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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들어가며: 해방공간의 두 주역·11
2부 하지의 군정 실시와 이승만의 귀국·19 3부 이승만과 하지의 불화: 한반도 국제신탁 통치안·43 4부 이승만과 하지의 갈등: 남한 단독 정부수립론·71 5부 이승만과 하지의 이별: 대한민국 정부수립·95 6부 맺으며: 비운(悲運)의 동반자·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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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하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하다. 2015년 올해는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승만과 하지를 제외하고, 해방공간 3년을 제대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해 방정국의 핵심적인 주역들인 이승만과 하지의 정치적 신념과 역할, 그리고 한계를 가능한 객관적인 접근을 통하여 새롭게 재조명하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군정 3년 동안 이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불신과 불화, 그리고 갈등과 증오로 악화되어 갔다. 이러 한 견원지간의 관계를 초래하게 만든 근본적인 요인은 해방 후 한국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그들의 구상과 신념이 서로 달랐던 데에 크 게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 p.17
1947년으로 접어들면서 트루먼 행정부는 하지의 견해와 육군성 의 계속된 강력한 조기 철수 주장으로 인해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 민주적인 통일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지금까지의 방침을 점진적으로 포기하고, 한국문제를 국제연합문제로 만드는 한편, 남한 으로부터 ‘명예롭게’ 철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는 곧 지금까지 좌우익 사이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동인(動因)이었던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마침내 미국이 현실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 p.69 처음부터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 또한 자신의 성격에도 맞지 않았던 군인정치가로서 낯선 땅 남한을 통치하면서 느껴야만 했던 하지의 좌절감은 실로 컸다. 국방부의 고위 정책수립가였던 위드마이어와 드레이퍼 육군차관에게 장시간에 걸친 브리핑에서, 하지는 자 신의 좌절감을 상세하게 실토했다. 하지는 만약 본국정부가 자신을 계속 유임시킬 의도가 없으면, 하루빨리 퇴진시키고, 완전한 신임을 받는 인물로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건의했다. --- p.91 하지가 서울을 떠나기 전날 이승만은 하지에게 “비록 당신과 나 사이에 때로는 약간의 오해가 있었지만, 하지 중장은 한국민의 가슴 속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적은 마지막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한편 하지는 한국민에게 보낸 고별사에서 남한에는 자기 이 익만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인 정치가들’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모두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오로지 한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합심 노력할 것을 마지막으로 주문했다. --- p.117 군정 3년 동안 이승만과 하지는 그야말로 견원지간의 관계였다. 그러나 그들은 견원의 동반자였다. 왜냐하면 이승만은 군정의 최고 책임자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하지 또한 반공의 보루가 될 수 있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막강한 정치적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이승만의 정치적 위상을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자신의 목적달성에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제거되기를 강력히 희망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능력 밖의 일임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