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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육조단경』을 우리는 왜 알아야 할까 『육조단경』이란 어떤 책인가 선종 이해의 길잡이 조계종에서 『육조단경』을 중시한 까닭은 무엇인가 2. 『육조단경』은 왜 만들어졌을까 『육조단경』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혜능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정통선을 자리매김하다 3. 『육조단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혜능은 과연 일자무식인가 내 마음과 부처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전법의 일환으로 신통력을 보이다 불립문자와 언어설법의 조화 4. 『육조단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출가와 효도 사이에서 불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부처님의 어록과 조사의 경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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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은 조사의 어록이면서도 특이하게 ‘경(經)’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육조단경』이 경전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 문헌으로 존중되었고, 경전과 다름없이 불자들에게 수지독송(受持讀誦)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조단경』의 이러한 위상은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 선종의 위상이 강화됨에 따라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 p.8~9 조사는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계승한 인물을 가리키는데, 중국 선종에서는 조사를 가장 이상적인 인물상으로 여겼습니다. 조사의 권위가 높아짐에 따라 조사의 어록이 갖는 권위 역시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중국불교에서 어록은 새로운 장르의 불교 문헌으로 정착되게 되었고, 심지어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마저도 부처님의 어록으로 간주하는 풍조까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혜능의 어록은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설법을 담은 ‘경’과 대등한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혜능의 어록은 『단경』이라는 ‘경’이 되었습니다. --- p.20 혜능은 마음속 정토라는 유심정토(唯心淨土)의 입장에서 정토수행에 대해 설법했습니다. 그는 자성미타(自性彌陀), 즉 자기의 마음이 바로 아미타불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정토수행도 선수행과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단경』은 당시 재가인들의 관심에 부합하는 신행관과 수행관을 담고 있었습니다. --- p.24 부처님의 깨달음에 해당하는 정법안장을 계승한 조사인 달마가 중국에 왔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질문은 후대에 도대체 불교란 무엇이고, 부처님이란 무엇이며, 마음이란 무엇이고,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공안(公案)으로 정착되면서, 숱한 사람들에게 선문답으로 제공되었습니다. 그 공안이 바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즉 “달마가 서쪽의 인도에서 동쪽의 중국으로 온 까닭이 무엇이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공안의 측면에서는 정해진 답변[定答]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학(禪學)이라는 학문적 측면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 누구에게나 각자 나름대로의 올바른 답변[正答]이 존재합니다. --- p.29-30 둘째 질문은 서방에 정말 정토세계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세계에는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크게 유행하던 정토사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혜능은 정토는 자기의 마음이 청정한 것을 가리키고, 열 가지 악[十惡]을 버리고 열 가지 선[十善]을 닦으면 누구나 정토에 갈 수 있다고 답합니다. --- p.44~45 셋째 질문은 출가승려가 아닌 재가인의 수행법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혜능은 깨닫는 데는 출가와 재가의 구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마음을 곧게 지키면 굳이 계를 수지할 필요가 없고, 행동을 바르게 하면 굳이 선을 따로 닦을 필요가 없으며, 일상에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을 실천하는 것으로 누구든지 깨달음에 이른다고 답변합니다. --- p.45 『단경』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성(自性)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혜능의 설법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자성으로 통해 있으니까요. 자성은 제법의 법성(法性) 및 모든 중생의 불성(佛性)과 마찬가지로 본래심성을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혜능의 설법에서 일체의 성품은 본래부터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전제됩니다. 그래서 혜능의 법문을 자성법문이라고도 말합니다. --- p.75 혜능의 선풍은 모든 중생에게 본래부터 깨달음이 완성되어 있다는 본래성불(本來成佛)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모종의 어떤 의도적인 수행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혜능이 말하는 수행이란 이미 깨달아 있는 상태에서 그 깨달음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굳이 따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수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 p.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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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 선불교의 출발점
『육조단경』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승이자 선종의 6대 조사인 혜능(慧能, 638-713)의 어록이다. 일반적으로 ‘경(經)’이라는 호칭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하는 문헌에 대해 붙는 것이지만, 『육조단경』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經)’이라는 호칭을 달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 선종,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한국 선종에서 『육조단경』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담은 문헌만큼이나 추앙 받아 왔음을 보여준다. 깨달음의 세계는 일상 속에서 펼쳐진다 석가모니는 남녀노소와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가르침을 폈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아무래도 재가 신자보다는 출가 수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으며, 그 목표는 아라한이 되는 것에 머물렀을 뿐 감히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후에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재가 신자의 위상이 올라갔고, 누구든 깨달음을 얻기만 하면 아라한의 경지에 머물지 않고 부처까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대승불교 시대에 들어와도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한 길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의 세계 역시 요원한 것이었다. 『육조단경』은 불교가 안고 있던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정확하게 응답한다. 여기서 혜능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일상의 삶을 통해 걸어갈 수 있으며, 깨달음의 세계 역시 일상의 공간에서 펼쳐진다고 가르친다. 이를테면 불교적 이상향으로서의 정토세계라는 것은 서방(西方)이라는 멀고 먼 물리적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청정한 것을 가리킬 뿐이다. 또 그러한 정토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열 가지 악행을 하지 말고 열 가지 선행을 하기만 하면 된다. 수행에 있어서도 굳이 까다로운 형식을 따를 필요 없이, 걷고 머물며 앉고 눕는 일상적인 모든 행위가 수행이 될 수 있다. 중생은 본래 깨달은 존재 『육조단경』은 불교가 모두를 위한 가르침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육조단경』은 대개의 불교 경전이나 논서와는 달리 사변적인 가르침보다는 혜능의 생애에 있었던 구체적인 일화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일화들에 담긴 의미를 일반인이 속속들이 파악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문학 독자를 위한 육조단경』은 『육조단경』이 그려내는 일상 속 깨달음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왜 혜능이 일자무식의 이미지로 그려졌는지, 왜 혜능을 둘러싸고 중국 선종사의 법맥 논쟁이 일어났는지와 같은 의문들을 실마리로 하여 『육조단경』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이를 통해 『인문학 독자를 위한 육조단경』은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 혜능이 말하고자 했던 참뜻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혜능의 선풍은 모든 중생에게 본래부터 깨달음이 완성되어 있다는 본래성불(本來成佛)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 혜능이 말하는 수행이란 이미 깨달아 있는 상태에서 그 깨달음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굳이 따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수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본문에서) 저자의 말 “부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기록한 경전 이외에 불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불교 문헌 가운데 하나가 『육조단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육조단경』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발생하고 전개되며 전승되었지만 널리 그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한자 문화권을 넘어 다른 문화권에까지 소개되어 읽혀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