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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시의 자리는 어디인가?―이시영, 김유태, 김유석의 시 고독한 단독자들의 노래―허연, 박소란, 손미의 시 조개 리어카를 밀고 세상을 건너다―박형권론 반타블랙: 사랑의 재전유, 검은색의 재전유―최수란론 순간적인 시대에 영원을 노래하는 시인―김성철론 빈방을 내어주는 시인―안창섭론 미메시스 그리고 일상의 환상성―나정호론 서정의 완성, 사랑의 완성―황진구론 겨울의 시인―김종철론 천둥번개 꽂힌 자리에 핀 채송화―‘작은詩앗·채송화’론 풍경과의 대화, 언어와의 대화―김민론 그 많던 슈퍼들은 어디로 갔을까?―황종권 『방울 슈퍼 이야기』 박스에 든 사람들―박장, 강백수, 박정은, 이예진의 시 2부 이해되고 사라질 것인가 감각되어 남을 것인가 ―이머시브 SF 뮤지컬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 독―최보윤 작, 연극 〈독〉 아이린, 이미지의 왕국에서 추방되다 마스크걸과 시뮬라시옹 카눈과 카눈 외로운 황홀함 어떤 시참 이것이 K잼버리다 퇴적공간, 종로3가 튀르키예는 ‘사람’이다 3부 아름다움, 다정함과 폭력 사이―서울시향 2020 신년음악회 단상 Brava! 클라라 주미 강!ㅡ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 소리의 물성ㅡ클라라 주미 강&김선욱 베토벤 바이올린 전곡 여름의 마지막 장미ㅡ쾰른 귀르체니히 교향악단&클라라 주미 강 작고 연약한 것의 힘ㅡ도이치캄머필하모닉&클라라 주미 강 무반주―클라라 주미 강 무반주 바이올린 리사이틀 사랑했으므로 승리했다―캡틴락, 〈청승〉에 부쳐 사랑의 탐구, 사랑의 온도―조동희&캡틴락 〈연애시〉에 부쳐 관크와 인공지능, 그리고 아우라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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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텍스트 바깥의 사회적, 시대적 현실 속에 침투해 유의미한 자리를 지켜야하기도 하지만, 시 안에서 스스로 머물 곳을 항구적으로 탐색해야하기도 한다. 탐미주의적으로 말하자면, 시의 자리는 오직 시 안에 있는 것이다.
---「시의 자리는 어디인가?」중에서 우리는 개인들이다. 철저한 단독자이지만 다른 개인을 연민할 줄 아는 개인, 그러나 결국 개인인 개인, 개인 집단인 사회에 속한 개인, 사회에 의해 이방인이자 이주자, 또는 주변인이 되어버린 개인, 개별이면서 별개인 개인,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자기공간에 웅크린 채 사적인 감정들을 혼자 붙잡고 있는 고립된 개인이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단독자인 개인은 고독과 불안, 절망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본다. ---「고독한 단독자들의 노래」중에서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으로 우리는 자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땅에서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고, “그 손을 놓지 않고 걸어가는 너”를 사랑할 때 남김없이 사랑하자. 죽음과 이별의 외적현상일 뿐인 부재와 소멸에 겁먹지 말자. 모든 이별에 의연하자. 슬프더라도, 슬픔에 너무 오래 함몰될 때, 그래 검은색으로 세상을 다 칠해버릴 때 우리가 같은 세월을 살면서 찬란히 사랑했다는 아름다운 진실마저 빛을 잃는다. ---「반타블랙: 사랑의 재전유, 검은색의 재전유」중에서 시인은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존재다. 단조로운 일상은 그런대로 견디지만 정신의 권태는 견딜 수 없는 자들이다. 매일 흰 밥에 된장국은 먹어도 어제와 같은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짓은 할 수 없다. 시 쓰기란 세계 재편의 열망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세계가 재편될 때 시인 내면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 결국 자기 존재의 운명마저 전환하는 혁명이 바로 시 쓰기다. 시는 낭만적 혁명과 모반의 가장 아름다운 총칼이다. ---「빈방을 내어주는 시인」중에서 인간의 위엄은 죽음의 순간에 판명나기 마련이다. 죽음은 어떤 삶에 무릎을 꿇고 그를 겸손히 모실 것인가, 어떤 삶에 목줄을 채우고 비참하게 그를 끌고 갈 것인가. ---「겨울의 시인」중에서 아이린도 그랬을 것이다. 무수한 유리들이 빛을 난반사하는 이미지의 궁전 속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진짜 자신인 줄 알았을 것이다. 기획사도, 방송국도 최고의 상품인 ‘걸그룹계 여신’을 계속 판매하기 위해 금지옥엽 다루듯 했을 게 뻔하다. 행여나 깨질까봐 조심조심, 방송을 앞두고 혹시라도 심기가 불편해보이면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면서. 그러니 매니저도, 코디네이터도, 백댄서도, 스타일리스트도, 에디터도 다 알아서 기었을 테고, 아이린은 그들의 굴종이 자신이 마땅히 누릴 권리인 줄 착각했을 것이다. ---「아이린, 이미지의 왕국에서 추방되다」중에서 클래식 연주자의 이데아는, 자신의 천재성은 사라지고, 작곡가의 위대함만 나타나는 순간일 것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바이올리니스트의 화려한 기교보다 전체적인 조화와 서정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베토벤 이후 비르투오소 시대에 카덴차가 만들어져 붙었다고 한다. 모든 예술작품은 완성되는 순간, 소유권이 창작자에서 향유자로 이전되므로 베토벤 역시 불가침의 신화는 아니다. 새로운 해석과 파격이 허용되는 것이 클래식의 역설적인 매력이다. 하지만 연주자가 작곡가 위에 자신을 올려두려 할 때 해석은 탐욕이 되고, 원작의 가치는 훼손된다. ---「작고 연약한 것의 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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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시인 이병철의 문학과 문화 읽기 -고독한 예술가들의 노래를 떠받치는 은은한 코러스 시인 이병철의 평론집 『빛나는 의심 눈부신 균열 - 고독한 예술가들의 노래』가 도서출판 걷는사람의 네 번째 인문학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병철 시인은 2017년 첫 시집 『오늘의 냄새』를 시작으로 총 두 권의 시집과 『원룸 속의 시인들』 『빛보다 빛나는 어둠을 밀며』 등의 문학 비평서, 그밖에도 여러 권의 산문집을 펴내며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펼쳐 왔다. 평소 한국사회의 시의성 있는 주제와 문학 작품을 오버랩해 문학과 현실의 접점을 탐색해 왔던 이병철은, 이번 평론집에서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뮤지컬, 연극,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를 비평의 장으로 끌어들여 풍요로운 사유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주로 문단의 관심과 주목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의 시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 문학장 안에 마땅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비평적 소명으로 삼고 있다. “시의 자리는 어디인가?”를 질문하면서 오늘날 사회 현실 가운데 시가 어떠한 존재 목적을 가져야 하는지 제안하기도 하고, 한국사회 부동산 문제와 거주 불안이 젊은 시인들의 시에 재현되는 양상을 짚어보며 리얼리즘적 목소리를 더욱 돋우기도 한다. 이병철의 문장들은 일회적이고 찰나적인 포스트모던 사회에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문학의 가치를 노래하는 데 주로 바쳐지지만, 2부의 대중문화 콘텐츠 평론은 비평적 글쓰기를 문학 너머로까지 확장하면서 보편적 공감을 일으키고, 독자들에게 인식과 사유의 전환을 요청하기도 한다. 3부에서는 음악을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하는데, 특히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연주에 대한 묘사와 해석은 음악이라는 소리 언어를 활자 언어로 변환하면서 글을 읽는 이의 마음에 은은한 g마이너의 비브라토가 흘러들게 한다. “어떤 소리는 쏟아지고, 어떤 소리는 흐르고, 또 어떤 소리는 스며든다. 이 소리는 불어 닥치고, 저 소리는 부딪쳐 되돌아온다. 오는 소리는 잡고, 가는 소리는 멀리 보내준다. 마치 사람처럼.”(255쪽) 한편 “사회 제도라는 ‘집단’의 질서에 속할 것을 강요받으면서, ‘개인’을 잃어버릴수록 ‘개인’을 회복하려는 욕망이 강해지는 단독자들은 타인과의 소통을 스스로 차단하거나,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교류 대신 개인과 개인의 내밀한 인간적 교류를 희망한다. ‘혼밥’과 ‘혼술’을 선호하는 가운데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려 시도한다. (중략) 현대인들은 겉으로는 활달하고 사교적이나 속으로는 고립과 소외에 대한 불안으로 언제나 괴로워한다”(30쪽)고 말하는 시인은, 모두가 ‘고독한 군중’(데이비드 리스먼)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예술과의 관계 맺기야말로 현대인의 근원적 외로움과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임을 역설한다. 한 사람이 하나의 감정을 가질 때 그는 바로 그 감정이 된다. 슬플 때 나는 키 큰 슬픔이다. 기쁠 때 나는 기쁨이라는 상태가 아니라 기쁨 그 자체다. 화날 때 나는 불덩어리고, 미워할 때 나는 악(惡)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목숨은 사랑이다. 감정은 어떤 주인도 섬기지 않는다. 감정이 곧 자아이자 주체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다스릴 수도 숨길 수도 없다. 소리에는 감정이 있다. 비약하자면 소리는 감정이다. 소리가 감정이라면 바이올린 연주자의 소리는 곧 바이올리니스트 그 자신이다. ― 「여름의 마지막 장미」 부분 이병철의 말마따나 “감정은 어떤 주인도 섬기지 않”으며, 그 자체로 “곧 자아이자 주체”다. 모든 예술 작품은 감상자에게 해석할 자유를 허락한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감정적 자아, 감정적 주체가 되는 일이며, 집단 유행이나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 행복한 나, 너, 우리가 되는 과정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예술 안에서 ‘고독’도 노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작가의 말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라던 이상의 고백은 가난이 예술가에게 질병과 굶주림이라는 절망을 가져다 줄 때 오히려 정신은 풍요롭다는 역설이다. ‘육체’의 세계인 자본주의 도시, 대중성과 결별하여 정신적 공간인 ‘방’ 안에 스스로 고립되는 순간 예술가는 마침내 ‘천재’를 회복해 ‘유쾌하’다고, 이상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문학이 더 이상 유쾌하지 않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 문학은 언제나 고통이고 절망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가 이상보다 13년을 더 살았다. 김유정보다, 기형도보다 11년을 더 살았다. 나는 이미 그들처럼 될 수 없다. 내 생은 평범한 시민인 쪽이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숨어 살며 무언가 쓰고 있다. 이상의 방처럼 내 방도 글쓰기, 공상하기, 냄새 맡기 등의 정신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이고 싶지 않다. 천재는 애초에 틀렸고, 박제가 되기 싫은 것이다. 잘 살고 싶다. 건강하게, 남들처럼, 돈 벌고, 결혼하고, 저축하고. 밤마다 세속적 욕망과 문학이 격렬하게 싸운다. 삶과 문학 사이에서 길항하다보면 삶도 문학도 다 이룰 수 없다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 2023년 가을 이병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