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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6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동양 판타지
오승은
현암사 200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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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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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49회 : 삼장은 재난을 입어 물속에 잠기고 관음은 대바구니로 요괴를 잡다
제50회 : 성정이 혼미해짐은 애욕 때문이라 정신이 어지러워져 마왕을 만나다
제51회 : 오공은 온갖 계책을 다 쓰고 물과 불의 신도 마귀를 정복 못하다
제52회 : 오공은 금도동에서 야료를 부리고 여래는 넌지시 주인을 알려 주다
제53회 : 삼장은 자모하의 물을 마셔서 잉태하고 황파는 물을 길어 낙태시키다
제54회 : 삼장은 여인국에 들어서고 오공의 계책으로 여난을 피하다
제55회 : 색마는 음란한 수단으로 삼장을 희롱하고 삼장은 수양을 견지해 몸을 지키다
제56회 : 오공은 화가 나서 도둑을 죽이고 삼장을 오공을 추방하다
제57회 : 진짜 행자는 낙가산에 가서 호소하고 가짜 원숭이 왕은 수렴동에서 글을 베끼다
제58회 : 두 마음이 섞갈려 천지가 소란하고 한 몸으론 적멸을 수행키 어렵다

저자 소개 1

吳承恩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
자 여충(汝忠), 호 사양산인(射陽山人).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의 작가로, 시문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고 풍격이 있으며 해학성이 강한 글을 쓰기로 유명하다. 중국 명나라 효종~세종 대의 문학가이다.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거사(射陽居士)이며,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하다가,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시문詩文뿐 아니라 당시 선비들이 혐오하던 소설도 많이 썼던 그는 어릴 때부터 기이한 소설을 즐겨 읽어서 서당의 훈장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설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청아유려(淸雅流麗)하면서도 풍격이 있고, 해학성이 강한 잡기(雜記)로 유명하다.

가정 29년부터 약 10년 동안 남경南京의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서 공부했고, 가정 45년에 장흥현승長興縣丞으로 임명되나, 두 해가 지나지 않아 탐관貪官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형부기선荊府記善의 벼슬을 받았으나 결국 부임하지 않고 사퇴한 후에 회안부로 돌아가 의기소침한 채 시문을 지으며 만년을 보냈다.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7년 동안의 관리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로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난 1981년 중국정부 당국이 오승은의 무덤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관 뚜껑에 '형왕부 기선(荊王府紀善)'이란 묘지명이 적힌 것으로 보아, 말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영주였던 어느 왕실에서 예법을 가르치는 한직(閒職)에 종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정부 당국은 그때 발견된 두개골을 감정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오승은의 상반신 입체 조각상을 빚어 세워, 『서유기』의 진정한 '저자'로 공인하였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학 교육을 받았고, 고전 양식의 시와 산문에 뛰어났던 그는 평생을 청빈한 선비로 지내며, 구전과 민간 설화 등의 괴담에 각별한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것들이 서유기의 바탕이 되었으며, 서유기의 목판본은 그가 타계한지 10여 년 뒤인 1592년에 발간되었다. 『서유기』는 대체로 가정嘉靖 21~29년(1542~1550) 사이에 쓰고 그 후에도 조금씩 수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저술에는 『서유기』 외에 장편 서사시 『이랑수산도가(二郞搜山圖歌)』와 지괴소설 『우정지서(禹鼎志序)』 등이 있다. 그는 후손이 없었던 탓에 죽은 후에 육촌 외손자가 그의 시문집인 『사양선생존고射陽先生存稿』와 사집詞集 『화초신편花草新編』을 출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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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 : 김성재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중학교 교사를 거쳐 10여 년 간 잡지사와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민족문화추진회 시행 한국국역사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 민족문화추진회의 『일성록日省錄』번역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및 동양 고전 현대화 작업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기획·번역 및 특수 교열을 한다. 『심청전』『홍길동전』『흥부전』(현대 역) 『허사사전』(교열) 『벽암록』(교정) 등 다수 작업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1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312460

책 속으로

"스승님은 아무 일 없을 거야. 아까 나는 벌로 둔갑해서 들어갔었어. 보니까 그년은 정자에 앉아 있었어. 좀 있으려니 시녀 둘이 각각 접시를 하나씩 받쳐 들고 들어오겠지. 한 접시의 것은 사람고기를 넣은 만두고 한 접시의 것은 땅콩을 넣은 만두였단 말이야. 그러자 여회가 스승님께 부부가 되자고 하더군. 처음에 스승님은 아무 말 안 했어. 만두도 안 먹더라구. 그런데 잠시 후에 계집이 꿀같이 단 말로 아양을 떠니까 어찌 된 일인지 스승님이 말도 하고 소식만두를 드시지 않겠니."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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