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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의 시간
도종환 시선집 양장
도종환김근 공편
실천문학사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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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여는 글

고두미 마을에서(1985)
진눈깨비 / 고두미 마을에서 / 분꽃 / 황 선생님 / 흑인 혼혈아 여가수에게 / 수제비 / 산직말 / 조센 데이신타이(朝鮮挺身隊)
/ 쇠비름

접시꽃 당신(1986)
접시꽃 당신 /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 당신의 무덤가에 / 섬 / 오월 편지 / 인차리 7 / 달맞이꽃 / 우산 / 어떤 연인들
/ 다시 부르는 기전사가 / 목감기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
눈물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꽃다지 / 논둑에 서서 / 아가, 너희는 최루탄 없는 세상에서 살아라 / 너를 만나고 / 배추
/ 그대 잘 가라 /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 어떤 편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
정 선생님, 그리고 보고 싶은 여러 선생님께 / 유월 이십 구일 /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 잘 가라, 준아
/ 답장을 쓰며 / 스승의 기도 / 어릴 때 내 꿈은 / 김 선생의 분재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
겨울 골짝에서 / 폭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 우기 / 별에 쓰는 편지 / 담쟁이 / 오후반
/ 닭장차 안에서 / 우리는 우리끼리 울었어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1994)
오늘밤 비 내리고 / 바람이 그치면 나도 그칠까 / 꽃잎 인연 / 홍매화 / 세우 / 보리 팰 무렵 / 흔들리며 피는 꽃
/ 병 / 물결도 없이 파도도 없이 / 단식

부드러운 직선(1998)
종이배 사랑 /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사라지고 없는 그 / 부드러운 직선 / 늑대 / 배롱나무 / 섬 / 귀가 / 칸나꽃밭
민들레 뿌리

슬픔의 뿌리(2002)
여백 / 자목련 / 사랑의 침묵 / 아름다운 길 / 저녁 무렵 / 단풍 드는 날 / 그 밤 / 무심천 / 꽃재 / 방학하는 날

해인으로 가는 길(2006)
산경 / 해인으로 가는 길 / 산가 / 봄의 줄탁 / 연필 깎기 / 처음 가는 길 / 밀물 / 구두 수선집 / 가구 / 시래기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2011)
별 하나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지진 / 못난 꽃 / 빙하기 /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으며 / 젖 / 쏭바 / 노 모어 후쿠시마
/ 악보 / 은은함에 대하여

해설 유성호
시인의 말

저자 소개 2

도종환,都鍾煥

청주에서 태어났다.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 자연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인간을 자연처럼 이해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산문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고 맑은 통찰이 가득하다. 신동엽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박용철문학상, 신석정문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고요로 가야겠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
청주에서 태어났다.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 자연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인간을 자연처럼 이해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산문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고 맑은 통찰이 가득하다. 신동엽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박용철문학상, 신석정문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고요로 가야겠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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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에서 태어나 높너른 산들강, 바다의 품에서 자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마쳤다. 이 땅 사람들의 오랜 생각을 길어 올리기 위해 그 깊은 바탕을 헤짚는 물물땅 바람의 시인이다.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신화적인 상상력과 위력적인 리듬, 풍성하고 섬세한 시어로 평단과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유튜브 채널 ‘시켜서하는tv’의 호스트로 시와 대중음악에 대한 영상 콘텐츠를 중계한다. 시집으로 《뱀소년의 외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끝을 시작하기》, 《Beginning the End》, 《에게서 에게로》,
고창에서 태어나 높너른 산들강, 바다의 품에서 자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마쳤다. 이 땅 사람들의 오랜 생각을 길어 올리기 위해 그 깊은 바탕을 헤짚는 물물땅 바람의 시인이다.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신화적인 상상력과 위력적인 리듬, 풍성하고 섬세한 시어로 평단과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유튜브 채널 ‘시켜서하는tv’의 호스트로 시와 대중음악에 대한 영상 콘텐츠를 중계한다. 시집으로 《뱀소년의 외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끝을 시작하기》, 《Beginning the End》, 《에게서 에게로》, 문학선 《반짝과 반짝 사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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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 : 공광규
어린 풀과 벌레와 곤충을 밟지 않으려고 맨발로 산행하며 자연과 교감하며 시를 쓰고 있다.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홍성과 보령을 거쳐 청양에서 자랐다.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이후에 신라문학대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동국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만중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을 수상했다.
편자 : 김성규
1977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 현재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독산동 반지하동굴유적지'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힘' 동인으로 활동중이다. 2014년 제4회 김구용시문학상, 2014년 제32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편자 : 유성호
1964년 경기 여주에서 출생했다.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하여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한국 현대시의 형상과 논리』(1997),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1999), 『침묵의 파문』(2002), 『한국 시의 과잉과 결핍』(2005), 『현대시 교육론』(2006), 『문학 이야기』(2007), 『근대시의 모더니티와 종교적 상상력』(2008),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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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1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379g | 123*207*20mm
ISBN13
9788939207226

책 속으로

§. 편집자가 꼽은 시


밀물
모순투성이의 날들이 내게 오지 않았다면
내 삶은 심심하였으리
그물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지 않았다면
내 젊은 날은 개울 옆을 지날 때처럼
밋밋하였으리 무료하였으리
갯바닥 다 드러나도록 모조리 빼앗기고 나면
안간힘 다해 당기고 끌어와
다시 출렁이게 하는 날들이 없었다면
내 영혼은 늪처럼 서서히 부패해갔으리
고마운 모순의 날들이여
싸움과 번뇌의 시간이여


답장을 쓰며
현숙아, 오랫동안 편지하지 못했구나
답답하고 괴로울 때면 편지를 꺼내
눈물을 지우고 또 지우며 읽는다는 너의 말은
이 밤 나의 가슴을 아리게 때려온다.
지치고 쓰러질 것 같을 때면
나도 너희들을 생각한단다.
한 손으로 쓰는 기우뚱거리는 글씨가
미안하고 민망스럽다고 했지만
성한 두 손을 다 가지고도
바르고 곧은 글을 쓰지 못하는
선생님은 더없이 부끄러울 뿐이구나
생활과 운명에 맞서 싸우다 쓰러진 사람들 위해
그들의 잘려나가는 희망과 용기와 미래를 위해
선생님으로 꼭 있어 달라는 네 말은
일과를 끝내고 벽오동잎 깔린
언덕길 밟아 내려올 때마다
뻘 흙덩이처럼 내 발을 잡는구나
친구들은 추석을 쇠고 다시 공장으로 떠났는데
갇힌 새처럼 조은리에 남아 그을은 흙벽 앞에 남아
수수목을 몸서리치게 흔들며 고갤 넘는 열차를
몇 번이고 울타리 너머 넘어다보았을
너를 생각한다.
소매 긴 옷 속에 묻어 둔 잘린 네 손목을 생각한다.
긴 머리에 가리운 네 일그러진 반쪽 얼굴을 생각한다.
절망이 뭐냐고 바보같이 죽음이 다 뭐냐고
나는 격하게 너를 나무랐지만
실은 아무도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
열아홉 네 절망의 아픈 꽃그늘을
선생님이라고 어찌 다 안다 하겠니
오늘도 네 동생 정태를 가르치고 교실문을 나서며
어둠 속에서도 눈을 떠라 가난과 고통이
너희의 끈질긴 핏줄을 시험하고 있다 일어서거라.
남겨 둔 부피만 큰 목소리를 생각했다.
나는 진정 너희들의 온전한 사랑과 꿈으로 살아 있는지
너희들의 따뜻한 화로와 구들장이 되어 있는지
왠지 스산한 바람으로 하늘 끝을 바장일 때가 많구나.
그러나, 현숙아 한 손으로 빤 희고 고운 빨래를 봄볕에 널며
젖은 손으로 가리고 바라보아야 하는 눈부신 햇살의 날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꼭 오고야 만다.
나는 믿고 있다. 남은 네 한 손의 뜻이
꼭 필요하게 쓰이는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들이 아직도 믿음과 소망을 꺾어 버리지 않으므로
우리들이 고통과 아픔 속에 비켜서 있지 않으므로
우리의 생명을 기쁨과 고마움으로 누리는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못난 꽃 - 박영근에게
모과꽃 진 뒤 밤새 비가 내려
꽃은 희미한 분홍으로만 남아 있다
사랑하는 이를 돌려보내고 난 뒤 감당이 안되는
막막함을 안은 채 너는 홀연히 나를 찾아왔었다
민물생선을 끓여 앞에 놓고
노동으로도 살 수 없고 시로도 살 수 없는 세상의
신산함을 짚어가는 네 이야기 한쪽의
그늘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늘 현역으로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툭툭 뱉으며
너는 순간순간 늙어가고 있었다
허름한 식당 밖으로는 삼월인데도 함박눈이 쏟아져
몇군데 술자리를 더 돌다가
너는 기어코 꾸역꾸역 울음을 쏟아놓았다
그 밤 오래 우는 네 어깨를 말없이 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점 혈육도 사랑도 이제 더는 지상에 남기지 않고
너 혼자 서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빗속에서 들었다
살아서 네게 술 한잔 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살아서 네 적빈의 주머니에 몰래 여비 봉투 하나
찔러넣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몸에 남아 있던 가난과 연민도 비우고
똥까지도 다 비우고
빗속에 혼자 돌아가고 있는
네 필생의 꽃잎을 생각했다
문학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목숨과 맞바꾸는 못난 꽃
너 떠나고 참으로 못난 꽃 하나 지상에 남으리라
못난 꽃,


단식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가
단식농성장에서 병원으로 실려오는 차 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나이 사십에

아름다운 세상 아, 형벌 같은 아름다운 세상


저녁 무렵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둥켜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
잎이란 잎 다 진 뒤에도
떠나야 할 길이 있고

이정표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거기서부터 또 시작해야 할 사랑이 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누군가의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도종환 등단 30주년 기념 시선집

도종환 시인의 등단 30주년 기념 시선집 『밀물의 시간』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 시를 웬만큼 읽어온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이름인 도종환. 한국인의 서정과 공동체의 운명을 아우르는 시인 도종환이 지난 30년 동안 펴낸 10권의 시집에서 후배 문인인 공광규, 김근, 김성규, 유성호가 99편의 시를 뽑고 엮었다.

‘사랑’과 ‘연민’ 그리고 ‘반성’이라는 이름의 시인
우리들 마음의 영원한 거처, 시인 도종환

1980년대 이후 한국 시를 웬만큼 읽어온 이들에게 도종환은, 참으로 친숙한 이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친숙한 이름 아래 쌓인 고통과 번뇌의 시간들은 고스란히 시인 자신의 몫이었다.
남겨진 두 아이의 머리맡에 앉아 가슴 한 켠 묻어둔 아내에게 말을 거는 사내이자, 감옥 같은 교실에 갇힌 고개 숙인 제자들과 동료 교사를 일으키며 참교육을 외치다 해직당한 교사였으며, 엄혹한 세월, 억압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가난한 문인들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일꾼이자, 의심과 손가락질로 자신이 쓴 시마저 수난당한 여전히 그 이름 껄끄러운 정치인이라는 이름 석 자를 부채처럼 지고 가는 이.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에서 확인한 것이지만, 도종환을 여느 시인과 뚜렷이 구별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이러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반성적 의지가 아니었던가? 원망과 분노를 가득 품은 모순투성이의 나날들을 수십만 번 견디고 깎아내며 만들어낸 반짝이는 ‘시’는 도종환에게 ‘사랑’과 ‘연민’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의 총체였다.
이제 도종환의 시편은 한 시대의 저항적 문맥을 넘어 가장 보편적인 생의 이법을 잔잔하고도 투명하게 들려주는 애송 시편으로 승화했고, 각급 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세대를 뛰어넘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시인’ 도종환이 우리와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30년을 맞이했다. 이에 후배 문인 공광규, 김근, 김성규, 유성호가 모여 그의 첫 시집인 『고두미 마을에서』(1985)부터 최근작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2011)까지 총 10권의 시집에서 99편의 시를 뽑아 시선집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도종환이 마주해온 밀물의 시간 속에서 그의 시가 별빛의 반짝임처럼 끝내 명멸하지 않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가 될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 쓰기 30년, ‘고두미 마을’에서 ‘별 하나’에 이르는
단호하고도 정결한 ‘길’

도종환의 초기 시세계를 상징하는 공간은, 1985년 첫 시집 제목이기도 한 ‘고두미 마을에서’다. 즉, 이 시집에서는 단재 신채호 선생을 통해 외세의 억압에 찢긴 상처와 그 치유를 상징하는 ‘고두미 마을’을 시작으로, “전사통보 받아 든 언청이 정례 누나”(「분꽃」), 그리고 “흑인 혼혈아 여가수”(「흑인 혼혈아 여가수에게」)나 “조센 데이신타이”(「조센 데이신타이[朝鮮挺身隊]」) 같은 “갈라진 땅 약소민족”(「첫돌」)의 아들딸들이 줄곧 시적 캐릭터로 등장한다. 도종환 초기 시편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혹은 역사 속에서 무너져갔던 이들을 향하고 있음을 뚜렷이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그러다 도종환의 두 번째 시집이자 198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접시꽃 당신』(1986)에서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 와 머물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사랑하는 사람”(「오월 편지」)을 애타게 불러본다.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접시꽃 당신」) 있을 것이라는 항구적 동반자로서의 다짐이, 도종환을 한국인에게 평생 ‘사랑’의 시인이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서정 시인으로 기억하게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도종환은 자신이 속한 학교 현장의 여러 모순과 싸우는 교육 운동에 헌신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별과 투신의 양면성이 담긴 시집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이다.

나는 또 너희들 곁을 떠나는구나
기약할 수 없는 약속만을 남기고
강물이 가다가 만나고 헤어지는 산처럼
무더기 무더기 멈추어 선 너희들을 두고
나는 또 너희들 곁을 떠나는구나
(중략)
이 짧은 세상에 영원히 같이 사는 사람은 없지만
너희들이 자라고 내가 늙어서라도 고맙게 자란 너희들의 손을 기쁨으로 잡으며
이 땅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하나 되어 꼭 다시 만나자.
_「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부분(『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198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운동으로 해직당한 그를 제자들이 붙드는 순간, 시인은 “이 짧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 “이 땅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남긴다. 이와 같이 도종환의 초기 시편들은 1980년대 민중적 서정시의 자양을 충실하게 섭렵하면서도, 그 특유의 진정성 어린 ‘사랑’의 시학을 완미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제 도종환은, ‘역사’와 ‘사랑’과 ‘교육’이라는 초기시의 트라이앵글을 묶어서, 좀 더 근원적이고 심미적인 이미지를 통한 삶의 이법과 원리를 노래해간다.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에서는 ‘담쟁이’나 ‘별’의 상징을 통해 현실의 억압을 넘어서는 근원적인 꿈의 형상을,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같은 절창이 실려 있는 여섯 번째 시집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1994)에서는 “아름다운 세상 아, 형벌 같은 아름다운 세상”(「단식」)에 대한 굳은 신뢰를 아름답게 펼쳐낸다. 그러다가 도종환은, 지금도 그의 성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상징적이고 역설적인 화두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중략)
사철 푸른 홍송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_「부드러운 직선」 부분(『부드러운 직선』, 1998)

한없는 부드러움과 “휘어지지 않는 정신”을 내포한 ‘부드러운 직선’의 정신이, 도종환으로 하여금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민들레 뿌리」) 나서게 하고,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끝내 걷게 했던 원질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도종환 중기 시편은, 벽을 함께 넘어서는 담쟁이,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 부드러운 직선 등을 사유함으로써, 초기 시편이 보여주었던 구체적 현실과 역사를 넘어, 근원적이고 심미적인 형상을 풍요롭게 일구어 낸다.
역사와 현실에서 발원하여, 태도와 신념의 세계로 이월했던 도종환 시편은 후기에 이르러 삶에 대한 가장 근본주의적인 성찰로 접어들게 된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_「산경」 전문(『해인으로 가는 길』, 2006)

그의 시편들에서 자연 사물들은 시인의 시적 해석을 기다리는 ‘상징의 숲’을 이루며 이를 통해 생동한다. 그러나 ‘상징의 숲’은 유희에 있다기보다, 도종환이 걷고 있는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그것은 비록 “순탄하기만 한 길”(「처음 가는 길」)은 아니겠지만, “서리에 젖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시래기」)을 가능케 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길은 결국, 최근작『세시에서 다섯시 사이』(2011)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별 하나’의 심상에 가 닿게 된다.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중략)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
_「별 하나」 부분(『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2011)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처럼 자신의 시가 상처받은 이들의 영원한 벗이 되어야 함을 오롯이 드러내는 이 시편은 지금껏 도종환의 시학이 닦은 길이 무엇이었는지, 이후의 시학 역시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끝으로 우리는, ‘고두미 마을’에서 ‘별 하나’에 이르는 단호하고도 정결한 ‘길’을 걸어온 도종환이, 그의 존재론적 원천이자 궁극인 ‘시인’으로서의 삶을 더없이 아름답게 일구어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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