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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수치심 없는 사회의 초상
1장. 수치심이란 무엇인가 시선이 없으면 수치심도 없다 수치심은 보편 감정이다 수치심은 강력한 사회적 통제 장치다 수치심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다 수치심과 죄책감 - 시선과 양심의 교차점 2장. 수치심이 없는 풍경들 뻔뻔함이 미덕이 된 사회 갑질의 끝, 죽음으로 내몰린 교사들 침묵의 고속도로 - 양평고속도로 변경 미수 사건 새만금 잼버리 - 국가의 무능이 드러난 순간 ‘50억 클럽’ - 법조 권력의 부패와 수치심 실종 3장. 수치심은 어떻게 붕괴되었나 권력과 수치심의 이혼 이명박 정권 - 통치의 효율 앞에 사라진 수치심 문재인 정권 - 선한 얼굴 뒤에 숨은 위선과 내로남불 윤석열 정권 - 수치심의 총체적 붕괴 수치심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4장. 수치심은 왜 무너졌는가 - 진영논리라는 구조적 병리 진영논리, 수치심을 마비시키다 진영논리는 본능인가 - 최소 조건 실험 진영논리의 허구 - 진보와 보수의 실상 진보와 보수, 잘못된 이분법 5장. 수치심을 사라지게 한 부수적 요인들 물질 우선주의와 성공 지상주의 왜 나만 갖고 그래? - 허위 일치 효과 나르시시스트의 급증과 수치심의 실종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정부, 나르시시스트 정권 6장.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든 법조계 법복 뒤에 숨은 권력 - 판사들의 몰염치 부끄러움을 잃은 권력 - 검찰 정의의 파수꾼은 어디에 - 변호사 사회의 이중성 법조인들은 왜 수치심을 잃었는가 AI 판사 시대는 가능한가 7장. 사회 도처의 몰염치 정치권의 몰염치 선관위는 가족회사다 - 공무원 사회의 채용 비리 언론과 지식인의 몰염치 주식시장의 몰염치 - 유상증자 일상 속의 몰염치 플랫폼 권력과 감정의 착취 - 디지털 공간의 몰염치 젠더 갈등과 피해자 되기 경쟁 - 수치심의 전복 신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몰염치 - 종교계의 타락 8장. 디지털 시대의 몰염치 유튜브 알고리즘과 조회수의 윤리 인플루언서의 도덕 불감증 사이버 폭력, 책임 없는 가해 디지털 공간은 수치심을 되살릴 수 있는가 9장. 다시 수치심을 생각한다 수치심은 인간다움의 최후의 보루 몰염치는 어떻게 우리를 무너뜨렸는가 부끄러움을 회복하는 작은 방법들 우리 모두가 ‘시선’이 되어야 한다 다시 수치심을 말하다 에필로그 | 잃어버린 부끄러움을 다시 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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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잊혀져 가는 그 감정, 어쩌면 이미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는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수치심은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건강한 눈, 타인의 정직한 시선, 그리고 우리 내면에 깊이 새겨진 도덕적 기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수치심이 사라졌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 하나의 상실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적 기준의 붕괴이며, 건강한 공동체의 해체를 의미한다.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이 소중한 감정 하나를 되찾는 노력이, 곧 무너져가는 우리 사회의 뼈대를 다시 굳건하게 세우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등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한다. 그 가운데에서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때로는 우리를 도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는 양면적인 감정이다. 이처럼 모호하고 복합적인 성격 때문에 수치심은 오랫동안 철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깊이 있는 탐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수치심은 단순히 다른 사람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비친 스스로의 부끄러운 모습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한 감정이다. 다시 말해, 타인의 시선이 없다면 수치심은 존재할 수없다. --- 「시선이 없으면 수치심도 없다」 중에서 부끄러움은 강요될 수 없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사회는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유지되지만, 그 바탕에는 ‘이래도 되는가?’라는 자기검열의 감정이 깔려 있어야 한다. 우리는 부끄러움이 사라진 결과가 어떤 사회를 만드는지 이미 충분히 보아왔다. 절차는 있지만 정의는 없고, 형식은 있지만 신뢰는 없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늘어나고, 사과하지 않는 언어가 일상이 된다. 결국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이대로 괜찮은가?” --- 「수치심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중에서 나르시시스트 권력은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강요하려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현실 자기보다 이상 자기를 선호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비판적 목소리는 가짜 뉴스로 매도하고, 부정적 데이터는 무시하거나 숨긴다.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스스로 약화시키고, 국민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통계 조작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위험한 권력 심리의 발로다. 이는 나르시시스트 정부가 현실과 상호작용하지 못하고 자기파괴적 경로로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정부, 나르시시스트 정권」 중에서 몰염치가 일상화된 사회는 결국 신뢰를 잃는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규칙은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는 것으로 여겨진다. 공동체 의식은 약화되고, 각자도생만 남는다. 사회는 겉으로는 유지되지만, 안으로부터 서서히 무너져간다. 일상의 몰염치는 또한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른들의 몰염치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규칙을 지키기보다는 편법을 찾는 법을 배우고, 양심을 따르기보다는 눈치와 요령을 우선시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도덕적 기반을 갉아먹는 심각한 위기다. --- 「일상 속의 몰염치」 중에서 몰염치는 단순한 비도덕적 행위가 아니다. 몰염치는 사회의 신뢰를 갉아먹고, 공동체의 기반을 서서히 허문다. 몰염치는 독처럼 스며든다. 처음에는 작은 부정으로 시작된다. 누군가 규칙을 어기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의 ‘신호’가 된다. “저 사람도 저렇게 하는데, 나만 손해 볼 필요 있나?” 이렇게 몰염치는 전염된다. 개인적 일탈이 구조적 붕괴로 이어진다. --- 「몰염치는 어떻게 우리를 무너뜨렸는가」 중에서 이제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거창한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 얼굴이 붉어지는 감각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적어도 괴물이 되지는 않는다. --- 「에필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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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왜 인간다움의 기준인가
“수치심은 회피할 감정이 아니라, 회복해야 할 감정이다.” 수치심은 본능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안에서 길러지고,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고도의 윤리적 감각이다. 사회심리학자 이철우 박사는 이 책에서 수치심을 단지 개인의 열등감이나 실패감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관계적 감정’이며,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각하게 하는 핵심 정서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뿌리는 다르다. 수치심이란 ‘남에게 보여졌을 때’ 드러나는 감정이다. 반면 죄책감은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의 내면에서 생기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외부의 시선에 대한 반응이라면, 죄책감은 내면의 윤리에 대한 반응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수치심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감정이고, 죄책감은 양심을 의식하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고, 그 감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곧 책임을 느끼는 것이며, 더 나아가 ‘존재의 반성’을 시작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점점 그 감정을 잃어가고 있다. 책 《수치심 잃은 사회》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수치심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정치인의 망언이 반복되어도 사과는 없고, 범죄나 비리 앞에서도 변명과 회피만이 남는다. 대중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사적 이익을 위해 공적 책임을 내던지는 공직자들, 그리고 일상의 무례함과 폭언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익숙한 풍경들. 이 모든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무감각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윤리의 실종’이라는 구조적 문제다. 수치심은 나를 작게 만드는 감정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감정이다. 그것이 사라진 사회는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에게 무관심한 사회다. 수치심은 도덕의 감정이며, 민주주의의 감정이다. 이철우 박사는 수치심이 사라질 때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파괴되어 가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내며,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감정이 바로 이 ‘수치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수치심은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감정적 연결 고리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정치인과 법조인, 고위 관료부터 방송인과 SNS 인플루언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책임 의식은 사라지고, “내가 왜?” “그게 뭐 어때서?”라는 말이 당당해지는 풍경이 일상화되었다. 이철우 박사는 이러한 현상을 ‘수치심의 감각 자체가 마비된 사회’라고 진단한다. 자기 정당화와 책임 회피, 무례함과 냉소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무뎌지고, 나의 행위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반성은 사라진다. 저자는 정치권의 언어와 언론의 보도 행태, 유튜브와 댓글 문화, 소소한 일상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수치심이 상실된 사회의 구체적인 양상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단순한 개인의 무감각으로 보지 않는다. 수치심 없는 사회는 책임 없는 사회다. 수치심은 나를 작게 만드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감정이다. 그것은 내 잘못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다시 연결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며, 더 나아진 내가 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철우 박사는 수치심이야말로 인간다움을 지키는 감정이며, 윤리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수치심을 단지 감정의 문제로 보지 않고, 정서적 공감과 사회적 책임, 도덕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수치심은 관계의 감정이며, 공동체를 건강하게 작동시키는 윤리적 신호다. 이 감정을 회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이 감정의 회복 가능성에 주목한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으며, 그것을 살려내기 위한 실천과 교육,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수치심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앞으로의 시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 교육이어야 하며, 이는 민주주의 감수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강조한다. 책《수치심 잃은 사회》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감정적 해체, 윤리적 무감각, 공동체적 상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회심리학자의 깊은 통찰이 담긴 문제의식이다. 무례함이 솔직함이 되고, 책임 회피가 전략이 된 시대에 저자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묻는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제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거창한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 얼굴이 붉어지는 감각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적어도 괴물이 되지는 않는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