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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프롤로그 제1부 핏자국 위로 지나간 나비 1장 오, 청춘은 괴로워라 2장 광천동 낙원의 축일 3장 갈리는 두 길 4장 피의 날들 5장 혜숙의 죽음 6장 진공 7장 개기일식 제2부 징헌 사랑 8장 해방제의(解放祭儀) 9장 진혼 10장 고립 11장 대립 12장 그대 젊은 날의 극광(極光)이여 제3부 바람의 탑 13장 장백의(長白衣) 행진 14장 화약고 위의 시간들 15장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16장 마지막 메시지 17장 황혼 18장 주머니에 주민등록번호를 넣으며 19장 문 앞에서 20장 바람의 고요한 내부 21장 혼배성사 22장 마지막 목소리들 에필로그 <해설> 신부(神父)에서 신부(新婦)로 가는 길·정과리 |
黃芝雨, 본명 : 황재우
황지우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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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부: 그날 밤, 나는 부르튼 발로, 광천동까지 걸어왔습니다. 울면서, 울면서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하느님, 제 넋은 이제 벌레가 되었습니다.
허인호: 그네에 거꾸로 매달린 채 신부에게 다가와 말한다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예요오. --- p.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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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은 어떻게 성과 만나는가? 처음에 광주의 주민들은 아주 우발적으로, 가령, 시위를 구경하다가 곤봉에 맞아서, 혹은 “우리 아가씨들이 적십자병원에 피 주러 간당께, 따라갔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그런데 마침내 그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갖는다. 3부 18장에서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이 서로 제 이름을 밝히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그들이 분절된 언어를 가진 존재, 즉 의식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열흘간의 ‘광주’를 결속시켜주었던 ‘밥과 피의 공동체’”이다. 밥과 피의 공동체는, 그런데, 무엇인가? 그것은 태생의 공동체, 계급의 공동체가 아니다. 열흘 간의 광주에서 밥은 바로 그들이 스스로 치른 고난, 즉 노동을 가리키며, 피는 그들이 흘린 피, 즉 상처를 가리킨다. 밥과 피의 공동체는 함(행위)과 상처의 공동체이다.
성은 속으로 가라앉고 속에는 성이 가득 찬다. 그래서 성과 속은 만난다. 아마도 현식과 민정의 결혼은 이 성과 속의 만남을 상징화시키는 절차일 것이다(민정은 대학생이면서도 특이하게도 속의 성화됨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기능한다. 여기에는 꽤 복잡한 레퍼런스가 개입해 있는 듯하다). 그것은 동시에 “쇠파이프에 터져 피 흐르는 저 이마”와 절름발이인 허인호의 다리를 입술(현식과 민정의 입술은 물론 첫 키스의 입술, 즉 만남의 탄생을 가리키는 것이다)로 지양하는 절차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 의미가 완결되는 것은 아님을 작가는 잘 알고 있었다. 성화된 속은 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폭력성(권력성)을 스스로 해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허인호가 TNT의 뇌관을 뽑은 것은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 그러니 이 성과 속의 만남은 한순간으로 끝난다. 그리고 시민군은 진압되었고 세상은 다시 무사한 표정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 “광천동 낙원은/저 사람 빨갱이다, 저 사람 미쳤다는 주민들 항의로 깨져버렸”을 정도이다. 성의 대리인은 냉담자가 된다. 그러나, 저 순간은 “TNT 뇌관에서 뽑은 못을 〔우리의〕 이마에 박아버린” 순간이다. 우리는 그 순간을, 그 순간의 영원한 유예를 잊지 못할 것이다. 허인호가 미친 성자로 살아남았듯이, 저 순간은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저것은 언제나 첫날밤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축의금을 요구할 것이다(제목이 『오월의 신부』인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아마 광주의 역사적 의미이리라. 『오월의 신부』가 염원의 형식으로 짜놓은 광주의 운명 뒤에 있는 것은 1980년 5월 광주의 죽음의 명단에 “소위, 양심이 직업인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부끄러운 사실이다. 성(聖)의 성채에 이미 진입한 사람들, 아래로 다시 내려갈 일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었던가? 너는 서울역에서 돌아와 고교 야구를 보고 있지 않았던가? 너는 석사 논문을 써야 한다는 핑계로 하숙방에 처박혀 있지 않았던가? 그 물음이 계속 나를 찌른다. -- 정과리 '해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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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의 시는 연극인들에게 매력적인 텍스트다. 이미 연극화된 바 있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살찐 소파의 일기’의 예에서 보듯, 황지우 시가 지닌 극적인 내재율은 무대 위에서도 또 다른 빛을 발한다. 『오월의 신부』는 시인의 극적인 내재율이 본격적인 희곡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하겠다.
늙은 장요한 신부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극의 핵심적인 시간적 배경은 시민수습위와 시민군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5월 24일부터 계엄군의 도청 진압이 시작된 27일 새벽까지. 이 작품은 고립무원의 상황 아래 던져진 오월 광주 사람들이 겪는 내면적 외면적 갈등을 주요 모티프로 하고 있다. 오월 광주 사람들은 폭력의 공포에 맞서기 위해 모였지만 계급, 세계관, 인간적 약점 등에서 온 대립과 긴장과 알력과 갈등 또한 큰 것이었다. 『오월의 신부』는 단순한 일지식 보고나 추도사, 제문을 넘어 바로 이러한 심리적 선을 통해 그날을 기억하고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리는 공연 기획팀 <이다.>는 ‘이 작품은 광주의 상황이 인간이면 언제 어디서나 닥칠 수 있는 운명과도 같은 개연성을 가지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아울러 이유도 모른 채 영원히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개인사를 무대 위로 불러 내어 그 영령들을 위로하고 우리 기억들을 불러내 보편적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거니와, 이는 작품에 대한 가장 적실한 설명이리라. 우리 시대는 광주의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임동확의 ‘매장시편’, 고정희의 ‘초혼제’가 서정 영역에서, 임철우의 『봄날』이 서사 영역에서 그 기억과 반성의 몫을 하고 있었다면 『오월의 신부』는 극 영역에서의 가장 치열한 기억과 반성의 형식으로 광주의 그날을 증언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