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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1 태초에 집이 있었나니 집우집주 / 전통사회, 집은 곧 자아였다 / 집이 신화를 만들다 2 사라진 부엌과 마당, 그리고 마루 우리네 부엌은 어디로 갔을까 / ‘으뜸 공간’ 마당이 사라지다 ‘높은 공간’ 마루를 그리워하다 3 집, 사회를 비추는 거울 안채와 사랑채 / 종가에 모여 사당을 세우고 선산을 만들다 4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조선 후기, 주거 근대화의 싹이 움트다 / 르네상스 건물이 한양을 뒤덮다 아파트의 탄생 글을 마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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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그녀의 정확한 본명을 알지 못한 채 ‘사임당’이라는 당호(堂號, 집 이름에서 따온 호)를 이름처럼 부르고 있다. 따라서 사임당 신씨가 더 정확한 표현이며 이는 윤지당 임씨, 난설헌 허씨 등도 마찬가지다. TV 사극에서 왕비의 일반적인 호칭은 중전마마인데 여기서 중전中殿이란 중궁전中宮殿, 즉 왕비가 거처하는 공간을 말한다. 또한 왕대비나 세자 등도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고 다만 자전慈殿 마마, 동궁東宮 마마라고 불렀는데, 자전이나 동궁은 모두 그가 거처하는 집의 이름이다.
--- p.2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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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 어떤 실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 혹은 실에 어떤 가구와 물건을 두는가 하는 것은 자아의 표현이자 소비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자아 표현과 소비가 그러하듯 중류계층은 상류계층의 소비패턴을 모방하려 하며 때로 중류계층의 소비는 과시적 형태로 나타난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내외법에 의한 남녀의 공간 구분이 유교적 정체성이나 신분 과시의 기제로 작용하면서, 일반 서민들도 사대부계층을 따라 주택 내에서 내외 구분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내외 구분도 어느 정도 공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지, 초가삼간 한 채뿐인 곳에서는 여의치가 않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내외벽’이다. 이는 부엌-방-방으로 이루어진 초가삼간에서 시아버지 방과 며느리 방 사이의 툇마루에 벽을 하나 만들어 놓아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직접 맞부딪히지 않도록 하는 장치이다.
--- p.9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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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침략의 야심을 앞세웠던 일본은 급기야 한반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수탈과 지배를 목적으로 근대제도와 문문을 들여왔고, 그 제도와 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건물도 함께 들여왔다. …… 이미 세계적으로 또한 역사적으로 진보와 아름다움의 함의를 획득한 것이 르네상스 양식이었고, 그것을 근대적으로 재해석한 ‘네오 르네상스 양식’이 식민통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조선총독부 건물에 적용되었다. …… 정치를 장악하기 위해 총독부 건물이 필요했다면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은행이 필요했으며, 이에 1912년 1월 최초의 은행인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박물관)이 르네상스풍의 석조 건물로 세워졌다.
--- p.130~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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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다른 사람들, 그 사람들만큼 다양한 집
새는 항상 나뭇가지를 엮어 집을 짓는다. 곰은 자신이 살기에 적당한 동굴을 찾아 집으로 삼는다. 모든 동물은 자신이 살 집을 만드는 방법을 학습 이전에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할까? 인류 최초의 집은 나무 막대로 뼈대를 세우고 풀 엮음으로 지붕을 덮은 움막 형태로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하다. 그러나 사람살이의 터전인 집은, 각 나라와 지역만의 독특한 자연환경,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환경에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그 모습을 달리 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땅에 세웠던 무수한 집들의 역사를 통해, 이 땅의 삶과 꿈을 읽어내다 건축의 역사에 대해 쓴 책은 많다. 그러나 대개 우리나라 최초의 주거유적과 온돌유적은 어디며, 부석사와 수덕사로 대표되는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건축기술의 발달과 미학적인 측면에서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건축의 형태를 결정짓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개개인과 그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자화상으로서의 건축의 역사에 주목한다. 나무 막대로 뼈대를 세우고 풀 엮음을 얹으면 마련할 수 있었던 소박한 보금자리가, 평생을 땀 흘려 일궈야 하는 꿈이 되어버린 이 땅의 집들에 대해 말한다. 기나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무 움막집, ㄱ자형 한옥, ㅁ자형 개량한옥, 주상복합아파트 등으로 그 모습을 달리 한 집들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우리네 삶의 변화를 들여다본다. 한국의 집, 한국 사회, 한국 사람들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노래의 가사다. 그런데 ‘꽃집’이 ‘공장’으로 대체된다면? 그래도 아가씨는 예쁠까? 장소와 인격이 동일시되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윤지당 임씨나 난설헌 허씨니 하는 이름들처럼, 오늘날 우리는 ‘타워팰리스 박씨-78평’ ‘래미안 김씨-33평’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이 책은 집이 곧 거주자와 동일시되는 한국 사회를 비추고 있다. 자, 그럼 그 빛의 스펙트럼을 살짝 들여다보자. 조선 후기 부농주거에서 등장한 여성 전용 사랑채 ‘안 사랑채’는 조선이 남존여비의 사회였다는 선입견을 가진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매우 이례적인 이 현상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해석을 들려준다. 첫째는 상공업과 농업의 발달에 따른 민의 성장과 맞물려 여성의 역할과 신분이 신장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학풍이 고개를 듬에 따라 주택을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 사랑채가 부농계층의 과시적 소비 형태로 표출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1960년대 처음 등장하여 지금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가치를 말해 줍니다’라는 오만한 카피로 누구나의 가슴 한켠에 잠재되어 있는 신분상승욕구를 자극하는 아파트에 대해서도, 저자는 남다른 해석을 들려준다. 박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의 깃발을 휘두르기 시작했을 때 가장 자주 사용한 구호는 자립자조였으며, 그것이 도심 직장인을 상대로 확대된 것이 주택공사의 아파트 분양이라는 얘기다. 프랑스의 박애주의자들이 아파트 구입을 곧 시민계급으로의 편입과 동일시하여 노동자계층의 불만을 잠재웠듯, 당시 우리나라도 아파트 거주는 곧 중산층 편입과 동일시되었으며 끊임없이 가족주의를 강조함으로써 노동자계층을 하나의 작은 단위 가족으로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지금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고급스런 실내, 우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아파트 광고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분양사무실로 끌어 모으고, 과거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요, 이불을 깔면 침실이었던 우리의 안방은, 이제 오로지 부부의 내밀한 공간인 침실로서만 기능하며 응접실, 서재, 옷방과 같은 새로운 실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사람들은 자꾸만 더 큰 집을 꿈꾼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내집 마련을 우선순위로 꼽는 한국 사람들이지만, 정작 우리는 집이 가져다 주는 안온함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바쁘게만 살고 있다. 이 책은 어느 날 문득 낯선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집을, 그리고 당신 자신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 혹은 어떤 집에 살게 되기를 꿈꾸고 있는가? 당신의 집이 품고 있는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앞으로 이 땅에는 또 어떤 집들이 지어질까? 건축칼럼니스트가 전하는 쏠쏠한 이야기 이 책의 저자 서윤영은 건축설계사 출신으로, 건축물과 맞물린 이런저런 세상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냄으로써 건축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얻게 되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품고 있는 공간’으로서의 건축물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앞서 출판된 그의 두 책들에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사람의 꿈·욕망을 담아내는 공간으로서 이 땅의 집, 그 집을 통해 사람들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우리 사회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문고판이 주는 부담 없음에 어울리게, 깊이 있는 역사 그러나 쉬운 역사를 표방하는 서해문집 역사문고의 취지에 맞게, 보다 담백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또한 저자가 직접 그린 꼼꼼한 그림들은 시대의 특성을 담은 우리네 집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