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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_009
작품 요소 _011 치즈 _013 해설 | 내 인생 최고의 시절 _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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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에게는 거룩한 뭔가가 없지. 그저 맨몸으로 이 세상에 서 있는 인생들인걸.
--- p.26 “먹는장사는 망할 일이 없어. 어쨌거나 사람들은 먹어야 하니까.” --- p.33 알다시피 내 나이가 오십이 코앞이고 30년 동안 종살이를 한 흔적은 당연히 내 몸에 새겨져 있지. --- p.34 사무원들은 대체로 전문성도 별로 없는 데다 서로 워낙 비슷비슷해서 쉰 살 먹은 경력직이라 해도 하루아침에 뻥 차버리고, 똑같이 일을 잘하면서도 싸게 먹히는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힐 수 있지. --- p.34 전차 안에서 누가 나를 밀면 그냥 밀렸고 누가 내 발을 밟아도 발끈하지도 않았지. --- p.34 나는 여느 때처럼 밥을 먹었어. 더 먹지도 덜 먹지도 않았고, 더 급하게도 더 천천히도 먹지 않았지. 한마디로 말하면, 종합 해양 조선 회사에서 보낸 30년간의 머슴 생활을 앞으로 몇 년은 더 해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그렇게 먹었다는 말이야. --- p.35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치즈라는 품목이 좀 역겹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어. 만약 다른 품목, 예를 들어 튤립 구근이나 전구라면 오히려 더 좋겠다 싶었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특산품인데 말이야. --- p.37 맷돌같이 거대한 그뤼예르 치즈를 밑받침 삼아 그 위에 체스터 치즈, 하우다 치즈, 에담 치즈, 그리고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종류의 치즈가 놓여 있었어. 그중 큼직한 치즈 덩이 몇 개는 배가 쩍 갈라진 채로 내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지. 로크포르 치즈와 고르곤졸라 치즈는 녹색 곰팡이를 요망하게 드러내며 뽐내었고, 한 무리의 카망베르 치즈는 고름을 되는대로 흘리고 있었어. --- p.45 만약 내가 중세의 기사였다면 검정색 방패에 붉은색 치즈 세 개를 그려서 문장으로 삼지 않았을까? --- p.50 저 바보들은 저렇게 살고 있다네. 반면에 나는 비즈니스 세계라는 정글 속에서 내 손으로 열심히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어. --- p.88 저 징그러운 치즈벌레들은 보잘것없는 이 남자에게서 뭘 보고 있을까? 그때 갑자기 내 의자가 저절로 뒤로 밀리더군. 나는 벌떡 일어나서 치즈밖에 모르는 얼간이 네 명에게 성난 눈빛으로 고함을 질렀지. 지겨워 죽겠으니 그만하라고. --- p.111 모름지기 아버지는 강인하며 늘 한결같아야 하지. 직업이야 시장이건 책을 만드는 사람이건 사무원이건 일용 노동자이건 별문제가 되지 않아. 하지만 그게 무슨 일이건 오랜 세월 자신의 의무를 다해온 사람이 나처럼 누가 하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 뜬금없이 치즈 사업을 한답시고 웃기지도 않는 연극을 펼치면, 그런 사람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나? --- p.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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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데런 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빌럼 엘스호트의 대표작 플란데런 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로 손꼽히는 빌럼 엘스호트는 은행과 조선 회사, 광고 회사 등에서 일했고, 밥벌이를 이어가면서도 열한 편의 소설과 한 권의 시집을 펴냈다. 오랫동안 성실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이력은 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 소설인 『장미 빌라』를 시작으로 『환멸』, 『구원』, 그리고 광고업계의 기만적 행태를 다룬 『설득』까지 사업이나 직장 생활에 연관한 일련의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그러나 이후로 한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고 생업에만 전념하는데, 오랜 침묵을 깨고 10년 만에 발표한 소설이 바로 『치즈』다. 엘스호트는 이 소설을 단 십사 일 만에 써내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마음속에서 적어 내린 이야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것이다. 30년 차 직장인인 ‘라르만스’를 내세워 회사에만 가면 주눅이 들게 되는 샐러리맨의 심리를 코믹하고 생생하게 그린 『치즈』는, 다분히 작가의 개인적인 삶이 반영된 작품이다. 라르만스는 엘스호트의 또 다른 자아라고 인식되고, 소설 속 딸과 아내의 이름 역시 실제 딸과 아내의 이름과 같다. 엘스호트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치즈』를 가장 흡족한 작품이라고 언급했는데, 아마도 보통의 직장인이자 가장인 자신의 모습과 가장 맞닿아 있는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을 묘사한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내 삶의 단면이고, 광고와 상업에 대한 나의 혐오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광고라는 주제는 모사하기엔 너무 추상적이어서 치즈를 택했습니다. 치즈는 모양도 있고 색깔도 있고 냄새도 나고 때로는 악취도 나지요. 생선을 택할 수도 있었겠죠. 게다가 『치즈』는 내가 로테르담에서 일하던 때,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을 묘사한 것이거든요.(‘해설’에서) 라르만스는 한 조선소에서 30년을 근속했지만, 사장이 그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라르만스는 그럴싸한 모임에 나가면 어쩐지 자꾸 어깨가 옴츠러지고, 의사인 형에게도, 아내와 두 아이에게도 조금은 부족한 동생이자 가장으로 대우받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형의 친구인 ‘판스혼베커’로부터 “큰돈을 벌 수 있고, 당신은 그에 걸맞은 사람”이라는 부추김과 함께 치즈 사업을 제안받는다. 근사한 상호와 명함, 사무실, 그리고 치즈가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에 들뜬 라르만스는 덥석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치즈에 대한 아무런 애정도, 사업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이 일을 벌이면서 모든 게 꼬여만 가는데……. 결국 돈을 제일 많이 버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법. 미래는 내 앞에 열려 있고, 나는 치즈에 일심전력을 다하기로 굳게 결심했네.(47쪽)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사직서 한 장씩은 품고 있을 것이다. 30년을 근속한 라르만스에게도 조선소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터. 그러나 그때마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니” “30년 동안 종살이”에 가까운 회사 생활을 버텨낸다. 치즈가 열어줄 찬란한 앞날을 그리며 사업을 시작한 후에도 의사인 형에게 가짜 진단서를 발급받아 회사로부터 병가를 얻는다. 어수룩하고 엉성해 보이는 그가 이러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은 “사회적 열등감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배출구”라고 생각했던 아내의 조언 덕분이다. 사업가로서의 허황된 꿈에 부풀어 치즈 공급 계약서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라르만스를 대신해 그 계약서가 언제든 ‘뻥 차일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짚어준 것도 아내였다. 작가는 아내를 소설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라르만스가 인간성의 균형을 잃거나 서사의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치밀하지도 영리하지도 못한 채 허세와 속물근성에만 물들어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낡은 권위 의식에 빠져 은근히 아내를 무시하는 라르만스를 소설적으로 비판하고 견제한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생애 대부분을 고단한 샐러리맨으로서 보낸 라르만스의 삶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라르만스는 늘 굶주려 있었다. 아이들의 숙제를 봐줄 시간도,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항상 부족했다. 게다가 임금 피크제에서 정점을 찍은 급여가 내리막길로 향한 뒤로는 경제적으로도 풍요롭지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라르만스가 굶주리고 목말라 했던 것은 건실한 직장인이자 가장으로서 회사와 사회, 가족들로부터 인정받는 일이었다. 소설은 내내 라르만스의 엉망진창 사업기를 우스꽝스럽게 그려가지만, 그가 끝내 주저앉으려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라르만스를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시킨다. 등장인물을 끝내 절망하게 하거나 결말을 뭉뚱그림으로써 소설적인 물음이나 여운을 주는 작품이 있다면, 이 소설은 실패를 통해 꿈꾸었던 자리에 이르게 하는 독특한 아이러니를 택한다. “쓰지 않아도 되는 단어는 없고, 과한 몸짓도 없으며, 불필요한 언급도 없다.” 문장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일을 네덜란드어로 ‘엘스호트 검토’라고 부를 정도로 엘스호트의 문장은 간결하고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네덜란드의 작가이자 비평가인 메노 테르브라크는 그의 문체를 “쓰지 않아도 되는 단어는 없고, 과한 몸짓도 없으며, 불필요한 언급도 없다”라며 높이 평가했다. 엘스호트는 1934년에 『치즈』로, 1942년에 『연금』으로 플란데런 문학상을 2회 수상했고, 1948년 『도깨비불』로 3년제 국가 산문상을 받았다. 1951년에는 네덜란드어 문학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작가에게 수여하는 콘스탄테인 하위헌스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위대한 벨기에인’의 플란데런 부문에서 마흔아홉 번째 인물로 선정되는 등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작가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