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우리나라직업사전 근대 2
1. 일제강점기 시초 2. 일제강점기 3. 조선총독부 4. 조선총독부 기관 1 5. 조선총독부 기관 2 6. 대한민국 임시정부 7. 독립운동단체 8. 참고 문헌 |
강예달의 다른 상품
|
일본은 1905년 11월 22일 한국에 통감부 및 이사청理事廳을 설치하는 건을 공포하여 한성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사청을 한성, 인천, 부산, 원산, 진남포鎭南浦, 목포木浦, 마산馬山 등지에 설치하여 한국을 통제할 기반을 세웠다. 통감부 직원은 친임관親任官 통감統監 1명과 친임관 부통감副統監 1명, 칙임관 총무장관總務長官 1명, 칙임관 또는 판임관 농상공무총장農商工務總長 1명, 칙임관 경무총장警務總長 전임 1명, 주임관 비서관 전임 1명, 서기관 전임 7명, 경시警視 전임 2명, 기사 전임 5명, 통역관 전임 10명, 판임관 경부警部 전임 45명, 기수 전임 45명, 통역생通譯生 전임 45명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초」중에서 총독관방總督官房은 조선총독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 오늘날 대통령, 국무총리 비서실과 같은 역할을 했다. 총독관방은 조선총독부가 설치된 1910년 9월에 설립되었고 1945년 8월에 폐지되었다. 1910년 총독관방이 설치되었을 때 부서로 비서과와 무관실武官室이 생겼고, 1912년에 참사관실參事官室, 총무국, 외사국, 토목국土木局이 신설되었으며 1918년에 철도국이 추가되었다. ---「일제강점기」중에서 참사관실은 법령의 심의입안?해석적용 및 중요한 처분의 심의, 특명에 따른 제도 및 구관 조사 업무를 담당했다. 직원은 참사관 2~13명, 사무관 1명, 속 2~10명, 통역생(1915년에만 존재), 식보殖補 1명(1917년~1918년에만 존재), 판임관 견습見習 1명(1918년에만 존재)이 있다. 참사관실은 1924년까지 존재했다. ---「조선총독부」중에서 중추원中樞院은 조선인 유력자로 구성된 조선총독의 자문기구로 1910년에 설치되었다. 중추원은 본래 조선의 내각 자문을 담당했지만 통감부가 설치된 후 일본의 식민지화 추진을 위한 기구로 전략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이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조선인 고위관직에게 자문을 구하는 조선총독부 소속 관서가 되었다. 중추원 소속 직원은 의장 1명, 부의장 1명, 고문 15명, 찬의贊議 20명, 부찬의副贊議 35명, 칙임관 서기관장 1명, 주임관 서기관 2명, 통역관 3명, 판임관 속 3명이 있다. 중추원은 1945년 8월 조선이 광복한 후 폐지되었다. ---「조선총독부 기관 1」중에서 평양광업소平壤鑛業所는 일본 해군의 연료로 공급되는 석탄 채굴, 연탄 제조와 판매를 담당한 기구로 1910년에 설치되었고 1922년에 폐지되었다. 소속 직원은 1912년에 칙임관 또는 주임관 소장 1명, 주임관 사무관 전임 1명?기수 전임 2명, 판임관 서기 전임과 기수 전임 총 8명이 있었고, 1917년에는 기사 3명, 서기 및 기수 14명으로 각각 증원되었다. ---「조선총독부 기관 2」중에서 대본영大本營은 임시대통령을 원수元帥로 한 군사 최고 통솔부다. 임시대통령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총괄 책임자로 1919년 11월 5일에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대본영은 기관의 고등부高等部(고위부)를 담당하고, 작전을 꾸미고 계획하는 업무를 전담했다. 국무총리 또는 참모총장參謀總長이 대본영의 업무를 담당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중에서 신민회新民會는 1907년 경제적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에서 결성된 비밀결사로 윤치호尹致昊(1866-1945), 안창호, 장지연張志淵(1864-1921), 신채호, 박은식朴殷植(1859-1925), 이동휘李東輝(1873-1935) 등이 참여했다. 신민회는 대성학교大成學校 를 설립해 교육활동에 집중했고, 회사를 설립해 실업장려운동을 전개했으며 계몽운동을 위한 신문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잡지 『소년少年』을 편찬해 서적과 잡지 출판운동을 했다. 신민회 회원수는 800여 명으로 상당히 규모가 큰 단체였다. ---「독립운동단체」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