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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마드리드에서 온 편지
제1장 빅토르 위고 거리의 머리 없는 시체 제2장 몽마르트르 가의 다락방 제3장 뤽상부르 공원의 안개 제4장 라마르크 가의 진상 제5장 불로뉴 숲의 시체 제6장 생자크 가의 악령들 에필로그 피레네에서 온 편지 옮긴이의 말 |
Kiyoshi Kasai,かさい きよし,笠井 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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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심한데.” 바르베스가 엉겁결에 신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경관들은 일순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
뒤따라 들어온 모가르 경정의 눈에 처참한 광경이 들어왔다. 붉은 색조로 통일된 호화로운 거실 중앙에, 그것 역시 계획된 실내장식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신선한 피가 흥건히 괴어 있었다. 그리고 붉은 방 중앙에 있는 피 웅덩이 한가운데에는 외출용 옷을 입고 두 팔을 몸에 딱 붙인 여자의 시체가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속을 메스껍게 하는 것은, 묘하게 뒤죽박죽 조화가 안 되는 그 인상이었다. 세련된 외출복을 입고 똑바른 자세로 엎어져 있는 시체에는 있어야 할 곳에 머리가 없었다. ---p.82 “누가 오데트를 죽인 범인일까?” “루시퍼야.” 드디어 대답한 가케루의 얼굴에는 놀리는 듯한, 재미있어하는 듯한 표정이 언뜻 떠올랐다. “루시퍼라니?” 앙투안이 허를 찔린 듯 작게 외쳤다. “루시퍼, 헬스 엔젤(지옥의 천사)이기도 하지……” 가케루가 앙투안의 얼굴을 보고 덧붙였다. 앙투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딴 데를 보며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롤링스톤즈의 곡이었다. ---p.182 “경정님, 창문은 어떻습니까? 7층이지만 창문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잖습니까?” “창문은 중앙 냉온방이라서 1년 내내 밀폐되어 있네. 밖에서 여는 건 불가능하지. 게다가 자네도 봤잖나. 외벽에는 발을 디딜 곳이 전혀 없어. 옥상에서든 거리에서든 거길 오르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네.” “그럼 범인은 어떻게 방으로 들어갔을까요? 경정님, 전혀 불가능한 거 아닙니까?” 바르베스는 당혹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최대 용의자인 조제트한테는 알리바이가 있고, 공범자가 있다고 해도 그놈은 방으로 들어갈 수 없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원.” 모가르 경정은 불가능한 범죄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입술을 굳게 다물고 철야로 핏발이 선 눈을 크게 뜬 채 꼼짝하지 않았다. 바르베스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그저 경정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p.237 그랬을까. 망연히 서 있는 내게 가케루는 계속해서 말했다. “타락천사…… 유리 천사지. 분명히 천사이긴 해도 유리처럼 딱딱하고 차갑고 깨지기 쉬웠거든. 이 세계에서는 천사니까 지옥에 떨어지게 되겠지. 뭔가에 씐 거야.” 내 머릿속에서 롤링스톤즈의 노래 한 구절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리비에르 교수의 서재에서 앙투안이 가케루를 냉소하듯이 휘파람으로 불렀던 노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을 때 난 혁명을 보았어 난 황제와 성직자들을 죽였고 아나스타샤는 공허한 비명을 질렀지. ---pp.394-395 평범한 미스터리의 경우, 범인을 체포하고 범행 동기를 알면 독자는 그것으로 납득한다. 수수께끼가 풀리면 거기서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사이 기요시의 소설은 그 뒤에 다시 생각거리를 남겨둔다. 트릭에 놀랄 뿐 아니라 사상적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미스터리인 셈이다. 하지만 야부키 가케루의 현상학적 논의나 작중에 그려지는 사상적인 진술에 다소 무거움을 느낀다고 해도 머리 없는 시체의 수수께끼와 이어지는 밀실 상태에서의 폭사와 관련된 트릭을 푸는 것,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 야부키 가케루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p.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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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가도카와 소설상〉 수상작
《문예춘추》 선정 최고의 일본 미스터리 100선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목 가사이 기요시의 데뷔작 『바이바이, 엔젤バイバイ、エンジェル』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그간 국내에 출간된 여러 장르소설 해설을 통해 문학평론가로서의 가사이 기요시는 꽤 알려졌지만, 그의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사이 기요시가 추리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는 마르크스주의와의 결별 경험이 있다. 한때 좌익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그는 1972년 아사마 산장에서 급진적 좌익 운동권 학생들이 동지 12명을 집단 구타해 죽인 ‘연합적군사건’을 목도한 뒤 큰 충격에 빠지고, 사상적으로 전향한다. 그는 ‘본격 미스터리’가 대량 학살을 경험한 인류가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추구하며 발전시킨 장르라고 여겼다. 때문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녹여낼 수 있는 장르가 본격 미스터리라 판단했고, 자신의 분신이자 매력적인 탐정 ‘야부키 가케루’를 창조해내면서 이 작업에 성공한다. 『바이바이, 엔젤』은 1970년대 후반 프랑스 파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작품 곳곳에서 프랑스 혁명부터 파리 코뮌까지 혁명과 반혁명이 반복되다가 1968년의 혁명이 좌절되며 급진적 좌익 세력들이 과격한 테러를 벌이던 시대적 배경을 읽어낼 수 있다. 가사이 기요시는 탐정과 범인의 대결 속에서 일본 적군파를 비롯해 극좌 세력들이 보여준, 진리 실현을 위해서는 ‘보통 인간’들의 존재가 부정당해야 한다고 생각한 혁명 세력의 모순된 사상을 반박한다. · 혁명을 꿈꾸던 인간은 왜 학살을 저질렀는가 추리 대결 속에 현대 철학의 뜨거운 논쟁을 담아내다 『바이바이, 엔젤』은 현상학적 추리를 구사하는 탐정 야부키 가케루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권이다. 1979년 가도카와 서점에서 출간된 이 책은 그해 최고의 소설을 뽑는 제6회 ‘가도카와 소설상’을 수상했고, 1986년 ≪문예춘추≫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동서 미스터리 일본 편에서 54위로 꼽힌, 명실공히 미스터리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가사이 기요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국 고전 추리소설 작가 밴 다인을 본떠 “한 점의 예외도 허락하지 않는 본격파적인 캐릭터가 보여주는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중심으로 자신의 작품이 탄생했다고 밝힌다. 그의 말대로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는 미타테 살인(analogical murder), 밀실 상태에서의 불가능 범죄, 사건의 모든 단서를 독자에게 숨김없이 보여주는 유능한 탐정과 왓슨 역의 화자 등 ‘본격 미스터리’의 일관된 특징을 보여준다. 미스터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밴 다인의 영향을 받아 고전 기법에 충실했다면, 사상을 다루는 방식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된다. 중학교 때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같은 작품을 쓰고 싶었다는 그는 실제 사상가를 모델로 한 등장인물들과 탐정의 사상 논쟁을 추리 대결 속에 포함시켰다. 이를 통해 작가는 본격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 동시에 현대 철학적 쟁점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 데에도 성공한다. · 사라진 머리, 수수께끼의 남자 그리고 벌어지는 연쇄살인 놓칠 수 없는 본격 미스터리의 향연이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 라루스가 살인 사건은 붉은 대문자 I로 서명이 된 협박장이 날아오며 시작된다. 붉은 머리글자의 편지, 붉은 방을 적신 피 웅덩이, 벽에 피로 휘갈겨 쓴 A라는 글자, 『주홍 글씨』, 그리고 찢겨나간 『붉은 죽음의 가면』의 첫 페이지. 범인은 이렇듯 과도할 정도로 ‘붉은색’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야부키 가케루는 범죄에 자신의 의지를 골고루 미치게 하려는 범인의 욕망에서 ‘관념’에 사로잡힌 왜곡된 혁명가의 그림자를 본다. 피의 색으로 얼룩진 연쇄살인의 선정적인 정경은 본격 미스터리가 줄 수 있는 자극적인 두뇌 싸움의 재미를 배가하면서 범인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치 역할을 한다. 본격 미스터리에 빠질 수 없는 명탐정 역할의 야부키 가케루는 신비로운 외모에 수도승 같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기존의 탐정들과는 다른 독특한 캐릭터다. 무엇보다 현상학적 본질직관이라는 그의 추리 기법이 새롭다. 본질직관이란, 원(圓, circle)의 정의를 모르는 어린아이도 그게 원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야부키 가케루. 탐정은 사건을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게 아니라 직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명탐정과 함께 사건을 밝혀나가는 것은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만의 매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