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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하늘이 녹색으로 멍들다
밥알이 풀풀 날아다녔다
입술이 빨개졌다
시체가 옮겨졌다
전기 울타리가 꺼졌다, 또 켜졌다
집이 홀연히 사라졌다
거대 감자가 자라났다
초록 구름이 걷히자, 하늘은 더욱 푸르러졌다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정선영

『좀 비뚤어지다』로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주목할 시선상’을 수상했으며,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스니커즈를 신은 소녀』 등을 통해 청소년의 일상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 온 작가다. 이번 작품에서는 재난 이후 공동체라는 확장된 세계를 배경으로 청소년의 선택과 책임을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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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3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322g | 140*215*12mm
ISBN13
9788983949998

책 속으로

주의할 점은 빨간 헬리콥터의 움직임! 헬리콥터는 홈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정해진 지점에 착륙해 실어 온 짐을 내려놓자마자 다시 이륙한다. 행여 방심했다가는 큰일. 넋 놓고 있다가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을 놓칠 수 있다.
전기가 다시 켜지기까지 1분 10초, 그리고 울타리의 높이 3미터 10센티. 이것이 마의 숫자! 13홈을 나가려면 기억해야 한다. 반드시.
--- p.11

딸이 외출하거나 돌아올 적마다 엄마는 베란다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늘 웃는 얼굴로. 때로는 동네 떠나가라 딸 이름을 부르곤 했다.
“창피해. 내가 애야? 베란다에 그만 나와, 엄마!”
“뭐가 어때? 잘 배웅해 줘야 다시 돌아오지. 또 이름 부르며 맞아 줄 사람이 있어야…… 네가 신나서 집에 들어오지.”
딸을 기쁘게 보내고 맞아 주는 게 엄마만의 따뜻한 철칙이었다. 가끔 경민은 엄마를 킹콩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앤이라 놀려 댔다. 킹콩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 앤이라고.
“어떻게든 빨리 가야 해. 엄마가 계속…… 기다릴 텐데.”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 경민의 눈시울이 어느새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 p.24

경민의 호방한 웃음과 가벼운 손짓 한 번이면 콧속까지 침범한 죽음의 향취가 피시식 증발하는 게. 경민은 헤이에게 만병통치약이었다. 경민만 있으면 손가락 끝까지 온기가 돌았다. 팔팔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몰라? 이젠 네가 내 가족이야. 너 가면 난 또 혼자야. 가지 마, 제발!
상실감이 급류처럼 몰아닥쳤다. 헤이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떠나지 말고 영원히 함께 있자고, 친구를 설득할 만한 말주변조차 없는 자신이.
--- p.27

“집이라……. 이젠 홈이 우리 집이야.”
“우리 집 아니에요!”
“생각해 봐. 처음부터 네가 태어날 집을 골라 태어난 건 아니잖니. 홈이 그런 거지. 넌 홈을 선택할 수 없어. 싫어도 이게 네 운명이야. 거스를 수 없단다.”
살살 달래는 어른의 음성은 묵직하고 서글펐다. 제자를 타이르는 중에 불현듯 잃어버린 제 가족을 떠올린 걸까. 새로운 가족에 적응하라 충고하는 양 샘도 예전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은 어쩌지 못했다.
가족이 있는 집. 스위트 홈. 그러나 13홈은 ‘스위트’ 하지 않다. 푸근하지도 따스하지도 않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제공해 주나, 가장 중요한 게 결핍되었다. 그래서 자꾸만 달아나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 p.67

잘 훔쳤다! 헤이는 뿌듯했다. 앞으로는 화장품이 아니라 저런 걸 훔쳐야겠다. 자신의 못된 짓이 처음으로 대견했다.
“잘 있어. 필광이 너도 천천히…… 죽어. 아주아주 천천히.”
헤이는 필광이 던진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었다 천천히 죽어.
이건 죽으라는 말이라기보다 제발 살라는 부탁에 가까웠다. 필광의 희망대로 방사능 수치가 낮아져서 안전도시로 들어갈 때까지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 보라는 바람이었다. 고약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약을 팔아먹으며 안전도시를 꿈꾸는 필광, 악하디악한 그를 끝내 미워할 수 없었다. 필광 또한 부모를 잃고 외톨이가 되어 버린 아이니까.

--- p.118

출판사 리뷰

3미터 10센티 높이의 벽, 그 너머에 무언가!

작품 속 세계는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형성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재민 청소년들은 국가가 운영하는 보호 시설 ‘홈’으로 이송되지만, 그곳의 생활은 안전과 돌봄보다는 통제와 분류에 가깝다. 피폭 등급에 따라 생활 반경과 의료 접근성, 생존 가능성까지 나뉜다. 일상은 규칙과 감시에 따라 움직이며, 개인의 선택은 점점 사라진다.
홈은 겉으로 보기에 안전하다. 밥도 나오고, 잠잘 곳도 있고, 어른들이 관리한다. 주인공 헤이는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아이들은 함께 웃고, 다투고, 버티며 하루를 견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긴 집이 아니야.”
아이들은 이곳이 보호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관리하고 구분하기 위한 장소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국 하나의 선택 앞에 선다.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나갈 것인가. 이 소설은 단순한 탈출 이야기가 아니다. ‘집’이란 무엇인지, 사람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홈을 둘러싼 3미터 10센티 울타리 너머 존재하는 희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극한 재난 속에서 피워 낸 필사적 희망

이제 막 고1이 된 헤이는 남동생을 잃은 상실을 품은 채 홈에서 살아간다. 친구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견디던 헤이는 점차 이곳이 ‘돌봄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관리하는 시스템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기 위한 결단을 내린다.
『빅 홈』은 디스토피아적 설정을 사용하지만, 폭력적 자극이나 극단적 영웅 서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 책임, 연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이들은 완벽하지 않으며 자주 흔들리지만,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한다. 이러한 서사는 청소년 독자에게 현실적인 공감을 전한다.
극단적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상실 이후 관계를 통해 회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웅적 승리보다 버텨 내는 힘과 협력의 가치를 강조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는 위기와 불안을 경험한 청소년에게 현실적인 위로를 제공하는 서사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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