『애인(愛人)』 『노스체』, 공저 희곡집 『우리는 처음 만났거나 너무 오래 알았다』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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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442g | 126*188*27mm
ISBN13
9791188343782

책 속으로

제게 이야기는 막힌 벽에 그리는 저만의 문입니다. 문을 그리다 보면 실제로 그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고 저는 문밖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끝이라고 생각한 곳이 끝이 아니라는 것, 사실은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것. 제게 이야기를 짓는 일은, 끝이라고 믿었던 곳이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일종의 기적이자 구원이었던 셈이죠.
---「서문」중에서

황정은의 희곡집 『죽음들』은 희곡을 잘 모르는 내가 읽어도 재미있었다. 아니, 실은 읽는 동안 내 손에 들린 것이 ‘희곡’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장르를 떠나 나는 순전히 이야기 자체에 몰입했다. 책장을 덮고 나서는 ‘그래, 좋은 이야기를 만나는 기쁨이 이런 거지’ 하며 새삼 탄복했다. 그러니까 내가 읽은 것은 희곡이라기보다 좋은 이야기였다. 다시 말하면 황정은이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얘기다.

모든 작가는 숙명적으로 이야기꾼이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남다른 기지와 입담으로 순식간에 어떤 이야기든 뚝딱 지어내는 즉흥적 이야기꾼이 있고 한편으로는 화제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전달 방식을 치밀하게 기획하는 전략가적 이야기꾼이 있을 것이다. 황정은은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의 서사에는 논리적 공백이 없다. 낭비도 없고 억지도 없다. 간결하고 담백한 방식으로 그는 솜씨 좋은 이야기꾼들이 으레 그러하듯 어느 낯선 시간 낯선 공간 낯선 인물의 이야기를 요리조리 변주하고 가공하여 지금 이곳 바로 우리의 이야기로 만든다.

『죽음들』에는 「사막 속의 흰개미」 「죽음들」 「오피스」 「산악기상관측」, 이렇게 네 편의 희곡이 수록되어 있다. 네 작품 모두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툭 던져놓는 도입부의 상황이 일단 흥미롭다. 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은 흰개미 서식 여부를 점검한다는 이유로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늙은 죽음은 아이가 잘못 던진 공에 맞아 커피를 쏟으며, 환자들은 느닷없이 코가 빠지거나 귀가 빠져 병원을 찾는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에서 펼쳐지는 이 황당무계한 도입부의 사건들을 작가는 성격화가 잘 된 인물들과 빈틈없는 플롯의 힘으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
_김미월(소설가)
---「리뷰」중에서

재현 : 목사님이 무신론자래요. An atheist―.
에밀리아 Huh. Really? 신 안 믿는데, 어떻게 목사 돼요?
재현 : 그러니까요. 근데 요새 큰 교회들 다 기업이에요. 기업 물려받는다― 생각하면 할 수 있죠. 앞에서는 아멘 하고 뒤에선 뭘 하든 어떻게 알겠어요. 저희 엄마가 여기 다니는데, 이 얘기 한번 했다가 욕 진짜 많이 먹었어요. 교회를 위해서라면 안 하던 쌍욕도 하는구나, 싶었다니까요.
---「사막 속의 흰개미」중에서

석필 : 총체적으로 이 집이 문제다, 이거네요. (짧은 사이) 지금 그 말 하는 거잖아요. 마을 비상 된 것도 이 집 때문, 흰개미 생긴 것도 이 집 때문, 집이 갉아 먹힌 것도, 마을이 건조한 것도, 다른 집 나무 시든 것도, (지한을 가리키며) 사람들 저렇게 찾아오는 것도! 이 마을 사람들 불행해진 게 다 여기 때문이라는 거잖아요! 어떡할까요. 일일이 찾아가서 사과라도 할까요? 그러면 되겠어요? 근데 어쩔 수 없어요. 그거 알아요? 이 집은 그렇게 생겨먹었어요. 수많은 아버지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생겨먹었다고요!
---「사막 속의 흰개미」중에서

지한 : (땅 밑을 보다가) 우리, 허공 위에 서 있는 거예요?
에밀리아 : 허, 공……?
지한 : 말도 안 돼……. 진짜 말도 안 돼……. (짧은 사이) 만약 그렇다면, 정말 그런 거면 재난이네요.
에밀리아 : 재난?
지한 :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 작은 흰개미들이 이 집보다 큰 집 짓고 살고 있으면, 그거 재난이죠. 나쁜 거 아니에요?
에밀리아 : No way. 그냥 자연현상이죠.
지한 : 실제로 이런 적 있어요? 개미가 인간을 압도한 적.
에밀리아 : (곰곰 생각하다가) 히스파니올라(Hispaniola)아일랜드 알아요?

지한, 고개를 젓는다.

에밀리아 : 쿠바 동쪽에 있는 섬인데, 600년 전에 스페인 사람들이 거길 차지하려 했어요. 근데 섬에 개미 너무 많아서 결국 못 했대요. ‘개미와 사람의 전쟁’으로 유명해요. 그때 스페인 사람들 기도 열심히 했어요. 개미한테서 우리 지켜달라고.
---「사막 속의 흰개미」중에서

지율 : 너 이 바닥에서 완전 또라이라고 소문났어. 알아?
은우 : 네.
지율 : 알아?
은우 : 지금 선배가 말해줬잖아요.
지율 : ……좀 상식적인 선에서 재밌는 거 많잖아. 그런 거 두고 넌 꼭 엉뚱한 주제 들고 오더라. (짧은 사이) 야, 죽음이 왜 없냐? 우리 아빠도 죽었고, 니네 아빠도 죽었고, 작년에는 우리 피타고라스도 죽었는데. 그것뿐이야? 내가 진짜 사랑하는 로빈 윌리엄스도 죽었다고. 그런데 죽음이 왜 없어?

은우, 한숨을 쉰다.

지율 : 죽음이 진짜 없는 거라면, 그런 거면, 난 왜 그 사람들을 못 보는 건데. 어?
---「죽음들」중에서

젊은 죽음 (늙은 죽음에게) 사람들은 어디서 저 말을 다 배우고 오나 봐. 왜 하는 말이 다 똑같지? 난 저 말이 제일이해가 안 가. 뭘 지켜? 뭐로부터? 누구를? 혹시, 우리 두고 하는 말이야? 우리로부터 지킨다는 건가? (늙은 죽음에게) 봐. 내가 말했지? 사람들은 뭐랄까, 우릴 너무, 응 그래, 몹쓸 것처럼 취급해. 너무 차별한다고. 삶은 막 이렇게 추켜세우고, 우리 같은 죽음은 엄청 깎아 내리고, 응? 삶이, 뭐 저 혼자 만들어지는 건가? 다 우리가 있으니까 삶이라는 것도 그렇게 큰소리 떵떵 치며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우리가 얼마나 젠틀한데. 깍듯하고,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근데 맨날 우리는 기피 대상 1호로 취급하고, 이 일도 도대체가 못 해먹겠어. 도대체 인간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우리가 옆에서 지켜주고, 부추겨주고, 호호 불어주는 건 알지도 못하고. (늙은 죽음에게) 그래, 안 그래. 그래, 안 그래?
---「죽음들」중에서

은우 : 선배, 저희 아빠도 작년에 돌아가신 거 알죠?

지율, 고개를 끄덕인다.

은우 : 그런데요, 전 그때 한 번 더 느꼈어요. 아, 정말 죽음은 없구나. 표면적인 죽음은 있지만 실질적인 죽음은 없다. 봐봐요. 우리가 여기 있잖아요.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엄청난 우주의 패턴 안에 있는 거잖아요. 수많은 진동 안. 그 진동이 뭐예요? 에너지잖아요. 그 진동의, 그 파동의 영향 안에서, 이 우주가 서로를 살게 도와주잖아요. 우리 아빠는요,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 저한테 더 크게 영향을 미쳐요. 아빠가 있을 때보다 없는 지금 더 많이 생각나거든요.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죠. 그게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변화시키니까 에너지라고 할 수 있고. 전 그렇게 믿어요. 죽은 자들의 몸은 여기 없지만, 그들의 에너지는 우리와 함께 있다.

지율, 두 죽음을 본다.

지율 : 그럼…… 죽음도 어쩌면…… 죽음이라는 생을 사는 걸지도 모르겠네.
---「죽음들」중에서

재이 : 야, 성 대리. 내가 네 팀장이야. 아무리 회사가 편하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않니?
혜윤 :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팀장님 제 팀장님이잖아요. 그런데 왜 한낱 대리인 저한테 일을 미루시냐고요. 그리고 저 이 회사 다니면서 한 번도 편한 적 없었어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컨디션, 만들어주기나 하셨어요?
재이 : 지금 네가 이렇게 대드는 게, 내가 편하게 해줬다는 증거야―, 알아? 그리고 너 그 나이에 신입으로 여기 들어온 거, 누구 덕분이야? 내가 대표님 설득해서 들어온 거야. 너 뽑은 사람이 나라고, 어? 그런데 이렇게 사사건건 걸고넘어지고 대들면 곤란하지. 권대리, 임 대리, 오 주임, 왜 다 그만뒀지? 너 때문이잖아. 네가 다 이겨먹어서 걔네들도 힘들다고 회사 나가버린 거잖아. 회사 물 좀 적당히 흐려라. 자격지심이니 열등감이니? 그래―, 나이 먹을 수 있어. 일 못할 수 있어. 공부하다가 인생 늦게 출발할 수 있다고. 그럼 양심이라도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혜윤 : (재이를 빤히 보다가) 대현그룹 사사 건―,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인쇄 넘긴 사람 팀장님이잖아요. 사사는 버짓(budget) 크니까 인쇄 사고 나면 안 된다고 마지막으로 직접 보고 넘기신다면서요. 잘못한 건 팀장님인데 광고주한테 뭐라고 했길래 거기서 저한테 그렇게 화를 내요? 제가 그렇게 만만하세요?
재이 : 너야말로 내가 지금 만만하니?
---「오피스」중에서

경원 : 작가님.
세범 : 네?
경원 : 저 이런 인터뷰, 적지 않게 해봤거든요.
세범 : 그런데요?
경원 : 그런데, 그런데…… 제가 원하는 대로 기사가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세범 : 네?
경원 :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다 사라지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남아요. 저를 보여주는 말은 다 없어지고, 제가 아닌 말들만 남아 있더라고요. (사이) 이 인터뷰도 그렇게 되나요?

사이

경원 : 그래서 말인데요. 질문지 한 번만 봐도 돼요?
세범 : 네?
경원 : 질문, 한 번만 봐도 돼요?
세범 : ……그러세요.

세범, 노트북을 경원에게 보여준다.
경원, 노트북 속 질문을 읽다가 조심스럽게 키보드에 손을 갖다 대고 타이핑하기 시작한다.
---「오피스」중에서

민제 : (한숨을 쉬며) 이거 사보예요, 사보―. 네? 사설 쓰세요? 저희― 날카로운 글 필요 없어요. 누굴 두둔하는 글도 필요 없고, 특정 사람의 생각과 입장이 담긴 글도 필요 없다 이겁니다. 저희 회사 입장만 잘 나타나면 돼요. 작가님은 그걸 써주시면 되고요. 아니, 왜 이런 거에 시간 낭비를 하게 하세요. (한숨을 쉬며) 당위문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외주업체에만 오면, 제가 무슨 독종이 되는 것 같아요. 저를 왜 이렇게 난감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하아, 진짜. (짧은 사이) 대표님, 저희 별거 아닌 거에 피곤하게 대응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시끄러워지지 않도록 잘 처리해주세요. (나가려다가 멈춰 서서) 작가님 아니어도, 저희한테 날카로운 펜촉을 갖다 대는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네? 그런데 저희 돈으로 만드는 저희 사보에서도 그걸 겪어야 합니까?
---「오피스」중에서

경원 : 코가 없으시네요.
주한 : 아, 네…….
경원 : 도망갔나 봐요.
주한 : 아, 네…….
경원 : 저, 좀 크게 얘기해주실래요. (귀를 가리키며) 하나밖에 안 남아서.
주한 : 아, 네.

어색한 사이

경원 : 어쩌다 도망갔어요?
주한 : 모르겠어요. 그냥 냄새만 맡았는데…… 도망가더라고요. 그러는 그쪽은…….
경원 : 저도 모르겠어요. 나도 그냥 소리만 들었는데.
주한 : 아…….
---「산악기상관측 - 첫 번째 이야기」중에서

주한 : 산은 참 이상해요. 멀리서 보면 예쁜데 막상 들어와 보면 인간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 (경원의 피 묻은 이마를 보고) 그래서 그런가. 산에 들어오면 이렇게 항상 피를 보더라고요. 전 그래서 산이 싫어요. 그래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산에 묻어요. 하나 둘 모아서, 한 번에 불 지르면 되니까. (짧은 사이) 전 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아요. (짧은 사이) 여긴 그런 곳이니까.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곳. (짧은 사이) 우리를 배신하는 곳. (짧은 사이) 내리세요.
경원 : ……뭐?
주한 : 내려요.
---「산악기상관측 - 두 번째 이야기」중에서

경원 : 넌 진짜 겁이 없구나.
정인 : 뭐?
경원 : 변하는 거 안 무서워? 새로운 사람 만나면, 그래서 이전 거 다 포기하고 그 사람한테 가면, 그동안 쌓아온 거 죄다 사라지는 거잖아.
정인 :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난 누가 내 옆에 오래 있는 게 더 무서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아서. (사이) 다 변하는 거잖아. 근데 변하지 않고 있으면, 점점 믿고 싶어진단 말이지. ‘변하지 않을 거다. 이 사람은, 이 상황은, 이 시간은 그대로일 거다.’ 근데 그게 함정이거든. 인생을 망하게 하는 함정.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그리고 당장 나도 변하는데, 뭐.

---「산악기상관측 - 세 번째 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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