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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_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 7
2화_ 큰 가방을 든 여자 12 3화_ 구멍 난 마음 22 4화_ 존중받는 사람들 28 5화_ 대전역 33 6화_ 늦게 일어나는 새 40 7화_ 존중받지 못한 남자 43 8화_ 존중받지 못한 여자 50 9화_ 가방을 두고 온 이유 56 10화_ 야경 같은 사람 67 11화_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74 12화_ 그때 그 사람 78 13화_ 강상욱 83 14화_ 대현 사진관 89 15화_ 증명사진 102 16화_ 사진관 자리에 뭘 연다고 하네요 110 17화_ 삼랑진역 오막살이 120 18화_ 혹시, 그 사람? 126 19화_ 오늘은 쉽니다 133 20화_ 송현주 148 21화_ 커피 한잔할까? 160 22화_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 170 23화_ 언제나 가는 날이 장날 180 24화_ 폭풍야밤 187 25화_ 삼랑진 스타일 193 26화_ 난 언제 쉬어? 205 27화_ 창밖을 보라 214 28화_ 얼룩 226 29화_ 상무 엄태수 236 30화_ 최경식 243 31화_ 다수결의 반칙 251 32화_ 유니폼 효과 260 33화_ 초대받지 않은 손님 265 34화_ 라스트 댄스 272 35화_ 개표를 시작합니다 281 36화_ 개표를 마감합니다 291 에필로그 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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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은 창화에게 삼랑진이 밀양시의 읍 단위라는 것, 삼랑진이라는 이름이 세 갈래 물결이 일렁이는 나루에서 유래됐다는 것 등을 알려주며 지리학 수업을 한바탕했다.
“그러고 보니 사과 말고는 삼랑진에 딱히 뭐가 없네요. 막상 어떤 곳이냐고 물으니 어려워요. 그냥 시골이에요. KTX조차 서지 않는 한적하고 작은 시골. 그래서 전 촌스러운 사람이에요.” 미정은 삼랑진을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을 만나자 오히려 혼란스러워졌다. “듣기만 해도 좋네요. 아무것도 없는 곳.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사람들도 잘 찾지 않는다는 뜻이잖아요. 아무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네요.” “저도 집에 있을 때 정말 아무것도 안 하거든요. 창화 씨 말이 일리가 있어요.” 미정은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를 막 풀어낸 사람처럼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pp.20~21 “이제 휴가도 거의 끝났지? 오랜만에 길게 쉬는데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지, 그냥 이렇게 훌쩍 지나가버려서 어째?” 엄마는 창화가 2주 내내 집에만 있는 게 안타까웠다. “저 사실… 회사 나왔어요.” 갈치는 입에 대지도 않고 젓가락으로 뼈만 고르던 창화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깻잎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던 아버지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흰쌀밥을 덮었고 엄마는 아버지와 창화의 눈치를 번갈아 보느라 전전긍긍했다. “정확히 말하면 잘렸어요. 죄송해요. 밥상머리에서 이런 얘기 꺼내서.” 다짜고짜 잔소리를 시작할 것이라 예상했던 아버지는 의외로 말이 없었다. 조용한 저녁 식사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럼 뭐, 회사를 천년만년 다닐 생각이었냐? 남의 집에서 주인이 나가라면 나가야지. 어차피 나와야 하는 거 좀 더 빨리 나온 거라 생각하고 쉬어라.” 아버지는 흰쌀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냉수 한 잔을 들이켜더니 차분하게 말을 했다. 의외였다. 그렇게 하라던 공무원 안 하더니 결국 이렇게 됐냐고 핀잔을 쏟아낼 것 같던아버지가 오히려 더 차분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을 마주하자 창화는 되려 갈치 가시가 목에 걸린 기분이었다. “그래. 아버지 말씀이 맞아. 창화 너도 고생 많았어. 이제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엄마와 아버지 두 사람 모두 창화보다 더 담담했고 둘 사이에 낀 창화만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오후에도 느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기묘한 느낌이 저녁까지 이어지는 중이었다. ---pp.22~23 “창화 씨, 오늘… 야경 같은 대화였어요.” 미정은 창화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네? 야경 같은… 대화요?” “야경이 그렇잖아요. 야경 속에 들어가 있으면 야경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비로소 야경의 아름다움이 보이죠. 쉽게 말하면… 적당히 거리감이 있는 대화여서 더 좋았다는 거예요. 사람도 그렇더라고요. 너무 가까워지는 것보다, 야경처럼 거리를 두고 있어야 더 좋은 사람.” “아… 뭔가 시적인 표현인데요? 이럴 땐 미정 씨가 국문학과 같아요. 저도 좋았어요. 이 ‘야경 같은’ 대화. 조심해서 집에 잘 가요.” 창화는 미정과 악수하며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고마워요. 창화 씨도 부산까지 잘 내려가세요.” 미정은 창화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짐가방을 끌며 객실문을 열고 사라졌다. 창화는원래 자리이자 미정이 앉았던 통로 쪽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야경 같은 대화… 야경 같은 사람….” 미정은 기차에서 내렸지만 미정이 남긴 한 마디는 여전히 창화 옆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pp.70~71 창화는 삼랑진에 자주 오게 된 이유를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나랑 비슷하구먼.” “어르신이랑요?” “나도 삼랑진이 고향은 아니야. 젊은 시절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지. 그리고 여기가 마음에 들어 다시 떠나질 않았어. 내가 월남전 참전 용사거든. 전쟁을 겪고 고국에 돌아왔는데 남은 건 고통뿐이더라고.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 후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지.” 노인은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친한 친구 놈이 카메라 한 대를 사주면서 그러는 거야. 이 카메라로 여기저기 다니며 좋은 풍경, 좋은 순간만 담아보라고. 그럼 점점 괜찮아질 거라고. 그래서 사진을 배우게 됐어.” 노인은 아주 오래된 낡은 카메라를 창화에게 가져와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가 아주 묘한 곳이야. 전국을 떠돌며 사진을 찍고 다녔는데 여기에서 내 인생을 인화하게 된 거지.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자주 보게 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꾸 보게 되는 사람. 삼랑진이 나한테는 자꾸 보게 되는 사람 같았지. 카메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그리고 이렇게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지.” 자주 보게 되는 것보다 자꾸 보게 되는 사람. 창화가 그동안 이 동네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을 사장님이 한번에 정리해주는 것같았다. 창화는 이토록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다. ---pp.8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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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누군가에게 자주 보게 되는 사람보다
자꾸 보게 되는 사람이길 작가는 이 소설에서 진정한 ‘존중’의 의미에 대해 탐구한다. 미정과 창화로 대변되는, 한때 열망했던 대도시의 삶에서 끝내 내팽개쳐지고 그 이유조차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라 자책하는 수많은 청춘들에게 작가는 소설을 빌어 따뜻한 손을 내민다. 우리는 다 다르다고. 모두가 같은 곳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고. 어쩌면 당신은 KTX가 무심코 지나치는 삼랑진역일 수 있다고. 자기를 닮은 삼랑진에서 드디어 행복을 찾은 창화처럼, 당신도 당신만의 삼랑진역에 한번쯤 내려보라고. 그리고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 눈으로 꼭 한 번 확인해보라고 말이다. 실제로 작가는 어느 날 우연히 삼랑진을 찾았다가 삼랑진역에 내려 한눈에 반한 경험이 있으며, 그것이 이 소설의 출발이었다고 고백한다. 더 운명적인 것은 투고된 원고를 본 출판사 대표 또한 삼랑진에 한눈에 반한 똑같은 경험이 있어 출간 계약에 이르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정도로, 삼랑진은 아름다운 곳만 찾아다닌다는 바이크 라이더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