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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10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동양 판타지
오승은
현암사 200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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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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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90회 : 사師와 사獅는 하나로 돌아가고 도선의 힘으로 구령을 누르다
제91회 : 금평부에서 대보름 등롱을 구경하고 삼장은 현영동에서 탄핵하다
제92회 : 세 중은 청룡산에서 크게 싸우고 네 별은 물소 요정을 잡다
제93회 : 급고원에서 옛일을 물어 인과를 말하고 천축국에서 왕을 배알하고 반려를 만나게 하다
제94회 : 네 화상은 음식 대접을 받으며 어원에서 놀고 요괴는 정욕을 채우려고 헛생각을 품다
제95회 : 전체와 합하려다 옥토끼는 붙잡히고 항아는 정도로 돌아가 영원과 합치다
제96회 : 구원외는 고승을 환대하고 당승은 부귀를 탐내지 않다
제97회 : 오공은 은혜를 갚다가 독마를 만나고 성은 유혼을 나타내어 본원을 구하다
제98회 : 원숭이와 백마는 비로소 해탈하고 공과가 이루어져 여래를 뵙다
제99회 : 구구의 난이 차서 마귀는 모두 없어지고 삼삼의 행이 차서 도는 근본으로 돌아가다
제100회 : 경은 동토에서 전해지고 사람과 말은 진성이 되다

저자 소개 1

吳承恩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하다가,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시문詩文뿐 아니라 당시 선비들이 혐오하던 소설도 많이 썼던 그는 어릴 때부터 기이한 소설을 즐겨 읽어서 서당의 훈장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설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면서도 풍격이 있고, 해학성이 강한 잡기(雜記)로 유명하다.

가정 29년부터 약 10년 동안 남경南京의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서 공부했고, 가정 45년에 장흥현승長興縣丞으로 임명되나, 두 해가 지나지 않아 탐관貪官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형부기선荊府記善의 벼슬을 받았으나 결국 부임하지 않고 사퇴한 후에 회안부로 돌아가 의기소침한 채 시문을 지으며 만년을 보냈다.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7년 동안의 관리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로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난 1981년 중국정부 당국이 오승은의 무덤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관 뚜껑에 '형왕부 기선(荊王府紀善)'이란 묘지명이 적힌 것으로 보아, 말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영주였던 어느 왕실에서 예법을 가르치는 한직(閒職)에 종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정부 당국은 그때 발견된 두개골을 감정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오승은의 상반신 입체 조각상을 빚어 세워, 『서유기』의 진정한 '저자'로 공인하였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받았고, 고전 양식의 시와 산문에 뛰어났던 그는 평생을 청빈한 선비로 지내며, 구전과 민간 설화 등의 괴담에 각별한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것들이 서유기의 바탕이 되었으며, 서유기의 목판본은 그가 타계한지 10여 년 뒤인 1592년에 발간되었다. 『서유기』는 대체로 가정嘉靖 21~29년(1542~1550) 사이에 쓰고 그 후에도 조금씩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저술에는 『서유기』 외에 장편 서사시 『이랑수산도가(二郞搜山圖歌)』와 지괴소설 『우정지서(禹鼎志序)』 등이 있다. 그는 후손이 없었던 탓에 죽은 후에 육촌 외손자가 그의 시문집인 『사양선생존고射陽先生存稿』와 사집詞集 『화초신편花草新編』을 출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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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 : 김성재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중학교 교사를 거쳐 10여 년 간 잡지사와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민족문화추진회 시행 한국국역사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 민족문화추진회의 『일성록日省錄』번역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및 동양 고전 현대화 작업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기획·번역 및 특수 교열을 한다. 『심청전』『홍길동전』『흥부전』(현대 역) 『허사사전』(교열) 『벽암록』(교정) 등 다수 작업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1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312507

책 속으로

오공 등 세 사람이 칙사를 따라 오문에 이르니 황문관이 즉시 들어가 보고했다. 들어오라는 국왕의 분부가 내려서 셋은 궁전 층계까지 갔다. 셋은 층계 앞에 한 줄로 선 채 절도 하지 않았다. 국왕이 물었다.
"셋 중에 누가 성승부마의 제자인가? 이름은 무엇이며 어디에 사는가? 또 출가한 이유와 어떤 경을 가지러 가는지 자세히 말하라."
그러자 오공이 팔을 휘두르며 전 위로 올라가려 했다. 옆에서 경비하던 군사가 황급히 호통을 쳤다.
"안 된다. 거기 서서 상주하시오."
오공은 허허허 웃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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