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타로를 읽는 사람
강렬한 감을 가진 나약한 인간 그 사랑의 이름 하는 척하지만 하지 않음 미련과 희망 사이 불운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 내가 갇힌 성 나와의 차이 선택의 결과 불완전한 시작 상처의 급습 겉담배와 속담배 저녁 식사의 주제 가득 찬 둥지의 딜레마 하지 못한 말 조용한 시간 데고, 끌리고, 모르고, 그래도 시작하고 읽어줘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당신의 마음으로 기로의 끝에 막을 수 없는 흐름 지친 마음들 그릇과 방향 사랑의 대화 열지 않은 열쇠 이제 그만 크리스마스 구원자가 된다는 것 러브 샷 에필로그: 거침없이 달려볼게 작가의 말 |
문혜정의 다른 상품
|
손님의 눈빛에는 경계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익숙한 표정과 상황이다. 질문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숨기고 싶은 욕망,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사건 사고,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어느 정도는 드러낼 수밖에 없다. 돈을 받고 누군가의 고민이나 문제에 조언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제3의 공간 같은 존재이다. 여기에 양가감정이 발생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치부를 얼마만큼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오히려 접점이 없는 타인이기 때문에 모든 걸 털어놓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유혹이다.
--- p.23 사랑은 그 어떤 감정보다 순수하고 촘촘한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이다. 양다리를 걸치는 것 역시 진짜 사랑은 아닐지라도 유사한 감정을 양쪽으로 분배해야 할 테니 남는 힘이 없었을 것이다. 주는 만큼 받아야 채워질 텐데. 오는 것이라도 제대로 받았다면 모를까, 그녀는 자신을 향한 진짜 애정마저 그냥 흘려보내버렸다. --- pp.30-31 작은 새처럼 유쾌하고 맑은 이들은 자신에게 열정적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그 반짝거림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그의 사랑도 돌아오겠거니, 혹은 더 큰 사랑이 돌아오겠거니 굳게 믿었던 신뢰가 무너져내리면 덩달아 자신의 자아도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마는 것이다. 그 신념을 지켜줄 다음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 p.51 농부가 일년 내내 애써 가꾼 사과를 한순간에 떨어뜨린 태풍의 악행. 태풍은 악행을 저지른 게 아니라 그냥 존재했을 뿐이다. 악행이 있었다면 ‘태풍이 널 싫어해서 네 사과를 떨어뜨린 건 아닐까?’라고 말한 나 하나뿐일지도. 부디 다음번에는 좋은 날씨와 좋은 계절을 만나 사랑을 할 수 있기를. --- p.69 “선배가 아주 좋은 상황, 아주 좋은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전보다 나은 결과가 나오리라 확신할 수도 없고요. 지금 선배의 마음은 갇혀 있거든요.” 그녀는 고개를 젖혀 우아한 자태로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 아래 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이 드러났다. “하지만 벗어날 수 있어요. 느슨한 밧줄을 풀어내면 눈을 가린 안대도 벗을 수 있고요. 이 안에 묶인 채 갇힌 것이 선배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봐요. 누군가 선배를 가둬서 나오지 못한 건지, 그 핑계로 나오고 싶지 않았던 건지.” --- p.77 “나는 학생이 어떤 것을 선택하든 행복한 선택을 하면 좋겠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왜냐하면 우리는 무엇이 정말 행복한 선택인지 잘 모르거든요.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나도 매일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하지만 사실 잘 몰라요. 내가 행복하려고 한 선택인데 그게 맞는지 아닌지 선택하고도 늘 헷갈려요.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보다는 망할 가능성이 적지 않을까요?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 p.104 내가 진주에게 처음 느낀 감정은 그의 나른함과 여유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신경 쓰고 최대한 문제없이 살고자 조급했던 나와는 다른, 관심 없는 것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과 관심 있는 것에 대한 거침없는 호기심. 그것을 부러워하고 나서는 내 결핍과 결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갑작스럽게 열등감이 폭발하지는 않을까 주의했다.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 p.295 카드를 섞을 때 들리는 소리가 좋다. 그 소리는 나를 차분하게 식혀준다. 가끔은 멍하니 앉아 끝없이 카드를 섞는 데 몰두할 때도 있다. 그러다보면 카드를 펼쳐야 한다는 것도, 던지려던 질문이나 고민도 잊어버리기도 했다.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궁금해야 할지를 몰라 카드를 만지고 섞었다. 문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를, 나의 불안을, 이 소리가 조금이라도 가라앉혀주길 바라면서. --- pp.300-301 “나는 장래 희망이라는 게 없었거든요, 어떻게 살고 싶다는 꿈이.” 차가운 손을 엉덩이 아래 따뜻한 시트로 밀어 넣으며 내가 말을 꺼냈다. 지금 이 마음을 진주와 나누고 싶었다. 그게 꼭 진주여서라기보다는 난생처음 생긴, 이 무익하지만 따뜻한 감정을 자랑하고 싶었다. 꼭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장래는 있지만 희망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괜히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무언가를 진지하게 꿈꾸지는 않았어요. 아예 아무것도 꿈꾸지 않으면 실패하는 사람은 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 pp.338-339 이 어린 녀석이 무언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게 싫었다. 그가 싫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 그렇게 이해되는 내가 싫었다. 동등하고 싶었다.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꿈꿨다. 내 사랑의 무게와 상대방이 보이는 사랑의 무게가 같아 보이기를. 더 배려받거나 인내해주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그냥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를. --- pp.353-354 |
|
“다시 사랑을 시작하되, 갈구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 상처 위에 내려앉는 감정의 온기 우연히 시작된 진주와의 관계는 세련이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과거를 흔들어놓는다. 가난했던 성장기, 알코올중독인 어머니,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감당해야 했던 책임감. 솔직하고 담백한 진주 앞에서 세련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꺼내 보이고, 진주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세련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진주의 거침없는 태도는 세련을 상처 입히고, 그 와중에 감기로 쓰러진 자신을 간병하러 찾아온 옛 연인 ‘윤주’와의 재회는 마음을 뒤흔든다. 그러나 진주의 고백을 통해 세련은 서서히 마음을 열고, 윤주와의 마지막 통화를 계기로 길었던 연애의 끝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가족과도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기로 결심한 세련은, 마지막으로 옛집에 들러 생필품을 두고 나오며 지난했던 과거에 작별을 고한다. 크리스마스날, 진주는 세련을 유기견 보호소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만난 강아지 ‘봉구’와 시간을 보내며 세련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자발적인 애정과 보호 욕구를 느낀다. 이어 보호소 사람들을 위해 타로 상담을 해주며 자신의 재능이 타인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서로의 상처를 나누며 가까워진 두 사람은 마침내 연인으로 발전하고, 세련은 이번만큼은 갈구하지 않는 사랑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감정의 결을 따라 펼쳐지는 카드 한장 타로가 비추는 내면의 풍경 이 소설의 또다른 중심축은 각 장마다 등장하는 타로카드다. 타로는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상징적으로 비추는 장치로 기능한다. 세련이 해석하는 카드는 손님들의 사연과 교차하며 삶의 갈림길 앞에 선 인물들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여름휴가를 꿈꾸던 수험생은 속임수와 비겁한 행동을 의미하는 ‘소드 7’을 뽑는다. 카드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결과의 달콤함만을 꿈꾸는 사기꾼이 꼭 바깥에만 있는 건 아니”라며, 그녀가 “스스로를 속이려 들었”(12면)음을 짚어낸다. 그런가 하면 은퇴 후 새로운 일에 도전했지만 뜻밖의 난관에 부딪힌 노인은 권태와 정체를 상징하는 ‘컵 4’ 카드를 통해 “노력과 에너지를 쏟는 것만으로는 열심히 하는 게 아닐 수도 있”(45면)음을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연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 사랑의 확신이 서지 않아 불안한 연인,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고등학생의 이야기까지, 타로카드 앞에 앉은 이들의 질문은 제각각이지만 모든 카드는 저마다의 상처와 선택의 순간을 투영하며 결국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건넨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플로리스트로 활동해온 작가 문혜정은 사람의 감정뿐 아니라 자연의 흐름과 계절의 리듬을 가까이에서 마주해왔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 일 또한 미세한 흔들림에 조용히 귀 기울이고 다정하게 응시하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타로카드 읽는 카페』는 그러한 태도와 시선으로 복잡한 감정의 결을 포착하고 변화의 순간들을 정직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타로는 정해진 미래를 일러주는 예언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타로카드 읽는 카페』는 그 거울 앞에 우리를 앉힌다. 흩어진 마음들을 다정히 수습해주는 한장의 카드처럼, 이 소설은 불안과 회피, 후회와 같은 마음 깊숙이 가라앉은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 보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하고, 그 끝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만히 일깨운다. 이처럼 관계 안에서 천천히 마음을 열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마침내 스스로와 화해하는 서사는 마음을 마주하는 일이 결국 삶을 다시 살아내게 하는 일임을 증명해 보인다. 타인의 고민을 경청하는 데서 시작해 회복에의 여정으로 나아가는 『타로카드 읽는 카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오래도록 곁에 남을 온기를 전해줄 것이다. 작가의 말(부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결핍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것이든 이제는 흉터로만 남은 것이든, 누구에게나 모자라기 때문에 괴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결핍이 미치는 다양한 형태의 영향력과 관계성에 대해 써보고 싶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결핍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어떤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또 어떤 사람은 결핍을 숨기는 데 인생을 바칩니다. 결핍이 자신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왜 이렇지?’라고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더 엄격하게 말하면 결핍은 극복의 대상은 아닙니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나 누군가는 결핍을 극복한 듯한 삶을 살고, 누군가는 결핍에 잡아먹힌 삶을 삽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은 결핍으로 가득한 주인공을 내세워 그것을 어떤 식으로 적용해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지를 소설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세팅된 주인공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그녀 자체는 성실하고 예쁘고 주제 파악이 빠르며 감도 좋습니다. 하지만 존재의 본질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적·태생적 결핍 속에 넣어둔 뒤 다양한 내담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것을 깨닫고 벗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독자분들에게 그것이 잘 드러났다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문제가 뭔지 모를 때 가장 풀기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결핍으로 인한 문제도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는 순간이 해결의 시작일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이 소설이 그런 시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소설의 주된 소재로 사용된 타로카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가변성’입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보는 다른 점사들과는 다르게 타로카드는 뽑을 때마다, 뽑는 사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같은 질문을 던지고 오늘 뽑은 카드와 한달 후에 뽑은 카드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뽑은 카드가 한없이 나쁘더라도 내일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다음 날 뽑는 카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진리가 타로카드에 들어 있습니다. 나쁜 기운도, 좋은 기운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불운이 가장 바닥이라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아 있으니 너무 낙담할 필요가 없고, 현재의 행운이 가장 고점이라 생각한다면 앞으로의 위기를 대비하는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을 다지면 됩니다. 그러니 인생을 대하는 가장 적절한 자세는 평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주인공이 행복을 추구하되 평온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읽게 될 여러분도요. 2025년 여름 문혜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