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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2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동양 판타지
오승은
현암사 200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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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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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9회 : 점쟁이 원수성은 사정을 두지 않고 어리석은 늙은 용은 하늘 법을 어기다
제10회 : 두 장군은 궁문에서 귀신을 막고 당태종은 지부에서 살아 돌아오다
제11회 : 황제는 환생하여 선과를 따르고 소우는 고혼을 구원해 불문을 바르게 하다
제12회 : 현장은 지성으로 대회를 열고 관음은 현성하여 금선을 이끌다
제13회 : 금성은 호랑이굴에 들어가 중을 구하고 백흠은 쌍차령에서 중을 머무르게 하다
제14회 : 심원은 바른길로 돌아가고 여섯 도적은 흔적 없이 죽다
제15회 : 사반산의 신들은 몰래 삼장을 돕고 응수간의 용마는 재갈을 물리우다
제16회 : 관음원의 중은 보배를 가로채고 흑풍산의 요괴는 가사를 훔쳐가다
제17회 : 손행자는 흑풍산에서 크게 싸우고 관세음은 곰요괴를 항복시키다
제18회 : 관음원에서 당승은 재난을 모면하고 고로장에서 대성은 요마를 제압하다

저자 소개 1

吳承恩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하다가,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시문詩文뿐 아니라 당시 선비들이 혐오하던 소설도 많이 썼던 그는 어릴 때부터 기이한 소설을 즐겨 읽어서 서당의 훈장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설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면서도 풍격이 있고, 해학성이 강한 잡기(雜記)로 유명하다.

가정 29년부터 약 10년 동안 남경南京의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서 공부했고, 가정 45년에 장흥현승長興縣丞으로 임명되나, 두 해가 지나지 않아 탐관貪官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형부기선荊府記善의 벼슬을 받았으나 결국 부임하지 않고 사퇴한 후에 회안부로 돌아가 의기소침한 채 시문을 지으며 만년을 보냈다.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7년 동안의 관리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로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난 1981년 중국정부 당국이 오승은의 무덤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관 뚜껑에 '형왕부 기선(荊王府紀善)'이란 묘지명이 적힌 것으로 보아, 말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영주였던 어느 왕실에서 예법을 가르치는 한직(閒職)에 종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정부 당국은 그때 발견된 두개골을 감정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오승은의 상반신 입체 조각상을 빚어 세워, 『서유기』의 진정한 '저자'로 공인하였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받았고, 고전 양식의 시와 산문에 뛰어났던 그는 평생을 청빈한 선비로 지내며, 구전과 민간 설화 등의 괴담에 각별한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것들이 서유기의 바탕이 되었으며, 서유기의 목판본은 그가 타계한지 10여 년 뒤인 1592년에 발간되었다. 『서유기』는 대체로 가정嘉靖 21~29년(1542~1550) 사이에 쓰고 그 후에도 조금씩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저술에는 『서유기』 외에 장편 서사시 『이랑수산도가(二郞搜山圖歌)』와 지괴소설 『우정지서(禹鼎志序)』 등이 있다. 그는 후손이 없었던 탓에 죽은 후에 육촌 외손자가 그의 시문집인 『사양선생존고射陽先生存稿』와 사집詞集 『화초신편花草新編』을 출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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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 : 김성재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중학교 교사를 거쳐 10여 년 간 잡지사와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민족문화추진회 시행 한국국역사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 민족문화추진회의 『일성록日省錄』번역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및 동양 고전 현대화 작업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기획·번역 및 특수 교열을 한다. 『심청전』『홍길동전』『흥부전』(현대 역) 『허사사전』(교열) 『벽암록』(교정) 등 다수 작업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1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312422

책 속으로

"스승님은 모르시겠지만 아까 그 철봉은 본래 동양대해의 용궁에서 얻어 온 것입니다. 천하진저신진철이라고도 하고 여의금고봉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 천궁에서 행패를 부릴 때 이것의 신세를 무척 졌답니다. 키우고 싶으면 키우고 줄이고 싶으면 줄이고 제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요. 지금은 바늘만하게 주령서 귀에 넣어 두었지만 언제든 필요할 땐 꺼내서 키울 수 있습니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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