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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빛의 흔적
1장 어두운 그림자 2장 시간 벌기 3장 육체와 영혼 4장 관용 5장 불신임(不信任) outro 불행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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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상대로 주먹을 내는데 왜인지 거울 속에는 보자기가 펼쳐져 있을 때의 기분. 즉, 문제의 핵심은 민형이 언제나 지고 빼앗기는 쪽이거니와 그로 인한 상실이 언어나 숫자로는 온전히 표현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 p.27 우연이 지연을 죽인 상황이었더라면 기분이 나았을까 생각해 봤다. 아마도 그랬으리라는 생각이 떠오르더니 곧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는 쪽으로 기울어 갔다. 이름은 껍데기이며 본질은 그 총체성 안에 있다. 사랑할 만큼 가치로운 것,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화되는 것, 누군가에게는 학생이라 불리고 누군가에게는 딸이라 불림으로써 비로소 그 존재를 얻는 것. --- p.40 “아빠가 생각하기엔, 난 누구야?” “하나뿐인 딸.” “지연이야, 우연이야?” “둘 중 뭐든 상관없어.” “상관이 있어야 할 텐데.” --- p.99 엉망진창으로 살아 본 사람만 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습니다. 금융 투자 전문가, 경영 전무가가 있듯이 망한 인생의 전문가도 있는 겁니다. --- p.109 할 수 있다면 해야 하는 걸까?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해. 아니, 사실 꽤 자주. --- p.165 두려움은 그때부터 여전했고, 두려움을 떨쳐 내려는 노력은 곧잘 역효과로 돌아왔다. 채린의 불륜이 정확히 그런 사건이었다. 합리적 의심과 불안의 결합물로 시작되어 편집증의 영역을 넘나들었다가, 끝내 물리적인 현실로 닥쳐오는 일. --- pp.127-128 용서를 빌지 않으며 사과조차 하지 않는 첫마디 앞에서 민형은 새삼스러운 안도를 느꼈다.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한 상대란 차라리 은총이다. 최악의 사태에도 그나마 속 편할 구석이다. --- p.128 그냥 나는 남이 바라는 걸 해 주고, 죽으려는 상대도 여러 번 살렸어. 그러면 그 사람들도 나한테 목숨 하나쯤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살아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좋으니까……. --- p.147 그러니까 살인을 결심하는 동기는 결혼의 동기와 유사하다. 합가할 돈이 있어서, 상대가 좋아서, 사회적 입지를 생각해 볼 나이가 되어서, 부모님이 원해서처럼 수많은 이유들이 그 결정에 관여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뚜렷한 이유가 없게 된다. --- p.176 |
“할 수 있다면 해야 하는 걸까?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해. 아니 사실 꽤 자주.” 인정하기 싫은 가족,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한 인간을 집어삼켰을 때 치달을 수 있는 가장 극한의 비극 《다이브》 출간 이후 청소년 소설뿐 아니라 SF, 스릴러, 르포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 중인 단요 작가가 이번에는 범죄 스릴러를 들고 왔다. 《트윈》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였을 뿐 아니라 같은 얼굴과 유전자를 가졌음에도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와 자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강요당한 희생과 이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요구받은 성과주의에 갇혀 어느덧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 가장이 스스로 불러 온 재앙 같은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못 가혹하게 느껴지는 결말이 단요 작가만의 관념과 서사를 통과하며 보다 섬뜩하고, 박진감 있게 다가온다. 같은 얼굴을 한 일란성 형제 내 아이들의 아빠는 나일까? 그일까? 같은 얼굴을 한 일란성 자매 죽은 저 여자아이는 과연 누구일까? 민형과 민호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민형은 원가족으로부터 물질적 지원을 당연하게 요구받았으나 인망은 없었다. 반면 민호는 일평생 한량처럼 살았으나 말 몇 마디로 원하는 걸 얻어 왔다. 민형이 끝내 갖지 못 한 인망까지도. 그간 꿈꿔 왔던 가족의 한 장면 속에 자신이 아닌 민호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게 된 민형은 급기야 자신의 쌍둥이 딸들까지도 의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저런 한량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 사고인지 사건인지, 민형의 일란성 쌍둥이 딸 중 하나가 추락사했다. 죽은 딸 우연은 이번에 치의대에 합격했고, 남아 있는 딸 지연은 5수 중이다. 무정한 아빠인 민형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둘을 바꿔치기 하기로 결심한다. 그럼 지연은 5수 할 필요 없이 치의대를 갈 수 있을 테니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인가. 대체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면, 그리고 대체가 가능하다면 그 이유만으로 대체해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민형 자신 또한 민호로 대체되지 못 할 이유는 무엇인가? 대체할 수 있다면 대체해도 되는 걸까? 섬뜩할 정도로 담담하고 세심한 감정 묘사 기어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박진감 단요표 범죄 스릴러 닮음은 언제고 같음일 수는 없다. 작가는 일반 검사로는 구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를 통해 이를 은유하며, 또한 그런 상대에 대해 갖는 적개심 안에는 특히 자신이 포함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사회와 환경은 민형으로부터 인간성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처럼 남아 있는 인정욕에 붙들려 그는 매 순간 스스럼없이 위태로운 선택을 하고 그 선택 뒤에 늘 자신을 문진한다. 작가는 이 문진 과정을 통해 욕구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이며 독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 중에서도 담담한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감정 처리는 단요 작가의 전매특허다. 서사는 분명 천천히 흐르는 듯한데 어느 순간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작가는 ‘가부장의 실패와 실존적 위기, 죄와 심판과 용서에 대한 사변으로도 읽을 수 있으나 원론적으로는 범죄 소설’(「작가의 말」 중에서)이라고 이 책을 평하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메시지들을 읽어 내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돌렸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도 없고, 대체되어서도 안 된다는 데 대해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인간 존엄성의 측면에서도 이는 당연한 주장이다. 같은 얼굴을 했다고 해서, 대체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자.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