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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를 내면서
Ⅰ. 서론 Ⅱ. 사실의 규정과 단어의 역사를 위한 지침들 1. 시기 개념으로서의 ‘계몽’ 2. ‘계몽’이라는 단어의 역사 Ⅲ. 18세기 마지막 30년 동안의 전형적인 개념 형성 1. 오성의 조명과 마음의 온정으로서의 ‘계몽’: 베스텐리더 2. 보편적 인식 개념과 지知 개념으로서의 ‘계몽’: 빌란트 3. 도덕적·실용적 교육 개념 및 민족 교양 개념으로서의 ‘계몽’: 박애주의자들 4. 칸트의 계몽 개념의 다의성 5. “이론적 교양”으로서의 ‘계몽’: 멘델스존 6. 철학과 학문과 합리적 삶의 산만한 통일 개념으로서의 ‘계몽’: 림 7. “절대적 계몽”의 기초: 바르트 Ⅳ. 혁명기 매체의 논쟁에서 표어 신조어들과 개념 구획들 1. 언어 사용의 양극화와 정치화 2. “참된” 계몽과 “거짓된” 계몽의 차별화 3. 보편 개념의 중립화 Ⅴ. “독일 운동”에 있어서의 단어 사용과 개념 규정들 1. 예비 설명 2. 레싱 3. 하만 4. 헤르더 5. 실러 6. 1800년 무렵의 낭만주의와 관념론의 계몽 이해 7. 잘라트의 대항 개념 “도덕적 계몽”과 니트함머의 역사적·부정적 계몽 개념 8.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기독교적 계몽 이념 9. 헤겔의 역사적·체계적 계몽 개념 Ⅵ. 19세기 계몽 이해의 근본 경향들과 국면들 1. 보편적 특징 2. 가톨릭의 개념 이해 변천 3. 프로테스탄트의 개념 이해 입장들 4. 보편적인 세계관적 계몽 개념의 형성과 적용 5. 반계몽주의 비판에 비친 초기 자유주의의 계몽 이해 6. 교육학적 계몽 개념과 이 개념의 역사화 7. 헤겔 좌파의 계몽 이해와 니체의 “새로운 계몽” Ⅶ. 조망 옮긴이의 글 읽어두기: 주석에 사용된 독어 약어 설명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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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 개념의 변천사를 살피다
계몽, 어둡게 가려진 것을 환하게 열어 밝게 해준다 어둡게 가리어진 것[蒙]을 환하게 열어 밝게 해준다[啓]는 우리말 ‘계몽啓蒙’은 여러모로 좋은 뜻을 지닌다. 지식이 필요한 이에게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영원한 밑천을 베푼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의식의 수준을 끌어올려 교양 있는 공동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막상 계몽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의 의미 자체를 묻게 되면 쉬운 답변을 기대할 수 없다. 계몽이라는 말이 우리의 개화기에 도입된 신조어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때 계몽되어야 할 대상은 서구 문명의 혜택을 맛보지 못하고 여전히 봉건체제에 정체되어 있었던 조선 사람일 것이다. 물론 계몽의 주체는 그 혜택을 일찍 맛본 조선인이나 서구 문명을 이끌어 온 서구인이 된다. 계몽의 구도를 이렇게 잡게 되면 계몽이란 선진적인 계몽자가 후진적 피계몽자에게 베푸는 시혜이자 이를 통해 그 계몽자의 문명과 사회 정치 구조 속으로 진입하는 과정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양자 간의 정치적 관계가 항상 수평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계몽 개념의 형성과 발전의 모든 것 계몽의 역설이라 할 만한 이 문제는 비단 우리의 근대사에만 표출되었던 것이 아니다. 이 말의 탄생에서부터 현대적 반성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사상은 이미 3백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개념의 형성과 발전은 최근 출판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6―계몽》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개념사 연구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의 본 항목 〈계몽〉은 일단 다른 항목들보다 현저히 많은 지면이 할애되고 있다. 이는 형성 초기부터 비롯된 이 개념의 다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계몽이 철학적 교육적 제도적으로 관철되고 실현되어온 과정 자체가 또한 반계몽주의와의 기나긴 투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선 계몽이라는 말이 18세기에 특정한 역사 시기를 지칭하는 말로 등장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계몽에 해당하는 서양어 Aufklarung, enlightment, eclaircissement 등은 다른 유사어들과의 경쟁을 통해 정착되어 왔으며, 다양한 의미들을 수용하거나 배제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과정을 당대의 대표적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일일이 추적하고 있으며 아울러 계몽에 반대했던 여러 흐름들도 소개하고 있다. 거론되는 이름들만 해도 베스텐리더, 잘츠만, 차하리아스 벡커, 림, 바르트 등을 비롯해 빌란트, 멘델스존, 칸트, 헤르더, 하만, 피히테, 셸링, 헤겔, 니체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풍부하다. 철학이든 예술이든 종교든 관련된 독일 계몽 사상가들은 20세기 중반 제2의 계몽 시기까지 거의 모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계몽’ 개념에서 주목되는 세 가지 특징 계몽, 반계몽주의와의 투쟁의 산물 저자의 계몽 개념 논의에서 특히 세 가지 대목이 눈에 띈다. 첫째, 계몽은 무엇보다 반계몽주의와의 투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1780년대 중반부터 시기 개념을 넘어 인식 내지 지知의 개념 또는 도덕 원리, 교육, 교양 등의 내용적 상관어로 확장되었을 때 계몽은 반계몽주의와 정치적 대결 구도에 접어들게 되며 근대 역사를 획기적으로 특징짓는 진보의 지침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때 반계몽의 진영은 물론 구체제를 정치적 종교적으로 옹호하려는 세력 전체를 통칭하는 비방어로 등장한다. 그러나 반계몽으로 분류되는 모든 사상가가 시대착오적 후진성에 매몰되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요한 게오르크 폰 침머만J. G. v. Zimmermann의 계몽 비판에서부터 19세기 로테크Rotteck와 벨커Welcker의 반계몽주의 정의를 통한 계몽의 정교화 시도까지 기나긴 맥락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계몽이 어떻게 정치적 종교적 극단화인 자코뱅주의와의 동일시로부터 벗어나 균형감 있는 진보 개념으로의 전환을 꾀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몽 개념은 상당한 비판적 논쟁을 거쳐 왔다 두 번째로 주목할 만한 것은 계몽에 대한 철학적 노력 또한 언제나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으며 상당한 비판적 논쟁을 거쳐 왔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칸트의 계몽 논문은 당시에 이미 강력한 비판을 겪어야 했다. 바로 요한 게오르그 하만J. G. Hamann이 대표적 인물이다. 칸트는 알려는 용기와 더불어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남을 계몽의 본질이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하만이 보기에 이러한 규정은 미성년자 자신의 관점에서 설정된 것이 아니기에 근본적인 위험을 내포한다. 미성년이 오성 사용의 무능력을 뜻한다면, 이로부터 벗어남은 이미 성년에 접어든 후견인이나 인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후견인이나 인도자 자신이 맹목적이라면? 자신들을 자유정신의 대변자라 치장하면서 국가 권력의 전복과 종교의 와해만을 추구하는 자들이라면? 그래서 하만에 따르면 참된 계몽은 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미성년 상태를 벗어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리 인식을 통해 후견 상태 자체를 극복하는 데 있다. 아무리 멋진 말을 듣는다 해도 너무 놀라지 마라Noli admirari! 계몽 진영의 자기 비판적 전통, 계몽 개념에 부정적인 인물을 낳다 끝으로 계몽 진영의 이러한 자기 비판적 전통은 계몽 사상가로 분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은 계몽 개념에 부정적이었던 인물을 낳기도 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헤겔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헤겔에게 계몽이란 유한자를 그 자체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무한자와의 대립 속에서 머무는 오성의 활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오성에게 신적인 여원한 것은 유한자가 인식적으로나 존재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무無일 뿐이며 오직 가능한 것은 무한자로부터의 지반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떠도는 현세적인 것들의 무한 유희뿐이다. 그렇다고 헤겔이 반계몽의 진영으로 변신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미 계몽 개념을 역사화하며 의식이 도야되는 역사에서 특정한 교양 단계에 출현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말하자면 세계사적 발전의 맥락에서 계몽의 성과와 오류를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헤겔은 이를 통해 근대 역사의 진보적 흐름에 부합하는 자기 나름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고자 했다. 이 시도의 성공 여부는 별도의 전문 연구를 필요로 할 것이다. 계몽의 역설 극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그러나 이를 넘어서 저자는 그 후 양진영으로 갈린 헤겔학파의 계몽에 대한 영향을, 특히 헤겔 좌파와 니체의 계몽 개념에까지 추적하고 있으며, 20세기 전후 신좌파나 볼테르 클럽 등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계몽 논의의 전망까지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전체적인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앞서 제시한 소위 계몽의 역설, 즉 계몽을 통한 정치적 평등이나 상호 문화적 존중의 문제가 비단 과거의 고민거리로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현대 철학의 단골 메뉴처럼 되어 버린 탈계몽 논의의 비역사성을 재고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