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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6
머리말 14 1장 사후 기록 29 다섯 가지 나의 기원 30 일사각오 45 구원의 즐거움 53 2장 십자가를 향한 기도 59 겸손하기 위하여 60 성신과 기도 63 기도 69 십자가의 길로 가자 72 십자가의 길로 행하라 76 죽음의 준비 82 3장 주와 동행하는 삶 89 하나님을 열애하라 90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96 마귀에 대하여 104 하나님 앞에 사는 생활 115 무거운 짐진 자여 예수께 오라 124 주의 재림 128 4장 사명과 부탁 137 천하에 복음을 전하라 138 은총과 책임 146 목사직의 영광 153 이삭의 헌공 162 전도의 사명 168 기독교와 여자 해방 174 졸업생 여러분에게 보내는 선배들의 고백과 부탁 181 5장 편지와 증언 185 윤치병 목사에게 보낸 편지 186 경남 부인 전도 총회에 보낸 편지 187 손양원 목사의 글 189 주기철 목사 연표 192 주기철 목사 연구를 위한 참고문헌 193 |
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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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여! 나는 의를 사모하는 마음이 갈급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완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불타지 않습니다. 나의 죄악을 위해 재에 앉아 가슴을 치는 통회가 심각하지 못합니다. 나의 부족을 생각하고 향상하고자 하는 정열이 강렬하지 못합니다. 이는 분명히 내 맘이 비어 있지 못한 증거요, 나 스스로 무던하다는 오만입니다.
주여! 당신의 얼굴빛 아래 내 심령의 자태를 그대로 드러내시사 나로 하여금 애통하고 회개하게 하옵시며, 당신의 완전을 향해 달음질하게 하옵소서. 오, 주여! 나는 당신의 겸손을 사모하옵고 당신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 「겸손하기 위하여. 기도지남. 1939.」 중에서 오늘 우리는 십자가라는 것을 막연히 생각할 때, 그 길에 놓여 있는 어려운 장면만 보고 그 어려움을 이기고도 남을 기쁜 장면은 잊어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과거 성자들의 경험에 의하여 십자가의 길에 기쁨, 만족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기쁨은 과연 고귀합니다. 믿는 자는 누구나 그 길을 거쳐 친히 그 기쁨을 맛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걸어갈 길은 세상 사람이 가는 길이 아님을 명심합시다! 십자가의 길! 그 길은 곧 우리의 갈 길입니다. --- 「십자가의 길로 행하라. 설교. 1937. 9.」 중에서 예수의 사랑을 깨달으면 예수를 전심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이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신자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나 헌금하는 것이나 전도하는 일, 기타 내적으로 일어나는 정욕을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연 그 같은 일은 우리의 힘이나 어떤 결심으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님을 극진히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넘쳐흐른다면 모든 난제는 문제가 될 수 없고, 또 어려운 것이나 마지못해 함이 되지 않을 것이며, 기쁘고 즐거움으로 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설교. 1937. 6.」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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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는 한국 교회가 낳은 최대의 순교자라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는 해방 이후 한국 교회의 역사와 신앙,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국가와 교회에 대한 이해,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 사상 등 한국 교회의 신학과 교회적 삶에 정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의 삶의 여정은 무엇에 복종하고 무엇에 저항해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고, 한국 교회에 순교 신앙의 실제성을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주기철 목사의 삶에서 가장 주요한 점은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일관된 반대와 저항이었다. 이 점이 그의 목회적 삶의 행로를 결정했고 순교자로서의 주기철 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와 목회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종교 정책, 특히 기독교 정책과 이로 인한 한국 교회와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복음적 신앙이야말로 그의 생을 이끌어 간 힘의 원천이었다.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 반대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신사참배를 하나님의 계명에 반하는 우상숭배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신사참배는 제1, 2계명을 범하는 죄악이었다. 이 점이 그가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둘째, 개인의 신앙 양심과 신교(信敎)의 자유를 억압, 탄압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의 순수성과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일제의 계속적인 탄압은 종국에 한국 교회를 훼파하려는 저의가 있었으므로 주기철 목사는 신교의 자유와 영적 자유를 주장하고 신앙의 순수성과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했다.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저항인의 길을 갔지만, 동시에 가난한 영혼을 감싸는 목회자였다. 우상숭배를 강요하고 교회의 순결과 거룩을 훼파하려는 세력에 저항했지만, 동시에 자상한 영혼의 목자이기도 했다. 그는 삶, 목회, 설교 그리고 신사참배 거부를 통해 무엇에 저항하고 무엇에 복종할 것인가에 대한 일관된 삶의 방식을 보여 주었다. 그 행동의 토대는 개인적 감정도, 민족주의도, 심리적 고집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가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감옥에서 투쟁하고 기꺼이 순교자의 길을 간 것은 성경의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가 주기철 목사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삶, 평생 하나님만을 열렬히 사랑했던 태도일 것이다. - 이상규(고신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