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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9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동양 판타지
오승은
현암사 200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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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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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79회 : 요마를 찾다가 수성을 만나고 국왕을 일깨워서 아이들을 구하다
제80회 : 차녀는 양기를 길러 배우자를 구하고 원숭이는 주인을 보호하여 요마를 식벽하다
제81회 : 진해사에서 오공은 괴물의 정체를 알아내고 흑송림에서 세 제자는 스승을 찾아 헤매다
제82회 : 차녀는 양을 구하고 원신은 도를 구하다
제83회 : 원숭이는 여괴의 근본을 알고 차녀는 본성으로 돌아가다
제84회 : 가지는 훼멸하기 어려워 깨달음을 얻고 임금을 바른 데로 돌아가 체통을 지키다
제85회 : 오공은 팔계를 질투하고 마왕은 삼장을 삼키려 하다
제86회 : 팔계는 위력을 떨쳐 괴물을 징벌하고 오공은 신통력으로 요마를 격멸하다
제87회 : 봉성군수가 하늘에 죄지으니 가뭄이 들고 손대성이 선을 권해 비를 내리다
제88회 : 삼장은 옥화에 이르러 법회를 열고 오공과 팔계, 오정은 제자를 가르치다
제89회 : 사자 요괴는 무기 얻은 잔치를 열고 세 형제는 표두산을 분탕 치다

저자 소개 1

吳承恩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하다가,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시문詩文뿐 아니라 당시 선비들이 혐오하던 소설도 많이 썼던 그는 어릴 때부터 기이한 소설을 즐겨 읽어서 서당의 훈장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설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면서도 풍격이 있고, 해학성이 강한 잡기(雜記)로 유명하다.

가정 29년부터 약 10년 동안 남경南京의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서 공부했고, 가정 45년에 장흥현승長興縣丞으로 임명되나, 두 해가 지나지 않아 탐관貪官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형부기선荊府記善의 벼슬을 받았으나 결국 부임하지 않고 사퇴한 후에 회안부로 돌아가 의기소침한 채 시문을 지으며 만년을 보냈다.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7년 동안의 관리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로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난 1981년 중국정부 당국이 오승은의 무덤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관 뚜껑에 '형왕부 기선(荊王府紀善)'이란 묘지명이 적힌 것으로 보아, 말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영주였던 어느 왕실에서 예법을 가르치는 한직(閒職)에 종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정부 당국은 그때 발견된 두개골을 감정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오승은의 상반신 입체 조각상을 빚어 세워, 『서유기』의 진정한 '저자'로 공인하였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받았고, 고전 양식의 시와 산문에 뛰어났던 그는 평생을 청빈한 선비로 지내며, 구전과 민간 설화 등의 괴담에 각별한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것들이 서유기의 바탕이 되었으며, 서유기의 목판본은 그가 타계한지 10여 년 뒤인 1592년에 발간되었다. 『서유기』는 대체로 가정嘉靖 21~29년(1542~1550) 사이에 쓰고 그 후에도 조금씩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저술에는 『서유기』 외에 장편 서사시 『이랑수산도가(二郞搜山圖歌)』와 지괴소설 『우정지서(禹鼎志序)』 등이 있다. 그는 후손이 없었던 탓에 죽은 후에 육촌 외손자가 그의 시문집인 『사양선생존고射陽先生存稿』와 사집詞集 『화초신편花草新編』을 출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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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 : 김성재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중학교 교사를 거쳐 10여 년 간 잡지사와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민족문화추진회 시행 한국국역사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 민족문화추진회의 『일성록日省錄』번역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및 동양 고전 현대화 작업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기획·번역 및 특수 교열을 한다. 『심청전』『홍길동전』『흥부전』(현대 역) 『허사사전』(교열) 『벽암록』(교정) 등 다수 작업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1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312491

책 속으로

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그렇게 고향 생각만 하시다니 출가한 사람답지 않습니다. 딴 생각 말고 길이나 재촉합시다. 옛사람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요."
"오공아, 네 말이 옳다만 정말 서천에 갈 수나 있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부처님께선 삼장경을 내놓기 아까워하시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가지러 간다는 걸 알고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벌써 당도했을지도 모르지요."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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