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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빙하의 냄새를 맡는 사람1부 빙하는 지구의 과거를 알고 있다지구, 그 영원한 신비지구에 남은 지문한국에 빙하 코어가 있나요?세상의 끝, 그린란드와 남극대륙둘리와 빙하의 상관관계이산화탄소의 하소연위스키 한 잔이 세상을 바꾼 사연이산화탄소가 그렇게 이상한가요?바닷속 컨베이어 벨트지구가 뜨거워진다는 새빨간 거짓말인류가 지구에 무해했던 적이 있다핵실험을 하자 빙하가 우리에게 건넨 말캐나다 로키산맥에 오르다2부 빙하학자, 그린란드 빙하를 만나다여기는 그린란드, 빙하 앞에 있습니다그린란드 빙하 위에 서다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얻는 것사람의 인연은 알 수 없는 법여성 과학자로 살아가기전쟁과 그린란드빙하의 엑스레이를 찍다매일 밤 연구를 그만두는 꿈을 꿨다7월의 핼러윈 파티안녕, 그린란드미션 임파서블3부 과거의 빙하와 미래의 지구, 그리고 현재의 빙하학자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남극 탐험의 꿈여자의 친구는 여자행복하지 않습니다동료들과 연대하기나에게 쓰는 편지에필로그 | 빙하학자로 평생 살아가기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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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시 지구 이후 빙상이 형성되던 시점부터 농업 발달과 산업화 등 인류 활동이 본격화되던 시기를 지나 핵실험이 만연했던 1945년 그리고 오늘날까지, 인류가 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떨쳤던 시간을 가로지르며 빙하의 언어를 번역한다. 지난 80만 년을 기억하는 남극 빙하 코어는 냉정하게 말한다. 지금의 인류처럼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급격한 속도로 배출했던 존재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2100년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800피피엠을 웃돌 것이고 그 수치는 3390만 년 전 그린란드에 빙하가 없었던 때와 맞먹는다. 기후위기 시대의 책임자로 빙하는 인류를 지목한다. 지구의 수십억 역사로 눈을 돌리고 냉소할 때가 아니라 우리부터 똑바로 마주할 때다.한편 빙하가 다 녹아 사라지면 빙하학자는 어쩐단 말인가. 저자는 빙하에 자신의 생업이 달렸다고 말하며 기후위기를 실질적인 생존의 위기로 체감한다. 그는 빙하 코어에 포집된 과거의 공기 방울을 그러모아 이산화탄소를 분석하고 고기후 연대기를 쓴다. 그래서 그에게 빙하가 녹는 사태는 조선왕조실록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녹아서 층서가 뒤죽박죽 섞인 빙하를 연구하다가 심전도 모니터의 일직선이 그어지는 듯한 위기를 감지한다. 층서가 균질해진 빙하란 사망선고와도 같다. 그러므로 그는 거듭 강조한다. 지금이야말로 무엇이든 해야 할 때다. 그가 제시하는 실천의 세목은 일상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델모트 박사의 “노력을 모으면 우리가 지구에 배출하는 온실기체의 20퍼센트를 감축할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변화를 추동하는 믿음이 우선해야 한다. 저자의 말로 하자면 ‘연대에서 비롯한 희망’이 필요하다. 기후 회의론자의 방관과 체념에 맞서는 저력을 일상의 실천에서부터 발견하자는 말을 빙하학자만큼 절실하고 진실히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이 책은 빙하학자가 차가운 빙하에서 뜨겁게 길어올린 기후위기 시대를 향한 제언이자 한 과학자의 희로애락이 흐르는 진솔한 고백이기도 하다.현장이 허락하는 ‘세계와 감각의 확장’위스키 한 잔과 빙하 한 조각에서 시작한 이야기저자의 목소리가 특히 더 생생하게 전해지는 대목은 역시 현장에서다. 저자는 극지연구소 소속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빙하학자 중 유일한 여성이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빙하만 연구했고 2023년 6월에는 그린란드 국제 심부 빙하 시추 프로젝트에 국가대표로 참여했다. 전 세계 지구과학 영역에서 여성 과학자의 비율이 24퍼센트에 그치는 와중에 여성 빙하학자가 대표로 현장에 파견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현장에서 제외되거나 아시아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모욕적인 일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 경험 없이는 탁상공론에 그치기 쉬워 악착같이 현장을 자청한다.그린란드행 항공기가 막 착륙하고 꼬리가 열리자마자 온몸을 덮쳐오는 막강한 한기와 건조한 대기, 대륙을 뒤덮는 흰 눈이 반사하는 강렬한 빛, 눈바람이 형성한 구조물의 독특한 질감 등은 오로지 현장만의 감각적 전유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시시각각 발생하는 변수들에 대한 대처는 오직 직접경험을 통해 전수된다. 하물며 연구소에서 연구할 때도 현장 경험이 번뜩이는 법이다. 가령 빙하 층서에서 관찰되는 2밀리미터 이하의 얇은 층은 녹은 눈이 다시 얼어서 형성된 용융층이 아니라 바람이 세게 불어서 형성된 윈드 크러스트에 불과하고 데이터 측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간단한 지식조차 현장이 아니면 쉽게 알 수 없다. 물론 현장이 매사에 흥미롭고 수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린란드는 극한 환경이고 캠프는 약 해발고도 2700미터에 위치했다. 한국처럼 해발고도가 0에 가까운 나라 출신의 사람은 현지에 적응하는 데만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남성 연구자보다 물리적으로 힘이 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자기만의 강점에 주목하고 투지를 다진다. 이후 저자가 들려주는 로빈 벨 박사와의 만남은 여성 과학자를 가시화하는 현명하고 우아한 방식이다. 이 외에도 여성 과학자의 동등하게 일할 권리로 맺어지는 일화들은 비단 그린란드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며 구축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빙하를 이용한 연구가 시작된 계기를 돌아보면 그 모든 게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1965년 빙하학자 클로드 로리우스는 남극 아델리랜드로 빙하를 시추하러 간다. 고된 작업을 마치고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 게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어느 날 위스키에 넣을 얼음이 떨어져서 빙하 조각을 떼어 넣었더니 얼음 조각에서 마치 샴페인처럼 공기 방울이 터져 나왔다. 로리우스는 여기서 착안해 빙하에 포집된 기체를 이용한 이산화탄소 측정법을 개발한다. 이게 빙하를 이용한 이산화탄소 연구의 출발이다. 저자는 이 낭만적이기까지 한 일화에 매료되고 그 황홀감을 동력으로 삼아 다음 연구를 추진한다. 우연이 모여 운명이 된다는 짐짓 상투적인 말이 저자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는 연구자로서 걸어온 길을 눈이 쌓여 빙하가 되는 과정에 빗대며 눈앞에 놓인 삶의 단편만이 아니라 지구적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고 의미가 확장되는 순간들을 기록한다. 이 책의 독자 또한 저자의 시선을 빌려 삶을 바라본다면 들쑥날쑥한 궤적 속 삶의 편린이 모여 마침내 빙하가 되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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