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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ieu Ri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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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에 대한 욕구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가장 널리 인정받고, 그 무엇보다 자명하고 변함없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행복을 원할 뿐 아니라 오직 행복만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 파스칼 브뤼크네르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가 서양적 가치이자 역사적으로 오래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보다 우위에 둘 수 있는 다른 가치들도 있다. 자유, 정의, 사랑, 우정 등이 그렇다." 산문인지도 알지 못한 채 산문을 짓는 주르댕처럼 그런 가치들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것들이 행복의 다른 면모들이며, 행복에 이르기 위한 다른 길들에 불과함을 의식하지 못한다. 행복이 익명에 파묻히게 되면 그것은 쾌락, 유흥, 취기, 관능, 그리고 또 다른 덧없는 닮은꼴 신기루 속에 뒤섞이고 만다. 행복을 다른 이름으로 찾는 것은 각자의 자유지만 닥치는 대로 사방으로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어쩌다 화살 몇 개는 과녁에 맞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화살들은 자연 속으로 흩어져버려 우리를 난감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 p.3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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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복수를 하고 다른 사람들을 고문하는 데서 쾌락을 맛본다. 그와 같은 행위들은 흐트러진 정신에 병적인 일시적 만족을 제공할 뿐, 살아 있는 존재에게 가해지는 그 고통들이 지속적인 충만감의 원천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고문집행관이나 폭군은 희생자들에게 가하는 자신들의 난폭한 권력을 즐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과연 거기서 조금이라도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캄보디아의 독재자 훈센이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혼자 칩거하는 상태로 하수인들의 비호를 받으며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 p.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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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 리카르의 ‘행복론’은 다른 행복론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하고 있다. 서양철학과 불교철학, 인지과학과 심리학, 뇌생리학, 그리고 현자들의 격언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해박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토대로 행복을 밝혀내는, 그야말로 ‘행복백과사전’이다. 그는 지표 없이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개인주의를 꼬집으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의 중대한 오류는 행복을 찾는 ‘방법’에 있으며, 우리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행복을 ‘밖’에서만 찾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근본적으로 내적 상태이다. 외적 조건들에 영향을 받되 그것에 좌우되지는 않는다. 행복의 원천이 우리 밖에 있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욕망은 끝이 없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은 제한적이고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티유 리카르는 ‘행복’은 하나의 존재방식이요, 내적 정신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외적인 것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행복론은 행복의 반대편에 있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이타적인 행복, 즉 ‘나’의 행복은 ‘타인들의 행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참된 행복은 모든 존재가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근본적 선의에서 온다”고 설파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장 범하기 쉬운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쾌락은 특별한 시간과 장소와 순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불안정하며, 그것은 “마치 닳아 없어지는 양초처럼” 시간이 갈수록 반복될수록 고갈되는 것이고, 더구나 그것은 “한 개인적 경험”이기 때문에 이기주의의 폐단인 “폭력, 탐욕”과 어우러질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참된 행복은 일종의 ‘존재상태’로 “오래 지속되며 맛볼수록 커지며 충만”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집착”을 버린 “완벽한 내적 자유”이며, “고통의 원인들에 매달리기를 그만두고 자유를 선택”할 때 누리게 되는 ‘평심’이다. 그는 그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주변사람뿐 아니라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도 기여하게 된다고 말한다. 행복을 저해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로 그는 “증오”를 꼽으며 빅토르 위고의 “증오, 그것은 마음의 겨울이다”라는 말을 되살린다. 그리고 증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정신적 독소 가운데 증오야말로 가장 해로운 것이다. 온갖 폭력과 집단학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갖가지 침해를 낳는 것이 증오다.” 이러한 증오가 없었다면 “고통으로 얼룩진 수천 년 세월의 우리 모두의 역사”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더불어 “보복”과 “복수”의 욕망 역시 “가해자로 하여금 우리를 해치게 만든 바로 그 감정과 다르지” 않은데 그러한 “사실을 깨닫기란 더더욱 어렵다”고 정언한다. 그렇다면 그 “흉측한” 증오는 어떻게 소멸시킬 수 있는가. 그는 켄체 린포체의 말을 빌어 해결책을 제시한다. “증오를 평소의 적, 소위 그대의 적들에게서 돌려 증오 그 자체를 향하게 해야 한다. 사실 그대의 진짜 적은 증오다. 그대가 파괴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보통 사람으로선 수용하기 힘든 ‘증오 소멸법’을 내놓는다. “개인적 자각, 내적 변화, 이타적 인내심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 그렇게 “많은 개인이 이타적 변화를 이루어냈을 때” 세계는 한결 평온해지고 행복이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다. 그러한 이타심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는 “사랑”에 대해 “명상”할 것을 권한다. 명상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고통의 원인들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며,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을 느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한 마음이 제2의 천성이 되면 자비심은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지 않으면서 밝게 비추며, 태우지 않으면서 따뜻하게 덥혀”주게 된다. 그리하여 삶의 “고요한 완성”인 죽음에 이르게 되기를 축원한다. “아름다운 죽음은 아름다운 생의 귀결인 것이다.” “깨달음”, 생로병사에 희로애락하는 범인들로서는 들어서기 어려운 경지라고 접고 말해도, 이 책의 어느 페이지 어느 구절이든 맑고 조용한 아침 한때 수련을 바라보듯 음미하노라면 마음의 묵은 때가 씻겨져 내려가고 정화되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