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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007
1부 사격부원의 시간 011 2부 급사의 시간 073 3부 경리의 시간 129 4부 요양사의 시간 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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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을 완성한 뒤 ‘끝.’이라고 쓰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저런 핑계로 오랫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든 탓이었다. 좀처럼 자라지 못한 채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있던 소심하고 겁 많은 소녀를 비로소 떠나보낸 듯했다.
--- p.7_ 작가의 말」 중에서 영이는 온순했다. 영이에게는 누군가의 부탁이나 명령을 거슬러본 기억이 없었다. 순한 기질로 태어난 것인지, 세상의 사물을 분간하고, 배고픔을 알게 되고, 자신의 출생에 개입한 것이 사랑이나 믿음이 아닌 어리석음과 경솔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 p.13 「1부_ 사격부원의 시간」 중에서 영이가 분노의 원인을 알게 된 건 그날따라 혹독했던 훈련, 가혹했던 비난, 히스테리에 가까운 신경질을 온몸에 뒤집어쓴 뒤 교문을 나섰을 때였다. 암튼 종미 언닌 왜 그렇게 영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영이야 오늘 정말 힘들었지. 맞아. 아무리 사수라도 너무한 거 아냐. 오늘은 완전 미친 것 같더라. 어휴 키도 작은 게 꼴에 선배라고. 오늘은 영이가 아무리 잘했어도 괴롭혔을 거야. 두런두런 나누던 이야기 끝에 한 아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나머지 둘이 동시에 물었다. 아는 언니한테 들은 건데. 너네, 국어 선생님이 3학년 한문도 가르치는 거 알지. 자기에 대한 집중이 흐뭇한 듯 아이의 눈이 빛났다. --- p.54 「1부_ 사격부원의 시간」 중에서 깨순이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 건 그 아이가 방송통신고에 지원했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영이는 많이 놀랐다. 취한 아버지를 피해, 무덤가에 앉아 있던 밤에도 자기는 꼭 고등학교에 갈 거라고, 절대 오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깨순이가 아닌가. 그러나 뒤이어 떠오른 생각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의 아버지라면 딸의 진학을 충분히 반대했을 것 같았다. --- p.99 「2부_ 급사의 시간」 중에서 보통의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영이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 첫 키스를 상상한 적이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그 행위는 절절한 열정과 애정에 기반한 것일 터였고 첫사랑에 의해 실현될 것이라 생각했다. 솜사탕처럼 감미롭고 커피처럼 향기로울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을 배반했다. --- p.121 「2부_ 급사의 시간」 중에서 미스 김이라는 호칭도, 반말도 딱히 싫다고 느낀 적이 없었기에 영이는 그런 말을 하는 수경이 낯설었고, 아무것에도 분노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다. --- p.142 「3부_ 경리의 시간」 중에서 아까 택시에서 본 영화관이네요, 저 뒤로 학교가 있다고 했죠. 사거리가 보이자 청년이 말했다. 어색함을 불식시키려는 듯 목소리가 컸다. 거기 한 번 가볼까요? 대학교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들어갈 수 있나? 그냥 다른 데로 가요. 학생도 아닌데요 뭐. 하긴 그러네요. 둘은 다시 걸었다. 낮과는 다른 부산스러움이 골목 곳곳에서 느껴졌다. 유흥주점과 노래방 간판과 장식 조명들이 앞을 다투어 명멸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이국의 성 모양으로 지어진 모텔들은 조악하고 이물스러웠다. 그럼 술이나 한잔할까요? 문득 떠올랐다는 듯 청년이 말했고 영이는 그러자고 했다. --- p.175 「3부_ 경리의 시간」 중에서 어머니의 신은 그녀의 헌신에도 구원의 은사를 내리지 않았던 것일까. 그토록 사랑하는 신에게 어머니는 버려진 것일까, 도망 나온 것일까. 나를 알아보기는 한 걸까. 내 생각을 하기는 했던 것일까. 묻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 p.219 「4부_ 요양사의 시간」 중에서 올해는 무척 덥겠어. 93년도였나 4년도에도 무척 더워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꼭 그때 같아. 햇볕이 여간 사나운 게 아냐. 그러네요. 사는 게 아주 고통이야. 그래도 다 지나가겠지. 정제된 낮은 목소리.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던 영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 p.234 「4부_ 요양사의 시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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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이고 절제된 문체, 세심한 심리묘사와
그리울 것 없으면서 왠지 그립게 만드는 레트로 체크무늬로 완성된 소설 평범함이 일종의 미덕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우악스럽고, 잔혹하고, 추근거리고, 술을 진탕 마셨건 아니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평범하다고 여겨졌던 시대. 직접 다시 돌아가라면 그래서 당연히 사절이지만, 그 시대를 겪어 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조차 왠지 모르게 그리워진다는 그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삶’을 이어온 어느 한 여성의 이야기, 『영이의 고독』이다. 『영이의 고독』은 영이라고 이름 붙여진 한 여성의 생애사를 다룬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이는 겁쟁이였다.” 그는 키는 크지만, 화약총이 무서워 달리기에서 늘 꼴찌를 기록하는 심약한 중학교 1학년이다. 20세기의 학교는 폭력적이다. 특히 체육부는 폭력적이다. 장신이라는 이유로 사격부로 차출된 겁 많은 영이는 가혹한 환경에 노출된다. 상급생은 선생을 흉내내 하급생에게 구타를 일삼는다. 타인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던 영이는 어쩌지도 못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운동부 생활을 계속한다. 그렇게 3년이 지나, 폭력과 사격에 간신히 적응할 무렵, 그는 사격부를 자기도 모르게 그만두어 버린다. 그리고 주간반과 야간반으로 나뉜 상업고등학교의 학생이라는, 막연한 처지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다. 소설이 그리는 영이의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영이는 거의 언제나 소극적이고, 세상의 도전을 제대로 헤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자기 어필을 잘하거나 사교적으로 뛰어난 인물도 아니다. 아니, 그 정반대다. 당연히 사회적 성공과는 동떨어진 위치에서 맴돈다. 지혜롭다고 보기도 애매하고 무슨 영성적 마력이 있는 유형도 아니다. 착하다는 게 장점으로 제시되긴 하지만, 소설이 암시하는 그것의 결정적 계기는 『캔디캔디』 같은 어린 시절의 책들이 제안하는 관념, 즉 ‘착하게 살면 기적이 올 거야’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일종의 동화적 세계관이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따라서 진지한 소설의 세계 역시 동화적일 수 없다. 영이의 소망은 늘 깨지고 엇나간다. 그렇게 그는 상처를 안고 안은 채 점점 고독해져만 간다. 언뜻 세상과 제대로 대결하지 못하는, 늘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애매한 패배로만 사건을 마무리짓는,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어느 면에서나 결격으로만 보이는 이 영이를 작가는 왜 선택했을까. ‘저자의 말’에 나오듯, 단지 자기의 어린 시절 모습과 닮아서일까. 『영이의 고독』은 주인공 영이가 세상과 자기 나름으로 조화하고 불화하는 이야기다. 영이가 마주하는, 학교와 가정에서, 대학과 직장에서 비슷하게 변주되는 폭력들은 일종의 병영국가였던 한국의 개성을 잘 드러낸다. 체육 교사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군대에서 배워 온 조직통제 기법을 작은 병영인 사격장에 그대로 실행한다.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치는 폭력을 사격만큼이나 열심히 학습한다. 영이가 사격부를 그만두는 광경은 소설에서 언뜻 충동적으로만 그려지지만, 그것은 영이 자신이 사격부라는 가학-기구에 마침내 적절히 적응했다고 자각하는 시점이다. 좋은 기록을 거두고 나서야 영이는 비로소 자신이 마주한 폭력을 공포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시점에서 사회화, 폭력의 체화, 영이의 미래, 대학, 사회적 성공은 분간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직진할 것인가, 아니면 물러서서 그것들을 부정할 것인가의 윤리적 기로에서 영이는 후자를 택한다. 역시 영이의 다른 충동으로 그려지는 남자와의 이별 장면에서도 비슷한 기제가 읽힌다. 영이의 첫 경험 - 키스, 포옹, 그리고 어쩌면 섹스 - 는 성폭력의 역겨운 맛으로 기억된다. 영이는 폭력 이후에도 폭력을 경험한 장소인 대학에 급사로 계속 출근해야 했고, 자신이 비난받을 것이 뻔했기에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토로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사귄 남자와의 모텔행 직전, 돌발적인 만남과 우연한 대화들이 앞서의 사건을 강력히 상기시킨다. 그래서 영이는 좋은 남자의 아내라는 행운을, 역시 자신의 판단 근거를 명확히 포착하지 못한 상태로 거부하고 만다. 영이는 기적을 바라지만, 기적으로 포장된 것 안에 면면히 흐르는 현실을 지각하는 인물이며, 가학적 체제를 은폐하려는 행운의 ‘이물감’을 누구보다도 잘 느끼는 사람이기도 하다. 즉 ‘기적은 더 이상 착하지 않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선택한 불행 속에서 말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소화불량에 시달리거나 하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나간다. 급사라고 불리는 보조 사무원, 경리, 요양보호사,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거나 현재 그러고 있는 직군들이다. 사회적 성공을 부여받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사회는 존재의 동력을 상실한다. 물론 세상에는 그 노고의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직업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버스 안내양 같은 어떤 직업들은 가끔씩 추억의 ‘대상’으로나 소환될 뿐, [전국노래자랑]의 오프닝 멘트에 등장할 자격을 얻지도, [국제시장]의 주연으로도 등장하지 못한다. 영이는 이렇게 타자화된 많은 ‘영이’들의 분신으로서, 그들의 일상과 묵묵히 함께하며, 그들의 고독을 역설적으로 공유한다. 그런 직업들은 대부분 여성들이 종사하는 특징을 지녔기에, 『영이의 고독』은 여성서사로서도 그 담론적 의미가 충분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영이의 개성은 여성성의 전형으로 읽히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지만, 자본주의사회의 평가야 어떻든 그런 개성의 의미는 낮추어 볼 수 없다. 세상이 특별함을 요구하면 할수록 누군가는 조용히 묵묵해야 하고, 세상이 금전적 성공을 노래할 때 누군가는 돈이 안 되는 영역에서 여전히 돌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80, 90년대의 억척스러움과 소란스러움을 추억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많은 영이를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는 그들 덕분에 그 레트로의 세상도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니까. 『영이의 고독』은 그런 영이들을 호명하며, 삶에서 역시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기 쉬운 우리 안의 그런 개성들을 또한 주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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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내 곁을 스쳐간 수많은 ‘영이들’을 떠올렸다. 잊혀질 뻔한 이야기들이 그렇게 되살아났고, 책을 덮은 뒤에도 내 안에서 한참 더 이어졌다. 소설이 좀더 길게 이어지기를, 좀더 읽을 수 있기를 바란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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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 속에 불우한 고독의 시간. 하지만 상처 속에서도 살아내고 성장하는 영이를 흔들림 없이 응시하며, 양선미는 잔잔하지만 단단한 문장으로 증명한다. 작고 무명한 삶일지언정 그 고유의 존엄만큼은 비교하거나 대체될 수 없음을. -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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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사람의 고독한 생(生)이 과장 없이 소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영이의 고독』을 통해 알게 되었다. - 오현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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