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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의 글
편집장 서문 프롤로그 1부 롬바르디아의 빛 1장 어린 시절의 꿈 2장 잘못된 시작 3장 목가의 시절 2부 한낮의 꿈 4장 로마 공략 5장 떠난 이들의 고통 6장 순명의 마음으로 7장 두 번째 미국행 8장 중앙아메리카 9장 뉴올리언스 10장 첫 병원 11장 다시 이탈리아로 3부 신의 순례자 12장 안데스 산맥을 넘어 13장 남미에서 유럽으로 14장 성인의 영혼 15장 넓어지는 지평 16장 서부 개척 17장 미국 시민이 되다 18장 은퇴의 소망 19장 시카고에서의 죽음 에필로그 |
KO, JEON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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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첸차의 스칼라브리니 주교가 프란체스카에게 그보다 뉴욕의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먼저 돕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뉴욕은 저에게는 너무 좁은 곳이에요.”
주교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떤가요, 원장 수녀님? 그 정도면 넓지 않은가요?” 프란체스카는 미소로 답했다. “아뇨, 저에게는 전 세계도 좁아요.” 프란체스카가 레오 13세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을 때 운명이 결정되었다. 흰 예복을 입고 흰 모피로 가장자리를 두른 진홍색 망토를 걸친 노교황(老敎皇)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프란체스카가 거칠면서도 섬세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세요, 수녀님.” --- p.25 하지만 프란체스카가 자기 계획을 고집했다면 그녀가 나중에 세우는 수도회는 대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란체스카는 섭리의 집의 수녀가 되기로 한 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르는 가운데 자신만의 진정한 선교 수녀회를 만든 셈이다. 다른 방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섭리의 집은 안토니아 톤디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아주 부적합한 이름이었지만, 진실로 섭리가 지혜와 힘과 사랑을 보여준 집이었다. --- p.62 준비 마지막 단계에서 파로키 추기경이 노멘타나 거리로 그들을 직접 찾아왔다. 50만 리라의 조건을 내걸었던 이 고위 성직자는 이제 이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들이 맞이하는 응접실에 성모상이 있었다. 추기경이 성모의 머리 대신 발판에 놓여 있는 왕관을 보고 물었다. “저 왕관은 언제 씌워주실 겁니까?” 프란체스카는 이번에는 자신이 농담할 차례라고 생각하며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성모님은 당신께서 마음을 돌려세우신 분이 직접 왕관을 씌워달라고 하시네요.” --- p.111 프란체스카는 새로운 기관이 공식 설립될 때는 언제나 직접 참여하고 싶어했지만, 자신의 도움 없이도 기관이 잘 운영되면 망설임 없이 떠났다. 그녀는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들이 스스로 걸어가기를 바랐다. 작별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이제 앞으로 갈 수 있어요. 모두 각자 맡은 일을 향해서.” 그들은 나중에 이 궁핍한 시절을 돌아볼 때 일종의 향수를 느꼈다. 이 시간은 황금 시절, 영원한 사랑의 추억이 가득한 목가적 시절이었다. --- pp.178-179 만일 성인이 화를 낸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그를 성인이라고 지칭했을 때다. 그는 신과 자신의 긴밀한 관계를 알 수도 있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거기 만족하지 않는다. 이 생에서는 이룰 수 없는 더 큰 완전함이 언제나 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성인은 한순간이라도 자신이 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는 누구보다 프란체스카 카브리니에게 꼭 들어맞는 사실이었다. --- p.243 프란체스카 카브리니는 고독과 묵상을 갈망하는 사람이었지만 맹렬한 활동 역시 그녀의 기질에 맞았으리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다만 그런 추론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마더 카브리니에게 잠재되어 있던 커다란 에너지와 실행력은 기회만 있으면 발현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두를 신이 하사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건 프란체스카는 오직 소명에 순종해서 선교수녀회의 장상 자리를 받아들였고, 그 직무를 맡아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그녀를 수줍고 예의 바른 시골 교사로만 알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은총은 타고난 재능을 키우되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키운다는 말이 이 모든 일을 가장 적절히 설명한다. --- p.322 프란체스카 카브리니는 생전에도 당대의 모든 교황에게 성인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레오 13세는 실제로 그녀를 성인이라 불렀고, 베네딕토 15세 - 1889년에 프란체스카가 미국에 가져간 교황 훈령을 작성한 델레 키에사 몬시뇰 - 는 그녀에게 성령이 충만하다고 말했다. 비오 10세는 그녀를 복음의 진정한 사도라고 불렀다. --- p.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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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들을 품에 안은 ‘이민자의 수호성인’
1950년 바티칸은 마더 카브리니를 이민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식 발표했다. 그녀는 자립하기 힘든 가난과 차별 속에 놓인 이민자, 특히 여성과 어린이를 돌보기 위해 고아원과 학교, 병원을 세웠다. 그녀는 단순히 하루 치 양식을 베푸는 식으로는 이민자들의 삶을 바꿀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더 카브리니는 이민자들이 기본적인 생존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뉴욕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 학교와 성인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언어와 직업 교육을 제공했다. 고아원을 세워 버려진 아이들을 보호했으며, 콜럼버스 병원과 같은 의료 기관을 건립하여 이민자들이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이미 ‘여생이 2년’ 정도란 진단을 받을 만큼 병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누구보다 강인한 추진력으로 약자들의 공동체를 확장해 나갔다. 낯선 땅에 정착한 이탈리아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으며, 정부 기관도 외면했던 그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돌보았다. ‘The World is Too Small’이라는 책의 원제처럼, 그녀의 활동은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카브리니는 어린 시절 운하에 빠진 탓에 물을 무서워했음에도 목표와 사명을 위해 대서양을 20번이 넘도록 건넜다. 그녀가 방문한 많은 지역에 필요한 시설이 보이면, 그녀는 다른 시급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설의 설립을 도왔다. 가끔은 종교적, 개인적 불화로 인해 머물던 지역에서 쫓겨나거나 계획이 불발되는 일들도 일어났다. 보통 사람에겐 결의가 꺾일 만한 난관도 마더 카브리니에게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할 또 다른 기회일 뿐이었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굳건한 믿음과 확신으로 전진하는 이에게는 나아갈 길만이 보였다. 67년의 삶, 67개의 시설 미국이 수많은 이민자를 맞이하던 19세기 말, 마더 카브리니는 직접 부르고뉴호를 타고 뉴욕에 도착해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현실 속으로 들어갔다. 이 전기는 단순히 가톨릭 성인의 생애에 관해 다루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차별을 마주하면서도 끝내 길을 열어간 한 여성의 모험담이자, 한 세기의 사회 운동사다. 마더 카브리니의 업적은 영적 헌신뿐만 아니라, 예수성심선교수녀회를 설립하고 이를 대륙을 넘나드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확장한 운영가로서의 탁월한 역량 덕분이었다. 카브리니는 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평생 67개의 기관을 설립했는데, 이는 당대의 그 어떤 공공 또는 민간 지도자도 이루지 못한 경이로운 규모였다. 카브리니의 성취는 면밀한 비전과 협상 능력에 기인했다. 그녀는 이민자들에게 절실한 것이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임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녀는 이탈리아인 이민 공동체가 밀집된 뉴욕, 시카고, 뉴올리언스 등의 지역과 중남미에 거점을 마련하여 글로벌 선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자금 조달에 있어서도, 그녀는 냉담한 정치인부터 영향력 있는 자선가들까지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하여 자원을 확보하는 협상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굳건한 믿음과 더불어 철저한 계획, 자원 관리,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행정적 난관들을 극복해낸 ‘여성 리더’로서의 마더 카브리니의 면모를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21세기, 마더 카브리니는 여전히 우리의 앞을 비춘다 마더 카브리니의 삶은 단순히 특정 종교의 성인이 아니라 이민자들이 직면한 현실에 맞선 연대와 돌봄의 상징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이민과 난민 문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과제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관련 법안이 폐기되고 제정된다. 이에 관한 입장은 다양하겠지만, 모두를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태도를 그녀에게서 배울 수 있다. 마더 카브리니와 함께할 때 이민자들은 단순한 구호 대상이 아니라 한 사회에 일조하는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 그녀의 삶 전체가 약자의 가능성과 연대의 힘을 증언한다. 마더 카브리니의 일대기는 우리 현재의 문제를 다시 고찰하게끔 이끄는 질문이자 대답과도 같다. “어떻게 한 사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거창한 물음 앞에서, 그녀는 그저 자신의 소명과 꿈, 또한 약자를 위해 헌신한다는 일념으로 당장 손 닿는 주위부터 바꿔나갔다.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수녀원 건물이 마련되지 않아 곧바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카브리니는 의기소침해지기는커녕 뉴욕 대주교 앞에 ‘여기를 떠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결국 마더 카브리니는 그녀의 용기와 그녀에게 감화된 이들의 힘을 합쳐 더 넓은 사회의 기반을 다졌다. 우리는 그녀의 여정으로부터 이탈리아와 미국의 이민 역사가 만들어 낸 거대한 흐름을 느끼는 동시에, 그 속에서 이름 없이 살아간 개개인의 얼굴도 마주하게 된다. 먼 나라의 오래된 성인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의 낯선 이웃, 화합하지 않는 사회와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 앞서 탐구했던 이의 발걸음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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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시대에도 마더 카브리니 성인의 이러한 열정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대서양을 건너지 않아도, 먼 유럽을 날아가지 않아도, 우리의 가까운 이웃 속에는 다른 언어와 문화, 다른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성인의 발걸음을 따라나설 차례입니다. 마더 카브리니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들을 바라보던 연민의 눈길로, 하느님의 마음을 담은 자비의 시선으로 우리 주변을 바라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그녀처럼 기도합니다. “저에게도 우주만큼 큰 심장을 주소서. 당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제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도록.” - 서스텔라 수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선교수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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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기를 읽으면 미국 최초의 성인이자 이민자들의 수호성인인 마더 카브리니를 더 깊이 알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마더 카브리니는 이 나라 가톨릭 교육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 살바토레 J. 코르딜레오네 (샌프란시스코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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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흥미로운 책은 굳건한 정신과 깊은 헌신으로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 뛰어난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 스콧 한 (『어린양의 만찬』 작가, 세인트폴 성서신학 센터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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