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서유기 3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동양 판타지
오승은
현암사 2004.07.17.
가격
8,500
10 7,650
YES포인트?
43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시리즈 12

이 상품의 시리즈 알림신청
뷰타입 변경

책소개

목차

제19회 : 오공은 운당동에서 팔계를 항복시키고 현장은 부도산에서 심경을 받는다
제20회 : 당승은 황풍령에서 재난을 입고 팔계는 산허리에서 앞을 다투다
제21회 : 호법가람은 장원을 만들어 대성을 머물게 하고 수미산의 영길보살은 풍마를 진압하다
제22회 : 팔계는 유사하에서 크게 싸우고 목찬ㄴ 영을 받고 오정을 항복받다
제23회 : 삼장은 근본을 잊지 않고 네 성인은 신심을 시험하다
제24회 : 만수산의 대선을 옛 벗을 머물게 하고 오장관에서 오공은 인삼과를 훔치다
제25회 : 진원선을 뒤쫓아가 당승을 붙잡고 손행자는 오장관을 발칵 뒤집다
제26회 : 손오공은 삼도를 돌며 처방을 구하고 관세음은 감천으로 나무를 살리다
제27회 : 시마는 삼장을 세 번 희롱하고 성승은 미후왕을 미워하여 쫓다
제28회 : 여러 요괴는 의로써 화과산에 모이고 삼장은 흑송림에서 요마를 만나다

저자 소개 1

吳承恩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하다가,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시문詩文뿐 아니라 당시 선비들이 혐오하던 소설도 많이 썼던 그는 어릴 때부터 기이한 소설을 즐겨 읽어서 서당의 훈장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설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면서도 풍격이 있고, 해학성이 강한 잡기(雜記)로 유명하다.

가정 29년부터 약 10년 동안 남경南京의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서 공부했고, 가정 45년에 장흥현승長興縣丞으로 임명되나, 두 해가 지나지 않아 탐관貪官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형부기선荊府記善의 벼슬을 받았으나 결국 부임하지 않고 사퇴한 후에 회안부로 돌아가 의기소침한 채 시문을 지으며 만년을 보냈다.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7년 동안의 관리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로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난 1981년 중국정부 당국이 오승은의 무덤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관 뚜껑에 '형왕부 기선(荊王府紀善)'이란 묘지명이 적힌 것으로 보아, 말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영주였던 어느 왕실에서 예법을 가르치는 한직(閒職)에 종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정부 당국은 그때 발견된 두개골을 감정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오승은의 상반신 입체 조각상을 빚어 세워, 『서유기』의 진정한 '저자'로 공인하였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받았고, 고전 양식의 시와 산문에 뛰어났던 그는 평생을 청빈한 선비로 지내며, 구전과 민간 설화 등의 괴담에 각별한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것들이 서유기의 바탕이 되었으며, 서유기의 목판본은 그가 타계한지 10여 년 뒤인 1592년에 발간되었다. 『서유기』는 대체로 가정嘉靖 21~29년(1542~1550) 사이에 쓰고 그 후에도 조금씩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저술에는 『서유기』 외에 장편 서사시 『이랑수산도가(二郞搜山圖歌)』와 지괴소설 『우정지서(禹鼎志序)』 등이 있다. 그는 후손이 없었던 탓에 죽은 후에 육촌 외손자가 그의 시문집인 『사양선생존고射陽先生存稿』와 사집詞集 『화초신편花草新編』을 출간해주었다.

오승은의 다른 상품

교열 : 김성재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중학교 교사를 거쳐 10여 년 간 잡지사와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민족문화추진회 시행 한국국역사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 민족문화추진회의 『일성록日省錄』번역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및 동양 고전 현대화 작업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기획·번역 및 특수 교열을 한다. 『심청전』『홍길동전』『흥부전』(현대 역) 『허사사전』(교열) 『벽암록』(교정) 등 다수 작업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9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312439

책 속으로

요괴는 막 잠에서 깨었는데, 물살 가르는 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들고 돌아보니 팔계가 쇠갈퀴를 쥐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요괴는 뛰쳐나와 막아서며 큰소리를 쳤다.
"꼼짝 말아. 이 지팡이가 네 눈에 뵈느냐!"
팔계는 쇠갈퀴를 치켜들어 그것을 막았다.
"이놈아! 그런 상주 지팡이 같은 걸 가지고 이 할아버지에게 뵈느냐 뭐냐 하고 떠들어?"
"에끼놈! 네놈이 뭘 알겠느냐?"

--- 본문 중에서

리뷰/한줄평1

리뷰

10.0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