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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 붙을 결심
N분의 1일 위하여 금을 긋다 토끼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 수록 작품 발표 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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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더라. 무슨 화…… 뭐라던데……. 맞다! 지연화.”
“이름부터 요물 같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쳤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사촌 경서 언니였다. “연화야, 뭐 해? 45분까지 앞으로 나오라니까?” 나도 모르게 엉겁결에 몸을 낮췄다. ‘뭐지?’ 방금 애들이 말한 지연화가 바로 내 이름인데……. 그러니 놀랄 수밖에. 나는 경서 언니의 재촉으로 서둘러 가방에 짐을 챙겨 넣으면서도 내내 ‘대체, 쟤네 뭐라는 거야?’ 하는 생각만 들었다. --- p.11 「한판 붙을 결심」 중에서 이승아는 1학년 2학기 때 전학을 왔다. 눈에 띄게 이쁘게 생긴 승아가 반에 등장한 일은 학급 전체에 여파를 남겼다. 남자애들이 대놓고 소리 내서 술렁였고 여자애들도 앞다퉈 호감을 보였다. 난 솔직히 승아가 약간 거슬렸다. 뭐랄까? 그냥 타고난 외모 하나로 가산점을 받은 것 같아 부당하단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그런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없으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의외인 건 나은이었다. 승아를 향한 반 아이들의 술렁거림에 누구보다도 기분이 상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승아에게 호의적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 p.33 「한판 붙을 결심」 중에서 “근데 말이야. 지연화! 왜 너는 아니라고 생각해?” “뭐?” “왜 네가 순화중의 전설이 아니라는 거야?” 끝까지 열받게 하는 송나은에게 진심으로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말이 거칠게 나왔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고 왔는데. 썩은 열매와 차별화되기 위해서라도 막말은 삼가야지 하면서 자제했는데 순간 참을성이 바닥났다. “미친년! 뭔 개소리야?” --- p.58 「한판 붙을 결심」 중에서 나도 벌려고. 말 그대로 자생하려는 의지로 내 친구들이 다 가는 일반고 말고 특성화고로 갔었다. 애들한테는 ‘우리 사회 학력 버블의 문제점’을 거창하게 떠들어 대고 ‘꿈을 위한 최단 거리’를 찾아가는 거라고 큰소리쳤다. 실제로 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아니, 자부심이라도 있어야 견딜 것 같아서 어디서나 당당하자며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 p.70 「N분의 1을 위하여」 중에서 금을 긋는 일, 그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 분명하고도 큰일이다. 0.1밀리 샤프심으로 그은 얇고 가는 금 한 줄에도 글자들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데, 하물며 내가 그은 마음의 경계 선이 어찌 이런저런 여파를 남기지 않겠냔 말이다. 처음 누나의 말로부터 시작된 금, 그건 양날의 검과 같았다. ‘내가 아니면 다 남’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당위성에 나 자신이 여물어지고 단단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금 밖의 그들을 밀어내려고 애쓰다 보면 고립된 기분이 들어 우울해지기도 했다. --- p.103 「금을 긋다」 중에서 난 바닥에서 조그만 돌을 하나 냉큼 주웠다. 뭔가 빈손이 허전해서 실체감 있는 걸 갖고 싶었다. “자! 지금부터 이게 내 선택권이야.” 그러자 희수가 씨이익 웃으며 돌을 빼앗아 자기 바지에 열심히 문질러 닦아 다시 내게 쥐여 준다. 방금 전보다 빛나고 소중하고 가치 있는 돌이 되었다. 무엇이든 존중받으면 빛이 나기 마련이니까. ‘그래, 이건 더 이상 돌이 아닌 거지.’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기죽지 않고, ‘정답 찾기’도 무시한 채, 나의 선택만이 답이란 생각으로 움직였다. --- p.144 「토끼지 않습니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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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 붙을 결심」
주인공 연화는 우연히 옆자리에서 ‘순화여중 지연화’라는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된다. 자꾸만 상황이 떠오르며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그래서 불현듯 중학교 때 친구였던 승아와 나은이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셋은 중학교 시절 함께 한 친구로 비밀을 주고받기도 했다. 연화는 수소문 끝에 승아와 연락이 닿는다. 하지만 친구의 싸한 반응과 더불어 자신의 과거가 서서히 피어오르는데……. 「N분의 1을 위하여」 동창 모임에 가기 위해선 자신의 몫인 오만 원의 회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백수인 주희는 친구 기경이한테 빌렸던 오만 원도 필요한 상황이다. 주희는 어쩔 수 없이 언니에게 돈을 빌려 동창 모임에 가기로 한다. 그곳에서 주희는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마주하며 달콤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찬란했던 순간에 실팍한 금이 그어지며 균열이 생겼다. 「금을 긋다」 주인공 해인이는 사고로 장애 판정 진단서를 받아 지체 장애 2급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학교에서는 해인이의 이동을 도와 줄 지원자로 형우가 나선다. 형우는 학교에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 의무 사항에 솔선수범한다. 그러나 점점 ‘배려’라는 명목 아래 새치기를 하거나 강압적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소리친다. 급기야는 해인이한테 돈을 달라고 한다. 「토끼지 않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선 공부를 잘해야 한다. 다현이는 엄마의 권유로 비싼 과외를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과외 선생님이 늦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희수를 부른다. 오랜만에 만난 희수는 가죽 슈트에 스키니 진을 입고, 머리는 왁스로 발라 세웠다. 희수는 주변의 시선과 선입견 같은 저항을 견디는 힘을 키우는 중이라고 했다. 다현이는 달라진 희수의 모습에 동요하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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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존중받으면 빛이 나기 마련이니까.”
십대의 현재 목소리를 가장 선명하게 담아내다 박하령 작가의 소설집이 출간됐다. 작가는 비룡소 블루픽션상과 살림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단편과 장편을 넘나들면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이번 『한판 붙을 결심』은 세 번째 단편집으로 네 개의 이야기 모두 탄탄한 구조와 속도감 있는 글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청소년은 물론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일상의 고민과 순간의 선택 등 절대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폭넓게 담았다. 그래서 주인공의 목소리를 독자인 나와 밀접하게 연결할 수 있다. 어른들은 흔히 “어린데 무슨 고민이 있겠어?”라는 말을 하지만 그 나이 때에도 저마다의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 각자의 마음을 꺼내 놓은 인물들이 있다. 소문의 진실을 파헤치는 연화(「한판 붙을 결심」), 자신의 몫을 끌어안는 주희(「N분의 1을 위하여」), 잘못 그어진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해인(「금을 긋다」), 보폭의 확장을 꾀하는 다현(「토끼지 않습니다」). 네 아이는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벌어진 상처를 꿰매고 있다. 소설은 일상의 균열과 그 속에서 빛나는 발견을 위해 펼쳐진다. 인물들이 준비동작을 하는 순간 독자는 함께 이야기의 출발선상에 선다. 휘슬이 울리고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자신의 균형에 맞는 보폭을 내디디면 서사라는 잘 짜인 경기가 된다. 여기서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얼마만큼의 이어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소설 속 인물인 연화, 주희, 해인, 다현에 이어 다음은 독자다. 인물이 건네는 배턴을 잘 받아야 한다. 그러면 이야기는 결말이 아닌 독자인 우리에게 이어져 호흡하게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싸워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진심을 다해 싸우는 ‘능동태 성장소설’의 완성 작가는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불안과 속삭임을 들어준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이루라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이 흘러가게 지켜봐 주며 울타리 넘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시기가 오길 기다려 준다. 표제작 「한판 붙을 결심」은 이러한 점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 중 하나다. 주인공 연화의 가족은 아빠가 고교 동창에 사기를 당해 야반도주했다. 연화는 갑작스레 전학을 가게 됐고, 살아왔던 환경과 생활은 뒤바뀐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신의 소문을 듣게 된다.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거쳐 부풀려져 있었다. 연화는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떠드는 말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전학 가기 전 중학교 때의 친구인 나은이와 승아가 생각났다. 셋은 무엇이든 함께하는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과거의 장면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연화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가고, 소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 간다. 결국 연화는 나은이와 한판 붙으러 가는데……. 작품은 주인공 연화를 기점으로 점점 뻗어간다. 인물들은 현재에서 작동하지만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적절하게 오가며 흥미롭게 구사된다. 그래서일까. 주요 독자층인 청소년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현재에 놓인 문제를 감지하며 소설에 동요하게 만든다. 『한판 붙을 결심』은 작가의 말처럼 네 인물이 모여 ‘짧고 경쾌한 가운데 마음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있을 법한 해프닝을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렇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장면들은 어떠한 것보다 선명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소설집을 통해 진심을 다해 한판 붙을 대상을 발견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