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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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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즉흥극을 없애 버린 것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몰라요” 하고 마담 드 레티가 말했다. “나는 수백 번 후회했죠, 무례한 언행으로 구성된 옛날 광대극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훌륭한 작품도 공연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에 나 자신도 역시 책임이 있다고 말예요. 만약 주중에 즉흥극을 공연하기만 했었어도 배우는 연습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관객은 이런 종류의 연극을 계속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여러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즉흥극은 배우들의 학교이자 시금석이기 때문이었죠. 자신의 역을 완벽하게 외워서 그 역을 연기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능과 활발한 상상력, 능숙함, 연극에 대한 이해력, 항상 정신을 차리고 연극에 임하는 자세가 발걸음 내디딜 때마다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죠. 배우는 연극이 제공하는 정보들을 모두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야 고기가 물속에 있듯 제대로 자기 나라의 특성을 보여 주는 배우가 되었죠. 그리고 작가가 이 도구들을 사용할 재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면 관객들에게도 큰 인상을 주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문학 이론가들에게 마음이 사로잡혔고, 그리고 나 자신도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에 익살극과 골계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시멘, 로도귄, 자이르, 메로페와 같은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했으며, 나 자신과 우리 극단이 그때까지 관객들을 즐겁게 해 준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고상하다고 여겨졌죠. 그래서 나는 익살 광대 한스부르스트를 무대에서 몰아냈고, 이탈리아풍의 광대 하를레킨도 포기했습니다. 만약 이런 인물들로 우리풍의 연극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허용되는 상황이었더라면, 이들은 나를, 어려운 시기에 장관과 장군을 해임시키고 보잘것없고 천박한 적수들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리는 여왕으로 멋지게 풍자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독일의 어느 작가가 우리가 희생시킨 것을 지금까지 보상해 놓았습니까? 우리에게 몰리에르 작품의 번역판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예요.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킬 줄 몰랐을지도 모르죠. 우리의 가장 훌륭한 독창적인 작품들이 무대에 상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곤경을 겪고 있으니 말예요.” --- pp.254-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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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극적 사명(Wilhelm Meisters theatralische Sendung)》(1777∼1785)은 독일 문학사에서 120년이 넘도록 존재하지 않았던 작품이다. 괴테가 1797년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를 출판하고 《연극적 사명》 원고를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테와 가까웠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수업 시대》를 1774년에 출판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이은 괴테의 두 번째 장편 소설로 여겨야만 했다. 비록 1910년에 《연극적 사명》의 사본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수업 시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6권에서 8권에 걸쳐 연극에 회의를 느낀 빌헬름이 귀족 사회와 관계를 맺고 활동하게 되는 소설의 후반부 내용과 그 이념에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과 연구가 집중되어 왔다. 그래서 《연극적 사명》을 축소해서 《수업 시대》의 1∼5권으로 넣었던 부분은 빌헬름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가졌던 연극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는 대목으로 간단히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극적 사명》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괴테의 작품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괴테(1749∼1832)가 1786년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까지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 연극과 드라마였던 점을 감안하면, 1777년부터 이탈리아로 ‘도주’하기 전까지 쓴 《연극적 사명》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완성된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괴테 자신이 이 소설을 쓰면서도 놓지 않았던 《에그몬트》나 《이피게니에》, 《타소》 같은 드라마 작업과 관련해 다른 나라보다 뒤처졌다고 평가되었던 독일 연극을 부흥하고, 문학과 예술에 대한 헤르더의 역사적 고찰에 영향을 받아 ‘독일 민족의 특성’을 보여 줄 수 있는 ‘민족 극장(Natinaltheater)’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신의 이상을 소설의 주인공인 빌헬름이 쫓아가고 있다는 관점으로 읽어 가는 것이다. 괴테는 이 소설을 철저하게 “연극 소설(Theaterroman)”로 쓰려고 했다. 《연극적 사명》에는 괴테가 1770년대와 1780년대 중반까지 독일 연극의 발전에 대해 생각해 왔던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연극적 사명》은 그 자체로 괴테가 젊은 시절에 쓴 ‘연극 소설(예술가 소설)’로 읽을 충분한 가치가 충분하다. 즉, 《수업 시대》에서 펠릭스라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아들의 교육을 걱정하며 귀족들이 세운 이념을 따라가는 ‘교양 소설’의 주인공 빌헬름 마이스터가 아닌, 젊고 추진력 있으며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면서 자신을 계발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젊은 빌헬름’을 만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빌헬름의 모습은 《수업 시대》에 등장하는 ‘수동적인’ 빌헬름보다 독자들에게 훨씬 흥미로운 ‘능동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헤르더의 말대로, 독자들은 빌헬름이 어린 시절부터 인형극을 즐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연극을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성장해 가는 것을 계속 지켜보기 때문이다. 《수업 시대》에서는 이런 개인에 대한 의미, 특히 사회 질서에 대한 빌헬름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태도들을 많이 축소시키고 있지만, 《연극적 사명》에 등장하는 빌헬름은 삶을 마음껏 즐기려 한다. 비록 이런 빌헬름도 세상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려는 경향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세상의 흐름이 부딪힐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빌헬름의 성찰이다. 이런 성찰을 통해 빌헬름은 마지막에 가서 자신이 처음부터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가장 원하던 것을 성취하는 ‘행운아’라고 스스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극적 사명》의 빌헬름은 자신이 겪는 모든 경험을 삶으로 흡수해서 사회에서 자기가 차지할 자리, 다시 말해 자신의 용도를 찾아보려는 젊은이다. 빌헬름은 자신이 속한 신분이 정해 준 상인으로서의 길을 거부하고, 시민 계급 출신이라는 것을 뛰어넘으려 한다. 그래서 그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사회에 영향을 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연극을 통해서든 다른 방법을 통해서든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야르노(Jarno)를 통해 제동이 걸리게 된다. 수준 낮은 극단에서는 이런 의도가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의도를 가진 빌헬름의 성장은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어느 젊은이의 큰 꿈과 기대를 가진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종종 진부한 현실(금전 문제와 가족 문제 및 신분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자신의 꿈과 현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갈등의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이 소설은 돈키호테를 모범으로 한 소설로 평가되며, 《수업 시대》처럼 “교양 소설(Bildungsroman)”로 읽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적 사명》은 주인공이 자신의 꿈과 현실을 묶는 데 성공하리라는 신뢰감을 끝까지 발산하고 있지, 주인공의 포기나 체념을 풍기지는 않는다. 이 ‘연극 소설’은 《수업 시대》과 연관하지 않고 읽더라도, 풍부한 에피소드와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솔직하고 자세한 서술로 인해 30대 전후의 ‘젊은’ 괴테가 쓴 두 번째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18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출간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극적 사명》의 개정판입니다. 옮긴이는 책 전체를 원서와 대조해 문장을 다듬고 더 적절하고 정확한 번역으로 수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