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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름다움이여
2. 창작의 원리 3. 사군자 그림 입문 4. 매화 그림 5. 난초 그림 6. 국화 그림 7. 대나무 그림 8. 사군자의 운명 9. 보고 읽을 만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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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는 그린 이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을 해 두고 싶다. 먼저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헤아려야 한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어떠했는지, 주된 사상과 정신이 무엇이었는지를 헤아리면서 작가는 그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또 작가가 꿈꾸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이런것을 헤아림으로써 작가가 사군자 그림 속에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에도 여러 가지 길이 있으므로 그 또한 헤아릴 일이다. 그러나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여러 글들을 뒤져야 한다. 전문 지식을 쌓아갈 목적이 아니라면 시대를 개괄한 역사책 몇 가지를 머리맡에 둘 일이다. 다음, 얼핏 비슷한 것처럼 보여도 어디가 다른지를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군자 그림은 작가와 시대가 달라도 분간을 못할 만큼 거의 비슷비슷하다. 산수나 인물 그림과 달리 비슷함이 유난스러워 다른 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구도라든지 붓놀림 따위로 그 차이를 도드라지게 만들기가 쉽지 않은 데다 소재가 네 가지뿐이고 도구마저 붓, 먹 또는 약간의 안료뿐이어서 차이를 내기가 힘겨운 탓이다.
그런데도 그림 보기를 되풀이하다 보면 보는 눈이 생겨 구도와 붓놀림 따위 형식이나 양식이 조금씩 다른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할수록 빗대보기를 즐겨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보기를 되풀이하는 것은 즐거움을 되풀이해 누리는 일과도 같다. 다만 붓과 먹을 어떻게 써서 그런 형상이 드러났는지를 헤아릴 일이다. 붓의 크고 작음, 빠르고 느림, 먹의 짙고 옅음, 공간의 빽빽함과 시원함, 짜임새의 안정과 불안 따위를 꾸준히 새기며 볼 일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야말로 정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쓸쓸함인지 화풀이인지를 분간할 수 있을 것이며, 홀로 넉넉한 즐거움인지, 여럿이 어울려 넘치는 화려함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교만한 자부심을 보여주려 했는지 겸손한 아름다움을 나타내려 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며, 매끄러운 살결을 매만지고 싶은 욕망인지 저항의 거친 숨결을 토해내는 분노인지도 문득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작가의 삶과 시대에 비추어 볼 일이다. 하지만 사군자 그림을 한꺼번에 보여주는데가 없다. 사군자 박물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늘 전시해 두는 곳도 없다. 따라서 사군자 그림을 분별하는 눈을 갖고 싶다면, 평소 화집 따위 미술사 책에 실린 사진 도판을 찾아 가까이 두고 늘 펼쳐 보는 길뿐이다. 즐겨 볼 그림이 없는 유배지에서 옛 그림을 떠올렸던 김정희나 조희룡이 어떻게 했는지 헤아린다면 화집을 보는것조차 행복한 일이다. 조희룡은 다음처럼 상상 속의 감상을 했다고 썼다. 바다 산속은 바람이 잔잔하고 날씨가 맑을 때는 드물고 비바람 치고 어두울 때가 많아, 지게문을 닫고 외로이 거처하며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그림 속을 좇아 노닐면서 고화(古畵)들을 마음속에 떠올리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감정이 호탕해진다. 또한 동북아시아의 문예를 배워 그 교양을 높여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림을 많이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깨우침이 먼저이며 가장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뿐이라면 조화로운 감상의 높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성은 풍부한데 이성은 가난하고, 느낌은 넘치는데 논리는 덜함과도 같으니 일그러진 그릇과도 같을 터이다. 이 대목에서 동북아시아 지식인들의 그림이 거의 그러하듯 그림만이 아니라 글씨까지 함께 어울려 있음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휘갈긴 한문을 제대로 풀어 읽기엔 버겁다. 따라서 거기 이르기 앞서 조선의 지식인들이 읊조린 서화시(書畵詩)들을 구해 가까이해야 한다. 힘겨운 노릇이긴 해도 오늘날 강세황, 신위, 김정희, 조희룡 들의 문집 및 시집들이 나와 있으니 구하긴 어렵지 않을 것이다. --- pp.1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