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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불에 탄 하늘이 전부 지붕인 세상
7월 8일 물고기 악기 시의 작은 역사 조각 비누 지붕이라는 상징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사이프러스 폭우 만월의 여름밤 7월 14일 수련회 겨울장마 어떤 종교의 학습 사랑의 찬가 2부 삶도 죽음도 일하지 않는 몽유도원 허밍은 거침없이 빙하기의 사랑 소나기 촛불의 왈츠 블루홀 설리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Limbo 천렵 해남 영원이라는 잠꼬대 너무 많은 빛이 프로포폴처럼 연못의 일요일 3부 나를 용서할 신이 없는 뼈의 불면 데칼코마니 죄와 쥐의 오독 방주 밖에서 혼자 화목제 부재중 전화 귀로 즐거운 우리 집 오늘 같이 있는 사람은 내일 없는 사람 빙장 철제침대의 행진 드림캐처 첫눈이라는 죄책감 사순절 묵상 부활절 묵상 4부 함께 어두워지는 날에 나비 옥탑의 시에스타 천사의 기도 비를 듣는 오늘은 강물의 속공 플레이 벚꽃은 참돔의 미래 꽃잎이라는 장마 홍차가 아직 따뜻할 때 플로어 스탠드 노을의 방식 바다 우체국 클라라를 위한 시 해설 사랑이라는 이름의 종교 ―임지훈(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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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매몰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했다
말이라기보다는 길들이지 못한 야생의 새 같았다 새라기보다는 흙을 뚫고 나오는 첫여름의 아지랑이 같았다 아지랑이보다는 파도에 떠밀려 온 폐그물, 아무것도 잡지 못해 다시 공중으로 흩어지는 빛들, 빛이 닿자 어두워지는 반대쪽 숲의 새소리…… (중략) 사람 대신 사물이 말하는 일이 흔해졌다 그건 알아들을 만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건 하나씩을 들고 광장에 모여 백 년 동안 그것을 흔들었다 춤이라고 해야 할까 주술이라고 해야 할까 누구도 표현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모두 죽고 사물만이 남았을 때 세상은 단 한 권의 사전이 되어 있었다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 사전을 펼쳐 언어를 학습한다 무언가 쌓여 오르는 꿈에는 중력이 있다 아무것도 쌓이지 않고 오직 쌓이는 느낌만이 연속으로 쌓인다 --- 「시의 작은 역사」 중에서 다시는 신을 믿지 않겠다고 했지만 너를 믿기 위해 나는 위독해지기로 했다 기도하자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이끼가 자라나고 핏속에 이끼가 자라나고 물에서 살과 뼈가 만져졌다 흐르는 것을 붙잡는 손이 생겼다 펜을 들고 탑을 오른다 나도 신이 되려고 ---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중에서 최초의 사랑과 살인이 모두 말싸움에서 시작됐다는 거 알아? 이 대화가 끝나면 우리는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몰라 싸우면서 자라는 아이들처럼 우리도 흩어지는 말들을 쌓아 올려 구름 위까지 올라가 보자 응? 닥치고 내 말 들으라고? 나는 닥치고 귀를 펄럭인다 네 저기압이 무거운 빗방울들을 끌어내릴 때 신이 파랗게 쏟아지며 소리친다 접이식 3단 우산이 너희의 방주야! 우산 밖에서는 비가, 우산 속에서는 섬유유연제 향기가 내 서툰 사랑의 구원인 오늘, 서로 더 말하지 못하게 입술을 삼켜 한 문장짜리 책이 되어 버리는 우리의 신앙 --- 「소나기」 중에서 무덤에 내리는 비에서는 당신이 찬물에 손 씻던 소리가 나 오래전 당신이 신이었을 때 나는 신앙에 미쳐 몇 개의 세상을 환각처럼 고통 모르고 살다 죽었으므로 후회 없는 뼈, 다만 지금은 신을 사랑한 기억이 썩지 않아 뼈아픈 흙속의 긴 불면 --- 「뼈의 불면」 중에서 받으면 자꾸 올까 봐 받지 않았다 울면 자꾸 받을까 봐 울지 않았다 여우비 지나가는 소리일 거라고 절기를 착각한 끝서리의 입술일 거라고 전화벨은 내내 울리고 바람에서는 살아 있는 것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당신이 사는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으므로 꿰미에 걸어 둔 물고기를 강으로 돌려보냈다 첫 매화를 꽂고 싶었을 하얀 귀밑머리들이 흘러가고 벨소리가 멈추고 안개가 걷히고 나는 가장 붉은 매화를 사진 찍어 전송했다 확인할 수 없는 어떤 확인처럼 맑은 날씨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 「부재중 전화」 중에서 어제의 구름이던 물과 얼음에게 녹는 것과 깨져 뒹구는 것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운지 묻고 싶다 죄책감이란 더 아프게 죽겠다는 다짐이니까 산 채로 당하는 조장鳥葬도 있을까 손톱과 눈과 새 떼가 흰빛으로 날아온다 겨울은 나를 쪼아 먹는 부리질 두 팔을 벌린 채 살점 떨어지는 날씨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구름 하나 없이 쨍쨍한 우리가 안양천 윤슬로 반짝거리는 봄날이 있다 화르르 쏟아지는 벚꽃 아래 가장 아름다웠던 개종 --- 「첫눈이라는 죄책감」 중에서 한 점의 눈은 선이 되고 선은 최초의 면이 되고 당신이 제게 준 것은 부분은 뜨거워도 전체는 얼 수 있는 마음 그러니까 마치 이글루 속의 모닥불 같은 거 전부 녹아도 일부는 함께 흐를 수 없다면 십 초가 평생이 되어 버린 저는 오늘 밤 눈 내리는 사막의 감정으로 날아가는 토마토의 침울한 희망으로 인간에게 갈래요, 전부 잃어버리기 위해서 --- 「천사의 기도」 중에서 나는 마음을 알지 않으려고 세상을 전부 그림자로 만든 적이 있다 겨울 태양이 외로울까 봐 그를 업고 함께 어두워지는 날에는 들판마다 타오르는 부끄러움이 있다 불로 비춰야만 읽을 수 있는 문장들 펄펄 끓어야 비로소 우러나는 빛 태양이 지닌 단 하나의 작은 빙점을 나는 사랑이라고 배운다 --- 「홍차가 아직 따뜻할 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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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시인수첩》신인상에 시가, 《작가세계》신인상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병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가 걷는사람 시인선 51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이병철 시인은 첫 번째 시집 『오늘의 냄새』(2017)로 “‘감각의 이미지스트’라고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박상수 시인)는 찬사를 받으며 문단이 주목하는 젊은 시인으로 떠올랐다. ‘냄새’와 ‘소리’ 등 뛰어난 신체적 감각과 선명한 이미지로 자신만의 시적 사유를 확장시켜 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는 시 언어의 원초적인 미학을 선보이며 세계의 불화 속에서 구원의 방식으로서의 ‘신’이라고 명명하는 다양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시인은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를 무한수의 신앙이 열리기 시작”(「7월 8일」)하는 곳에 서 있다. 시인에게 이 세계의 신은 다양한 방식으로 호명되는데 ‘나’라는 일인칭이 되고, ‘당신’이라는 이인칭이 되기도 하며 “패배하는 신, 죄를 짓는 신, 구름을 보다 우는 신, 무릎이 까진 신, 코인노래방에서 노래하는 신”(「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등 비인칭으로 명명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인의 범신론적인 세계관 속에서 시적 사유는 확장하고, 그로써 대상과 사물, 세계와 존재를 구원의 방식으로써 접근하여 사랑한다. 시인이 말하는 신은 각자의 신이고 동시에 모두의 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구원이고 동시에 모두의 구원이다. 불과 물이 대립하듯이 나와 당신이 마주하는 방식 시인은 일찍이 첫 시집에서 유동하는 불과 물의 이미지로 그만의 고유한 시적 방식을 보여 준 적이 있다. 그런 불과 물의 이미지들과 상징성은 이번 두 번째 시집에서도 도드라지는데 “네 심장에 얼음이 열렸을 때 나는/온몸에 불을 지르고 네게로 들어갔지”라는 ‘시인의 말’처럼 그건 대상과 대상,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으로 읽히게 된다. “부분은 뜨거워도 전체는 얼 수 있는 마음/그러니까 마치 이글루 속의 모닥불 같은”(「천사의 기도」) 심정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태양이 지닌 단 하나의 작은 빙점을/나는 사랑이라고 배운다”(「홍차가 아직 따뜻할 때」)며 깨달음에 이른다. 그렇게 충돌하고 대립하고 자각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랑이 발생한다. ‘나’와 ‘당신’이 마주하면서 각자의 본질을 깨달아 간다. 사랑의 존재론적인 의미를 풀어내면서도 시인의 시적 언어는 긴장감을 놓지 않는데, “강물이 펼치는 속공 플레이”(「강물의 속공 플레이」)처럼 그의 문장은 뻗어 나가고 “심해 동굴로 내려가”서 “떠오르는 음악”(「물고기 악기」)을 마주하면서 “소리는 빛보다 강하고 섬세한 언어”(「클라라를 위한 시」)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이번 시집의 키워드는 ‘사랑’, ‘구원’, ‘신’, ‘종교’ 등으로 손꼽을 수 있다.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비가 멈추지 않는 여름 내내/사랑의 행진을/용서라는 단죄를/추락하는 불면”을 이어 가면서, 과거라는 “끝나지 않은 서사”에서 미래라는 “끝나 버린 서사”까지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기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다시는 신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끝내 “너를 믿기 위해 나는 위독해지기로 했다”(「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면서 스스로 통증을 감내한다. 이러한 선언이 “우리를 구원하는 건 신인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옥에 있네/구원하지 못한 건 신인데 지옥을 그리워하는 건 내 평생이 되었네”(「겨울장마」)라는 절절한 노래가 되어 흘러나온다. “현실에의 몰입 속에서 화자는 여전히 자신의 현실이 깨어질 지점을 기다리며 그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임지훈 평론가의 해설처럼 시인은 현실에 몰입하면서도 끊임없이 현실 너머로의 탈주를 꿈꾼다. 대학 시간강사로 살면서 강의와 연구, 창작을 병행하는 그는 스쿠터에 음식을 싣고 밤길과 빗길을 달리는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 현실의 고통에 의해 자기 존재가 소진될 때, 소문난 낚시 마니아이기도 한 시인은 강과 바다 등 현실이 일시 정지된 자연에서 자기 존재의 충만함을 잠시나마 회복하려 시도하곤 하는데, 몇 해 전에는 문명과 완전히 차단된 극동러시아 아무르강 정글에서 ‘지구상 모든 연어의 아버지’라 불리는 신령한 물고기 타이멘(Taimen)을 낚기도 했다. 1미터 20센티미터가 넘는 타이멘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는 시인은 현실의 고통이 깊을수록 더 아득한 영원을 본다. “현실로부터 피어오르는 고통이 단순한 좌절과 절망으로 귀결되지 않는 것은 그 고통으로부터 다시금 현실 너머를 향한 열정이 피어오르기 때문”이리라. 시인의 말 네 심장에 얼음이 열렸을 때 나는 온몸에 불을 지르고 네게로 들어갔지 살육과 구원이 쩡쩡 얼어붙은 강에서 한 방울의 영원이라도 녹이고 싶었지 신에게는 신의 무한이 있고 인간에게는 사랑이라는 찰나가 있고 나만 녹았지 이제 나는 스스로 없는 자 2021년 10월 이병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