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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주목
옮긴이의 말 |
Agatha Christie,アガサ クリステ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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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나중이 되면 과연 그런지 의심이 들며 혼란스러워진다. 22쪽
어떤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좌절감의 관점에서 볼지 화려한 성공담의 관점에서 볼지. 둘 다 사실이다. 언제나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25쪽 고통에 시달리는 동물은 통증이 있는지 없는지만 생각할 뿐 다른 것에는 집중하지 못한다. 36쪽 거짓된 행복만큼 씁쓸한 게 또 있을까? 남자와 여자라는 종 사이에 오가는 끌림 같은 미혹. 자연의 유혹, 자연의 마지막이자 가장 교활한 기만. 나와 제니퍼 사이에는 오직 육체적인 끌림밖에 없었다. 거기서 괴물 같은 자기기만의 뼈대가 자라났다. 그것은 그저 욕정, 욕정이었다. 39쪽 우리는 참담한 기분으로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확신했던 사랑의 기적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의아해하면서. 39쪽 동정심은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에게나 느끼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나 가질 수 있는 거라고요. 42쪽 동물은 생각하지 않는다. 긴급하게 대처해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느긋하고 수동적이다. 우리는 어제 했던 일을 걱정하고, 오늘 할 일과 내일 일어날 일을 검토한다. 하지만 어제, 오늘, 내일은 우리의 사고와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일어났고 일어날 것이다. 52쪽 동정으로 인한 무력감은 인생의 공격에 자신을 내동댕이치고 끌려가게 한다. 128쪽 자기 본위의 욕심 많은 녀석은 큰 해를 끼치지 않아. 녀석이 원하는 건 자신만의 안락한 구석자리고, 그것만 확보되면 보통 사람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하는 일을 선뜻 반기지. 사실 그런 자는 보통 사람들이 행복하고 만족하기를 더 바라네, 그래야 골치가 덜 아프니까. 133쪽 난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아주 잘 알고 있네. 그리 대단한 게 아냐. 내가 남보다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잘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남들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는 것. 134쪽 인간이란 모든 것 중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취사선택하는 존재야. 154쪽 뭔가를 느끼는 게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훨씬 더 쉽고 편해요. 155쪽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전부 햄릿과 맥베스예요.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요…… ‘사느냐 죽느냐’, 존재할 것이냐 사라질 것이냐. 햄릿이 포틴브라스를 분석하듯 우린 성공한 사람을 분석해요. 157쪽 자신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없이 당당하게 전진하는 인간. 지금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158쪽 교활함은 인간에게 가장 쉬운 방어선 아닌가요? 굴속에 웅크리고 있는 토끼, 자신의 둥지를 향한 주의를 돌리려고 히스 꽃밭에서 퍼덕거리는 뇌조처럼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특징 중 하나 아니에요? 그래요, 교활함은 천성적인 거예요. 궁지에 몰려서 속수무책일 때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요.” 160쪽 “결혼은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면 우선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싶지 않나요?” “그건 인간을 더욱 함정에 빠뜨리는 자기도취의 일종입니다. 상당히 만연하죠. 통계적으로 볼 때 결혼생활에 다른 어떤 요소보다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고요.” 169쪽 나중에 아이는 ‘나’라고 일인칭으로 말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으로는 ‘나’가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아이는 ‘나’가 아닌 제삼자로 계속 남는다. 그리고 연속되는 그림 속 인물을 보듯 자신을 본다. 200쪽 전 그를 몰라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죠. 누군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213쪽 남자는 언제나 사냥꾼으로 무관심하고, 지치고, 때로는 배를 곯으며 여자와 자식을 이끌고 전진할 뿐이었다. 사냥꾼의 세계에 정치는 필요없다. 기민한 눈, 날렵한 손, 사냥감을 쫓는 기술만 필요할 뿐. 223쪽 모계 중심의 비옥한 세계에서는 생존이 훨씬 더 복잡하고, 성공과 실패의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여자는 별을 보지 않고, 비바람으로부터 사방을 막아줄 거처, 화로 위의 냄비와 잘 먹고 잠든 아이들의 얼굴만 본다. 224쪽 유머감각이란 게 문명인이 환멸에 대한 보호 수단으로 터득한 사교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그 상황을 우습게 여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죠. 228쪽 ‘가장 숭고한 것을 보면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고? 어떤 바보 멍청이가 그런 말을 했지? 237쪽 사람은 가장 숭고한 것을 보면 증오하게 돼 있어. 숭고는 내 얘기가 아니니까, 영혼을 팔아도 난 절대 그런 존재가 될 수 없으니까 증오하지. 용기를 정말 가치 있게 여기는 자야말로 위험이 다가오면 달아나는 족속이야. 237쪽 진창에 빠진 사람은 별들 사이에 올라가 있는 자를 증오해. 그자를 끌어내리고…… 내리고…… 또 내려서…… 자신이 뒹구는 돼지우리에서 뒹굴게 만들고 싶은 거야…… 238쪽 정신적인 질투야말로 황산 같은 거지, 먹으면 바로 사람을 말살하는 독. 가장 숭고한 것을 보고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그것을 사랑하라고? 그러니까 그걸 증오하고 파괴해버리기 전까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거야. 갈가리 찢고 짓밟아 숨통을 끊어놓기 전까지는…… 240쪽 아름다운 동물과 꽃을 만든 하느님, 인간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하느님, 세상의 창조주…… 아니, 난 그런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지지가 않아. 하지만 때로는?나도 어쩔 수가 없이?그리스도의 존재는 믿게 돼…… 왜냐하면 예수는 지옥으로 갔으니까…… 그의 사랑은 그만큼 깊었어…… 241쪽 ‘사랑하면 내버려두라’라는 말을 누가 했을까? 심리학자가 어머니들에게 한 충고였을까? 그 말에는 자식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큰 지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누구를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노력하면 적에게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265쪽 나는 악 그 자체가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아요. 이 세상의 해악은 약자들이 불러오는 거예요. 그들은 선의를 지니고 있고 아주 낭만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죠. 난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요. 그들이야말로 위험하니까. 암흑 같은 바다를 떠다니다 멀쩡한 배를 침몰시키는 표류선 같아요. 269쪽 꽃은 더러운 거름 더미 속에서도 변함없이 피어난다.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것이 꽃이라는 게 확연하니까…… 306쪽 난 그 여자의 영혼을 깨부수기 위해 별짓을 다 했어, 온갖 짓을 다 했다고. 난 그 여자를 진흙탕으로, 쓰레기들 속으로 끌고 다녔지만 그 여자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던 게 분명해! ‘더럽혀지지도 겁먹지도 않는’…… 이사벨라가 딱 그래. 그건 섬뜩해. 섬뜩할 정도라고. 310쪽 당신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 그럴 능력이 없으니까. 인생이 무슨 책이라도 되는 듯 창가에 웅크리고 사는 주제에 뭘 알겠나! 나는 지옥에 있었네. 난 분명히 지옥에 있었어. 311쪽 똑같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아지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315쪽 같은 레코드를 반복해서 듣고 싶지는 않은 법이다…… 315쪽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 분이나 천 년이나 의미는 똑같아요. 316쪽 지금까지 내 실패의 원인은 연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의 소중한 면죄부였다. 연민, 안이한 연민으로 나는 살았고, 그것으로 안도해왔다. ---p.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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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 분이나 천 년이나 의미는 똑같아요.” 애거사 크리스티 본격 심리소설, 국내 최초 완역판 “이 작품을 읽을 때면 나는 늘 행복했다. 언젠가 꼭 쓸 거라 확신하던 이야기였고 그런 영감은 순수한 창조의 기쁨, 창조주의 일부가 된 것 같은 희열을 주었다.” _애거사 크리스티 납득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닫혀버리는 ‘이해’라는 문 누구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휴 노리스는 어느 날 찾아온 낯선 부인의 요청으로 수십 년 전 자신을 슬픔과 경악에 빠트렸던 존 게이브리얼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허름한 방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게이브리얼을 본 순간 충격에 휩싸인다. 추악하고 비열한 협잡꾼이라 믿었던 그 남자가, 한 여자를 비참한 삶으로 내몰았던 그 남자가 모든 이의 존경을 받는 영웅이자 구원자인 클레멘트 신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이브리얼이 죽기 전 들려준 이야기는 휴 노리스의 기억을 완전히 산산조각내며 그의 기억을 수십 년 전 콘월의 한 지방으로 거슬러올라가게 한다. 클레멘트 신부는 존 게이브리얼이었다. 세인트 루의 전직 국회의원이자 바람둥이, 주정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했던 그 남자였다. 책략가이자 기회주의자, 육체적인 용기를 빼면 아무런 미덕도 없던 그 남자. (본문 18쪽)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처지를 비관하며 자살을 계획했던 휴 노리스는 영국 콘월의 소도시에서 삶에 대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귀족 처녀 이사벨라를 만나면서 안식과 위안을 얻게 된다. 그리고 강렬한 개성을 가진 야심가 존 게이브리얼을 만난 후로 자살도 미뤄둔 채 두 남녀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일대의 소요를 관찰하듯 지켜보기 시작한다. 신분적 열등감과 귀족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품고 있던 존 게이브리얼은 오직 출세만을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서 결국 당선의 패를 쥔다. 하지만 그 직후 그가 자신이 혐오해마지않던 귀족이자 약혼자가 있던 이사벨라와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듯 세인트 루를 떠나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벌어진다. 두 남녀의 밀월은 누가 보아도 ‘사랑’이 이유일 리 없었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노리스는 지독한 상실감과 배신감에 사로잡힌다. 그녀가 게이브리얼 같은 남자와 행복할 리 없었다. 그는 이사벨라를 갈망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았다. 게이브리얼에게도 완전히 미친 짓이었다. 정치 생명을 끊는 일이었다. 모든 야망을 팽개치는 일이었다. 그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려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본문 278~9쪽) 사람이 타인을 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 사람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잖아요. 당신은 진짜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프롤로그’에서 게이브리얼이 고백한 이야기는 소설의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르러 완전히 드러나며 충격을 던진다.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퍼즐을 맞춘 뒤 휴 노리스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똑같은 사람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고,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 보이기도 하는 인간성의 진상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게이브리얼과 이사벨라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노리스는 두 사람 사이의 분명한 신분 격차와 소통 부재만을 보았을 뿐이고 그들의 진짜 감정에는 다가서지 못했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단 한순간도 의심치 않았던 이사벨라도, 그 사랑을 처음부터 의심하고 시험하려 들었던 게이브리얼도 서로를 온전히 알지 못했기에 불행한 연인들이었다. 그들은 상대를 열망하면서도 함께한 동안에는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못했다. “그를 좋아합니까, 이사벨라?” “전 그를 몰라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죠. 누군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본문 213쪽) 파노라마 같은 독법을 유도하는 다채로운 이야기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에 생각이 시작된다 노리스는 지나간 모든 기억을 다시 꿰어가며 사랑의 허상을 깨닫는다. 인간이 얼마나 예측 불가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인지를 아프게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이 자기도취에서 비롯한 자기만족적 기만에 불과한 것임을, 오히려 그 희생이 자신을 위한 것일 때라야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는 모순도 발견한다. 우리는 언제나 연민과 사랑을 쉽게 혼동하며, 사랑에 빠진 순간 나와 상대 사이에 ‘그를 사랑하는 나’와 ‘나를 사랑하는 그’를 세우고 나와 그의 본모습은 보지 않는다. 때문에 사랑이 끝나면 나와 그의 존재는 사라지고, 그 사이에 허물 같은 껍데기만 남는다. 좋은 예술 작품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해석의 여지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남녀의 러브스토리로 읽을 수도 있고, 주관적 판단의 불완전성과 위험성을 시사하는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 또 성 바울과 예수에 대한 작품 속 언급으로 미루어 게이브리얼라는 이름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 ‘가브리엘’의 영어식 표기인 것을 감안해 게이브리얼을 바울로, 이사벨라를 예수로 보는 해석도 있을 수 있다. 즉 그리스도교를 이단으로 치부했던 바울이 예수에게 감화되어 그를 섬기는 새 삶을 살았듯이, 이사벨라를 향한 게이브리얼의 뼈아픈 참회록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장미와 주목』은 애거사의 작품들 중에서도 『봄에 나는 없었다』와 더불어 애거사가 특히 아꼈던 작품이다. 『봄에 나는 없었다』가 기억의 왜곡과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한지에 대해 묻는 작품이었다면, 『장미와 주목』은 주관적 판단의 위험성과 타인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한지를 묻는 작품이다.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 추천의 글 인간이 가진 계급의식을 고요하고 지적으로 풀어냈다.-북스 다양한 소재를 노련하게 압축한 강렬하고 명료한 소설.-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