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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편집자는 특수한 관계다. 가깝고도 멀다. 멀지만 가깝다. 가깝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멀어서도 안 된다. 내게는 편집자가 곧 출판사지만, 그렇다 한들 결국엔 한 명의 개인,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된다.
--- 「2월의 요코오 세이고」 중에서 어느새 꽉 채운 4년을 문예 편집부에 있었다. 2팀이다. 엔터테인먼트. 여태껏 히트작을 낸 적이 없다. 중쇄를 찍은 책이 몇 권 있을 뿐이다. 편집과 상관없는 부서로 발령받은 동료를 보며 나도 슬슬 실적을 올려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솔직히 초조하다. --- 「4월의 이구사 나타네」 중에서 쓸데없이 상상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쉬지 않는다. 쓸데없이 바라지 않는다. 쓸데없이 지키지 않는다. 이 또한 평소와 다름없이, 이불 속에서 이렇게 읊조린 후 몸을 일으킨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은 것이다. 추운 겨울 아침에도 주문을 외듯 이렇게 중얼거리고 말이 끝나는 순간 벌떡 일어난다. 좌우명 같은 건 아니다. 위대한 사람이 남긴 명언도 아니다. 내가 만든 말이다. 나태한 나를 채찍질하기 위해 생각해냈다. --- 「5월의 요코오 세이고」 중에서 지금은 6월. 확실히 촉박한 일정이다. 보통 한 작품을 완성하려면 1년은 걸린다. 하지만 편집장도 이렇게 말했다. 요코오 씨, 가능할 것 같으면 2월에 내도 돼. 가능한가 아닌가의 판단은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다. 무조건 괜찮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요코오 씨의 망설임 없는 대답을 듣고 결정했다. 그리고 재미있게 만들 거야, 라는 말을 듣고. 작가들은 의외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쓰기도 전에 말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스스로 목을 조이는 셈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요코오 씨는 했다. 믿고 가보자. --- 「6월의 이구사 나타네」 중에서 말도 안 돼. 큰일이다, 큰일이야, 큰일 났다고. 이불 널어놓고 왔잖아! 1층의 좁은 베란다. 일단 차양이 있긴 하지만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무방비. 바깥에 무방비 상태로 널어둔 이불 위로 비가 내린다. 이 비, 절대로 내려선 안 됐다. 신발은 괜찮다. 빨랫감들도 괜찮다. 괜찮은 건 아니지만 별수 없다. 하지만 이불만은 안 된다. 절대로 안 돼. --- 「7월의 요코오 세이고」 중에서 와중에도 일상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애쓰며 나는 글을 썼다. 쉬지 않고 썼다. 계획대로라면 일주일 내에 초고가 완성될 것이다. 그 시점에 태풍이 왔다. 무시무시한 태풍이. 밤새 거친 바람이 불었다. 창문 밖의 셔터가 덜컹덜컹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베란다에서 멧돼지가 난동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 「9월의 요코오 세이고」 중에서 작가에게 전달받은 첫 번째 원고. 난 그 원고를 정독하는 일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평범한 독서를 하듯 한 번 읽고,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읽는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처음에 읽으면서 알게 된 스토리 전체의 그림을 의식하며 읽는다. 그렇게 하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을 탐색하며 읽을 수 있다. 수정 제안을 고려하면서 한 번 더 읽는다. 그 제안이 정말 좋은 건지, 과하거나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검증한다. --- 「10월의 이구사 나타네」 중에서 이제 두 번 다시 퇴짜를 맞고 싶지 않다. 퇴짜 놓게 두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쉬지 않고 썼다. 내게는 글자가 있고, 유미코가 있다. 둘 다 어느 때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나는 먹고는, 자고 쓴다. --- 「1월의 요코오 세이고」 중에서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내리지 않는 비가 없듯. 앞으로도 쉬지 않고 읽어나갈 것이다. 나는 먹고는, 자고 읽는다. --- 「2월의 이구사 나타네」 중에서 |
봄에 만나 여름을 지나 이듬해 겨울까지,
보이지 않는 내일을 향해 달리는 이인삼각의 걸음 쉰이라는 나이에 여전히 혼자 원룸에 살면서 쓰는 일에만 몰두해온 소설가 요코오 세이고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 ‘작가로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쓰고 운동하고 쓰고 걷고 쓰고 먹고 하루를 마감하는 요코오의 일상은 오로지 소설을 집필하는 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에게 유일한 여가는 대학 시절부터의 친구 유미코와 술잔을 기울이는 것뿐. 그런 그가 오랜 구상을 거쳐 집필한 작품의 출간을 거절당하고 만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당연히 의사가 될 줄 알았으나 의대 진학에 실패한 후 충동적으로 문학부 전공을 택한 이구사 나타네는 대학 시절에는 복싱 선수를 꿈꾸다 그마저 실패하고 출판사 편집자가 되었다. 편집자 5년 차지만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어 조금은 초조한 상태. 그런 나타네에게 요코오 세이고 작가를 담당하라는 과제가 떨어진다. 『오늘도 먹고 자고, 씁니다』는 저마다의 정체기를 겪고 있는 소설가 요코오와 편집자 나타네가 번갈아 화자가 되어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1년의 세월을 서술하는 작품이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사소한 일상적인 시간 안에 요코오는 ‘쓰는’ 행위를, 나타네는 ‘읽는’ 행위를 커다란 요소로 더한 채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같은 듯 다른 하루하루를 보내며 열두 달을 지나온 두 사람 앞에는 이윽고 『내리지 않는 비는 없다』라는 자전적 소설 한 권이 도착한다. 어디까지가 실제 작가인 오노데라 후미노리의 이야기인지, 어디까지가 출판사와 편집자의 진짜 이야기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 역시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매력이다. 작가 오노데라 후미노리는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세세한 묘사, 깊이 있는 캐릭터 설정, 균형의 묘를 살린 구성 등 흠잡을 데 없는 일상 소설을 완성해냈다. 또한 이 작품은 자신의 일에 진심으로 임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직업을 다루는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훌륭한 직업 소설이기도 하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다른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의 소통과 이해에 관한 이야기 인물들이 번갈아 화자가 되는 구성이 소설 장르에서 크게 특별하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도 먹고 자고, 씁니다』에서 이 구성이 돋보이는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성에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대방과 반대되는 입장에 놓이는 일을 자주 겪는다.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출판업계에서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함께 일한다. 이 책에서 편집자로 등장하는 나타네는 여자친구에게 작가와 편집자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는 일이 달라. 작가는 쓰고 편집자는 읽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완전히 반대쪽에 서 있는 상대를 바라보는 일. 상대의 존재를 생각하고 그의 입장에 서 보는 일. 작가인 요코오도, 편집자인 나타네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순간마다 머릿속에서 서로를 절대 지우지 않는다. 정해진 시일에 맞춰 원고를 집필하고 약속된 날짜에 그것을 보여주며 평가를 감수하는 작가로서의 삶과 작가가 힘들게 쓴 원고를 감사한 마음으로 읽으며 더 나은 작품이 되게끔 고민하는 편집자로서의 삶은 다른 자리에 있어도 결국 독자에게 더 재밌는 책, 좋은 작품을 내보이고 싶다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걷는 걸음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타인에 대한 이해가 곧 나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오노데라 후미노리는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성을 통해 독자에게 분명하게 전달한다. 삶을 나아가게 하는 건, 단단하게 쌓아온 일상의 힘 루틴대로 하루를 보내는 요코오지만 그의 일상에서도 생각지 못한 소소한 일들은 늘 벌어진다. 싼 전자레인지를 사서 직접 들고 오느라 근육통이 생기고, 급작스러운 호우로 널어둔 이불이 흠뻑 젖는다. 30엔짜리 두부의 뚜껑이 어느 날부터 잘 뜯기지 않자 오래 망설인 후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기도 한다. 늘 길에서 만나는 사람부터 종종 만나 시간을 보내는 친구의 변화까지 인연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이렇듯 작품이 엎어지거나 실연을 당하는 등의 큰 사건들도, 생활에서 부딪히는 작은 일들도, 비가 오거나 맑은 날씨도, 낮도 밤도, 사실은 모두 이어져 있다. 일상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변화무쌍해서 요코오와 나타네의 1년도 처음과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의 삶은 디테일한 일들의 연결이다. 대단한 사건들은 몇 번 벌어지지 않는다. 큰 변화 앞에서 우리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단단하게 쌓아온 일상의 힘이다. 그렇기에 요코오와 나타네는 오늘도 먹고 자고, 쓰고 읽고, 걷고 달리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이 두 사람은 결국 가장 중요한 일은 가장 사소한 일상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또한 정성껏 독자에게 전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