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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의 서곡
혁명 시작되다 조국 근대화의 기수,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독재 자유주의자 마데로와 '산 루이스 포토시 계획' 후아레스 시의 함락 독재자 마침내 항복하다 마데로식 민주주의 농민군 사파타와 '아얄라 계획' 이상주의자 마데로, 포위당하다 비극의 열흘 2. 혁명의 전개 주지사 카란사와 '과달루페 계획' 판초 비야 봉기하다 현명한 장군, 오브레곤 사파타의 남부전선 토레온 대회전 우에르타 정부의 종말 아과스칼리엔테스 군사회의 바야와 사파타의 연합전선 셀라야 전투 케레타로 제헌의회 사파타, 암살당하다 2차 혁명의 비용 3. 혁명의 제도화 오브레곤의 통치 풍운아 비야, 마침내 암살당하다 기독교도 반란 최고지도자 동지 카예스 혁명아 카르데나스, 멕시코 대통령에 당선되다 카르데나스식 혁명 혁명의 절정, 석유 국유화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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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오브레곤에 대한 감정도 극히 악화되고 있었다. 특히, 오브레곤이 자신의 장군들과 사적 대화를 진행하고 힐이 마이토레나의 부대를 여전히 공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자 당장에 오브레곤을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의 참모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우르비나, 피에로, 로드리게스, 반다, 브라카몬테스 등은 처형을 주장하는 매파였고, 앙헬레스, 아기레 베나비데스 형제, 로블레스, 디아스 롬바르도, 차오, 마데로 등은 적극 반대하는 비둘기파였다. 비야 자신의 개인적 의견으로 말하자면 매파였지만, 비둘기파는 전부 자신이 사실상 존경하는 부하들이었다. 비야가 매파와 비둘기파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동안 오브레곤의 생명도 함께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간신히 비야를 설득한 아기레 베나비데스와 로블레스가 오브레곤을 호위하고 멕시코 시행 기차를 탔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엿다. 거의 매역마다 비야의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에 기차는 굼벵이 걸음을 면치 못했다. 토레온 북쪽 세바요스 역에 이르렀을 때 비야가 오브레곤을 치와와로 귀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려보냈다. 이번에는 카란사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사카테카스에 주둔해 있는 나테라 군에게 아과스칼리엔테스 이북의 전신망을 차단하고 철도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는 명백히 비야에 적대적인 행동이었고 비야의 손에 들어 있는 오브레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카란사는 비야로 하여금 오브레곤을 해치게 하고 그 결과를 즐길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야가 오브레곤을 해치면 오브레곤의 2만 5000 병력은 결코 비야 군과 화합할 수 없는 군대가 될 판이었다. 그 병력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는 것은 카란사로 보아 엄청난 이익이었다. 다른 이익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정적의 손으로 다른 정적 하나를 제거하는 이익이었다. ---pp.302~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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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마침내 항복하다
5월21일 저녁 10시 마침내 평화협정이 조인되었다. 조약의 내용은 간단했다. 디아스와 코랄은 5월 이내에 사임한다. 프란시스코 레온 데 바라가 임시대통령을 맡고 대통령 선거를 주재한다. 혁명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발생한 손해는 정부가 보상한다. 대사면이 선포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자세한 사항, 예컨대 각료의 임명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으나 실제로는 마데로의 견해를 대폭 반영한다는 구두 양해가 성립되었다. 이 조약은 실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혁명의 성공을 구체화하는 평화협정이라면 이에 상응하는 정치변동의 대강이 나타나야 할 문서였으나 실제로는 디아스를 위시한 몇몇 각료의 교체만으로 혁명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선언하는 식이 되었다. ---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