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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에스테의 언덕길_007
전찻길_036 히아신스의 기억_052 빗속을 달리는 남자들_069 부엌이 바뀐 날_088 굴다리 너머_106 마리아의 결혼_127 세레넬라가 필 무렵_146 아들의 입대_166 힘든 산 일을 마친 후처럼_190 새로운 집_210 떨리는 손_229 부록 오래된 연꽃 씨앗_254 스가 아쓰코에 대한 노트_278 옮긴이의 말 _310 |
Atsuko Suga,すが あつこ,須賀 敦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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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리 오랫동안 사바에게 마음을 써왔던 것일까. 아직도 20년 전 6월의 어느 날 밤 숨을 거둔 남편에 대한 기억을 그와 함께 읽었던 이 시인에게 겹쳐보려는 것일까. 이탈리아에서 문화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틀림없이 변경의 도시인 트리에스테까지 온 것이 사바를 좀 더 알고 싶은 일념에서라고 자신에게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어쩐지 불안해하고 있다. 사바를 이해하고 싶다면 왜 그가 편집한 시집 《칸초니에레Canzoniere》를 공들여 읽는 것에 전념하지 않는 걸까. 그의 시 세계를 명확히 파악하기에는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은가. 실제의 트리에스테를 보며 아마 거기에는 없을 시 안의 허구를 확인하려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사바의 무엇을 이해하고 싶어 나는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을 걸으려는 것일까.
--- p.16 당시 무엇보다 나를 당혹스럽게 하고 동시에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비밀처럼 내게 다가온 것은, 이 어둑한 방과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덮쳐 누르는, 언제 그칠지 모르는 장마처럼 그들의 인격 자체에까지 야금야금 스며들어 기존의 모든 해석을 완강히 거부하는 듯한 ‘가난’이었다. 나 자신이 조금씩 그 안으로 편입되어감에 따라 나는 그들이 안고 있는 그 ‘가난’이 단순히 금전적인 결핍에서가 아니라 이 가족을 차례로 덮쳤으나 살아남은 그들로부터 삶의 의욕을 빼앗아버린 불행에서 유래하는, 거의 파괴적이라고 해도 좋은 정신 상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 p.92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은 가난한 채로 노년을, 그리고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그렇게 언도한 것처럼 그들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초등학교는 나왔으나 그다음 단계로는 도저히 진학할 수 없는 자식들도 어느새 부모와 같은 밑바닥 생활에 휩쓸렸다. 그들의 체념이라고도 예민한 분노라고도 할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가, 여기저기 더럽혀진 계단 입구의 하얀 벽이나 한 손에 커다란 검은색 가죽 쇼핑백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는 시어머니와 동년배 노파들의 뒷모습에 들러붙어 있었다. --- p.147 난 또 누구라고, 너였구나. 문 쪽에서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그녀가 품에 한가득 안고 온 꽃을 털썩 테이블에 놓았다. 진보랏빛 조그만 꽃이 가득 달린 그 화초를 보고 나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꽃이 아닌가. 부리나케 화병을 가져오려고 옆방으로 가는 시어머니의 등을 향해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어머니, 어디 있었어요, 이 꽃? 나뭇잎 그늘에서 기어 나온 작고 빨간 개미가 눈 깜박할 사이에 흰 비닐 테이블보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풋내나는 식물 냄새가 주위에 확 퍼졌다. --- p.148 그 무렵 나는 밀라노에 살고 있었다. 일본의 문학작품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나는 여전히 모국어로 글을 쓰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다만 주위에 이탈리아어만 있는 곳에서는 내 안의 일본어가 생기를 잃고 시들어버리지나 않을까, 그것만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문체를 만드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것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큰 벽처럼 보였다. --- p.242 얼핏 그리스도교에 모든 것이 묶여 있었던 듯한 이탈리아의 중세에 쓰이기는 했어도 《신곡》은 이미 말의 세계가 그것과는 별도로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 p.264 문학과 종교는 분리된 두 세계다, 라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해본다. 하지만 어쩌면 나라는 진흙 속에는 신앙이 오래된 연꽃 씨앗처럼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 p.266 스가 씨가 걸어온 이력에서 말하자면, 페피노와의 결혼은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스가 씨를 그런 장소에 두었다. 무척 매력적인 인텔리로서 결혼 후 불과 7년 만에 세상을 떠난 페피노는 스가 씨의 에세이에 단편적이지만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이 책의 가족 이야기에는 다른 작품 이상으로 페피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이야기여서 당연한 것 이상으로, 페피노에 대한 이야기가 명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의 존재가 강하게 느껴진다. --- p.294 |
“이 책은 두 세계 사이에서 번역되지 않는 슬픔을 아는 이들에게 기어코 닿을 것이다.”
_ 김지승, 《짐승 일기》 작가 ‘가난’ 속에서도, 움베르토 사바의 시를 읽어주던 남편 페피노를, 품위를 잃지 않았던 가족을, 자신만의 문체를 찾고자 분투했던 십삼 년간의 밀라노 생활을 회상하는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집.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비롯,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베네치아의 종소리》로 국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스가 아쓰코가 첫 책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출간한 건 육십 대 초반이었다. 밀라노에 살던 시절 이미 일본의 문학작품을 이탈리아어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었으나,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랜 시간 벼리다 오십 대 후반부터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한 스가 아쓰코. 일본 오리베티 사의 홍보지 [스파치오]에 밀라노에서의 생활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연 2회 정도씩 연재하게 된 것이 그 계기였는데, 이렇게 해서 5년 동안 모아진 글들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 《밀라노, 안개의 풍경》과 이 책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이다. 그런 면에서 두 작품에는 밀라노에서의 체험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으나,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에 수록된 글들에는 좀 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대상, 그 시선의 온도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에서 스가 아쓰코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문체에 담아냈다. 에세이의 형식이지만 한 편 한 편이 마치 짧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스토리가 강하다. 이탈리아라는 다른 문화에서 살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느라 분투했던 작가로서의 내공이 논리적인 글의 골격에 단단히 박혀있다. 스가 아쓰코는 학창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가톨릭 사상과 이념을 따라 밀라노로 옮겨간 후 그곳에서 당시 밀라노 식자識者들의 명소였던 ‘코르시아 서점’을 운영하는 남편을 만났고 그와의 결혼으로 새로운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이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에세이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데, 남편과 직계가족 외에도 친척과 친척의 가족들, 함께한 이웃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도 있다. 남편에 대해서는 많이, 명확하게 얘기하진 않지만, 이 책에는 결혼 7년 차에 세상을 떠난 남편 페피노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사건이 끼친 타격은 유럽, 특히 이탈리아 경제에도 치명적이었을 터. 대부분의 생활은 넉넉지 않고 때론 궁핍했다. 가난한 철도원이었던 시아버지, 서점을 운영하는 남편,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가족에 걱정을 끼치는 시동생, 그리고 그런 가족을 어떻게든 이끌고 살아온 시어머니로부터 느껴진 건 가난과 불행의 짙은 그림자였으나, 스가 아쓰코는 그들을 다감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전후 일본에서도 유복했던 사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1950년대에 유럽으로 유학을 간 ‘신여성’이 결혼으로 편입된 가난한 가정에서 감내해야 할 현실은 더욱 팍팍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해보지만, 의외로 스가 아쓰코가 그려내는 세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품위와 고상함을 갖고 있다. 가족을 돌볼 줄 모르는 철도원이었으나 창부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았던 시아버지 루이지([굴다리 너머]), 혼자된 아쓰코의 시어머니를 위로하러 낮에 집으로 찾아와주는 마음씨 고운 창부 올가([굴다리 너머]), 행실이 단정치 않아 가족의 평판을 떨어트리는 미혼모 마리아와 결혼하여 조용히 가정을 꾸려가는 아다모([마리아의 결혼]), 뼛속까지 추위가 스며드는 밀라노의 겨울에도 맨발에 샌들을 신고 환자들을 위로하러 다니는 수다쟁이 수도사 루드비코([전찻길]), 손녀가 창피해할 정도로 이상한 차림새를 하고도 일요일마다 묘지를 찾아 지인들 묘에 성묘하는 이바나의 러시아인 외할머니([전찻길]), 지능지수가 낮고 사고뭉치지만 꽃과 작은 새를 사랑하는 거리의 꽃장수 토니 부셰마([빗속을 달리는 남자들]), ‘저급’하지만 구하기 어려운 술 그라파를 스가 아쓰코에게 선물로 건넨 산 사나이 그로브레크너([힘든 산일을 마친 후처럼]). 일반적 시선으로 보자면 한계가 먼저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들 모두는 절하된 평가나 빠듯한 생활 속에서도 내면의 품위를 지니고 있다. 스가 아쓰코가 가난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도 외부의 기준이나 잣대보다는 그들 각자를 한 세계의 주인공으로 대했기 때문이리라. 《짐승 일기》의 김지승 작가는 이 책을 “삶 곳곳에서 조우하게 되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언덕길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십 대까지 산 고국이라는 세계를 떠나 타국에서 십삼 년을 살며 조우한 세계.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그 언덕길에서 스가 아쓰코는 그동안 익숙했던 것과 결별하는 대신 다르다는 것에 관한 관심을 키웠던 것 같다. 다른 세계, 다른 문화, 다른 상황… 을 받아들이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중성을 내포하게 되지만, 다르다는 것에 대한 열린 시각을 견인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가족 이야기에서 독자가 그들의 ‘가난’을 ‘궁핍’으로 느끼지 않는 이유는, 저자가 가난이라는 것에 관행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서일 것이다. 가난이 주는 경제적 결핍에 주목하기보다는, 가족에게 들이닥친 불행의 그림자가 뭐라고 해석할 수 없는 ‘가난’으로 보이게 한 것일까를 생각하고,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내면을 바라보는 스가 아쓰코의 시선은 글 곳곳에서 그 깊이를 발한다. [부엌이 바뀐 날]에서 시어머니의 ‘먼지 가득한’ 낡은 가구가 둘째 며느리의 신식 가구로 교체될 때, 저자는 ‘자신의’ 살림이 사라지는 것에 위축되는 시어머니의 속내에 마음을 쓴다. 이탈리아에서 하층민들은 우산을 갖추지 못하고 살던 그 시절, 옷깃을 부여잡고 빗속으로 뛰어나가는 남자들의 공통적인 자세를 언급하면서도, 인텔리인 남편과 지능지수가 낮고 사고뭉치인 이웃집 아들을 그저 같은 자세를 취하는 남자로만 비교하며 흥미로워한다([빗속을 달리는 남자들]). 일본에서는 ‘개미취’라 불리는 꽃을 시어머니가 철도원 관사 뒷마당에서 한 아름 따오자, 이탈리아에는 그것을 ‘릴리’라고 부르는 사람과 ‘세레넬라’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음을 구별해내고, 사람에 따라 그 다름이 주는 소소한 차이가 있음도 놓치지 않는다([세레넬라가 필 무렵]). 두 세계에서 살며 자신만의 문체를 찾아 분투했던 세월 스가 아쓰코는 소녀 시절부터 책의 세계에서 살아왔고 언젠가 자신도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희망을 꽤 젊을 때부터 갖고 있었다. 이 책의 표제작인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이라는 에세이에서, 평생 흠모했던 시인 움베르토 사바의 도시 트리에스테를 홀로 찾아가 사바의 흔적을 두 발로 느껴보며, 스가는 그곳까지 와서야 비로소 명확해진 생각을 피력한다. “사바가 서점에 붙인 이름인 ‘두 세계’에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시인은 고통과 함께 그것을 알고 있었다. 두 세계에서 살려고 하는 자는 끊임없이 불편한 생각에 시달리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떨리는 손]에서도 우리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찍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자신이 그 작가 작품의 번역자이기도 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와의 교류를 적은 대목에서 스가 아쓰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의 문학작품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나는 여전히 모국어로 글을 쓰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다만 주위에 이탈리아어만 있는 곳에서는 내 안의 일본어가 생기를 잃고 시들어버리지나 않을까, 그것만이 마음에 걸렸다.” 이 책에는 특별한 글이 실려있다. 스가 아쓰코가 일본으로 귀국한 후부터 인연을 이어왔던 편집자 유카와 유타카가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을 주제로 스가 아쓰코를 회상하는 노트인데, 덕택에 우리는 작가의 삶을 좀 더 명확히 포착할 수 있다. 유카와는 “스가 씨는 이중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소에 몸을 두고 살아온 듯한 구석이 있다. 그 글이 단지 기분 좋은 노스탤지어로 채색된 회상을 훨씬 뛰어넘어 비할 데 없는 중층성을 가지면서도 독자에게 강력하게 다가가는 이유의 한 부분은 그 점에 있는 게 아닐까”라고 요약하며, 작가가 미처 끝내지 못한 소설 작업의 뒷얘기를 전한다. 십삼 년 동안 타국에서 살며 모국어로 글을 쓰기를 소망하고, 자신의 문체를 만들고 싶어 했던 작가. 에세이임에도 마치 소설처럼 정경을 묘사하고, 과거의 기억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정경으로 만들어내는, 뛰어난 묘사력이 돋보이는 스가 아쓰코의 글. 이렇게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등장한 순간부터 거의 대가”였던 작가가 미완으로 남긴 첫 소설을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 못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