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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웨이, 대한민국을 구한 지휘관
복거일
백년동안 201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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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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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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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6.25전쟁의 기원과 인천 상륙작전
1장 사령관
2장 6.25전쟁의 기원
3장 한국군의 붕괴
4장 미군의 참전
5장 낙동강과 인천
6장 북한으로의 진격

2부 중공군의 개입과 리지웨이의 수습
7장 중공군의 개입
8장 동부 전선의 위기
9장 흥남 철수작전
10장 리지웨이의 수습
11장 중공군의 ‘3차 공세’와 서울 함락
12장 중공군의 ‘4차 공세’와 지평리 전투
13장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
14장 한국군의 분전

3부 한국이 필요로 한 영웅
15장 휴전 회담
16장 한국이 필요로 한 영웅

저자 소개 1

BOK,KOH-ILL,卜鉅一

1946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최전방에서 포병부대 관측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후 16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7년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문단과 독자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주요 작가가 된다. 『역사 속의 나그네』(전 6권, 2015),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1994) 등 소설 수십 권을 출간하였는데, 그의 문학은 이전의 우리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체역사소설, SF 등 상상력의 영역을 크게 확대한 작품들이었다. 한편 한국 사회의 갈등은 그를 소설만
1946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최전방에서 포병부대 관측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후 16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7년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문단과 독자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주요 작가가 된다. 『역사 속의 나그네』(전 6권, 2015),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1994) 등 소설 수십 권을 출간하였는데, 그의 문학은 이전의 우리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체역사소설, SF 등 상상력의 영역을 크게 확대한 작품들이었다.

한편 한국 사회의 갈등은 그를 소설만 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사회·정치 평론을 쓰기 시작한다. 자유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진화생물학, 천체물리학 등을 수용한 도저한 그의 평론과 에세이는 한국 사회의 금기에 도전하는가 하면 지식의 미개지를 탐험하기도 했다. 『현실과 지향』(1990), 『진단과 처방』(1994), 『자유주의의 시련』(2009),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1996) 등 평론집 수십 권을 출간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자리 잡는다. 또한 시집을 상자(上梓)하면서 소설가, 평론가에 이어 시까지 글쓰기를 두루 섭렵하는 대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2014년 간암 판정을 받고, 그를 오랫동안 짓눌러 오던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기소설 집필을 시작한다.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여적죄, 그리고 김정은 반인도 범죄자 고발을 주도했다.

1987년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작가 복거일은 책이 좋아 읽다보니 어느새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젊은 날, 넉넉한 보수를 주던 은행을 그만둔 이유도 오롯이 책 읽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대체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기도 한 작가이다. 작가는 문학 창작 활동뿐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짚어야 할 문제들에 주목하여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불리면서 사회평론가로도 활동해 왔으며 그의 여러 저서를 통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하기도 했다.

복거일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실패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1980년대 식민지 서울을 살아가는 반도인의 1년을 쫓은 작품인 『비명을 찾아서』로 1987년 데뷔하였다. 이 소설은 2002년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그는 SF 장편소설 『목성잠언집』으로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다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여 전통 경제이론에 정통 하면서도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전파에 앞장 서는 보수내 지식인으로 활동해 왔다. 1998년 한국어 대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자는 '영어 공용화' 제안으로 논란이 대상이 되었고 원화 대신 달러를 통화로 채택하자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탈민족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시집『오장원(五丈原)의 가을』,『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장편소설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역사 속의 나그네』,『파란 달 아래』,『캠프 세네카의 기지촌』,『목성잠언집(木星箴言集)』,『그라운드 제로』,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평론집『세계환상소설 사전』, 사회평론집『현실과 지향』,『진단과 처방』,『소수를 위한 변명』,『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동화를 위한 계산』,『2002 자유주의 정당의 정책』, 『자유주의의 시련』, 과학평론집『쓸모 없는 지식을 찾아서』, 산문집『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죽음 앞에서』,『현명하게 세속적인 삶』등이 있으며, 최근작으로 『서정적 풍경,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역사가 말하게 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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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215g | 150*198*13mm
ISBN13
9791195263899

출판사 리뷰

우리가 필요로 했지만, 우리가 잊은 영웅

맥아서(MacArthur) 해임 후 6.25를 진두지휘한 리지웨이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국제정세의 변화와 전쟁의 양상

1950년 12월 25일 리지웨이가 한국에 부임해서 전선을 시찰했을 때 그가 본 것은 목적을 잃은 군대였다. 미군 병사들은 자신들이 조국에서 멀고 낯선 땅에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지 못했다. 리지웨이는 미군 병사들에게 목적의식을 불어넣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 정부와 군대를 서둘러 안심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다.

전쟁을 바르게 이해하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초창기를 뒤흔든 6.25전쟁에 대해 바로 알고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서(MacArthur)의 해임 후, 6.25전쟁을 진두지휘한 장군 리지웨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잊어버린 이 영웅은 중공군이 밀려들어와 자칫 다시 잃어버릴 뻔 했던 대한민국을 구해내고 6.25전쟁의 중후반을 책임진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소설가 복거일은 리지웨이의 시선을 따라 6.25전쟁을 조망하고 있다. 독자들은 잊혀진 전쟁, 6.25의 후반부 양상을 현미경으로 바라보듯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우리 사회엔 6.25전쟁을 다룬 저서들이 그것의 중요성에 비해 너무 적고 일반인들을 위한 저서들은 더욱 드물다. 게다가 그 동안 북한으로 기우는 지식인들은 북한의 침입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려고 시도해 왔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선 그 전쟁의 과정보다 오히려 기원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그렇다고 이 책이 리지웨이의 시선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6.25가 터지기 직전의 국제정세부터 시작해서 북한의 남침과 초창기 국군의 대응, 미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과 중공군의 개입까지 저자는 생생한 필체로 전쟁의 양상을 그려내고 있다.

리지웨이의 수습
“중공군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맥아서의 기대는 어긋났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후 절대적 권위를 얻었던 맥아서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 국공내전으로 다져진 중공군은 물밀듯한 기세로 국군과 미군을 격파하며 진격해 왔다. 서울을 다시 빼앗기고 전선도 끊임없이 밀려 내려오는 상황에서 국군과 미군의 사기 역시 끝없이 떨어져 있었다. 1950년 12월 25일 부임한 리지웨이가 처음 본 것은 전의를 잃은 군인들이었다. 리지웨이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그들에게 ‘싸움의 의지’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리지웨이는 오히려 미군 병사들이 그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렇게 용감하고 끈기 있게 싸운 것을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병사들을 탓하는 대신 용기를 주고 동기 부여를 한 것이다. 또한 그는 지휘관들을 꾸짖었다. 특히 고지들을 버리고 오직 길을 따라 기동하는 관행을 질타했다. 편안하게 싸우려는 태도 때문에 고지들을 버리고 길만 따라가는 것은 보병 선배들을 욕되게 하는 수치스러운 일임을 지적했다.

우리가 잊은 영웅
1951년 봄 리지웨이의 전략이 주효해서 전황이 안정되자 미국은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인적 자원이 막대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승리의 가능성은 사라진 터였고 미국 시민들은 이미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중국은 처음엔 휴전회담에 부정적이었지만 1951년 5월 마지막 공세가 실패하자 태도를 바꾸었다. 지난한 휴전협상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양쪽이 서명함으로써, 한반도의 총성이 멈췄다.
리지웨이에 대해 “미군의 역사에서 발휘된 가장 큰 개인적 지도력”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리지웨이는 원만한 성격과 차분한 용기를 가진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그는 사기가 땅에 떨어진 미군과 국군을 추스르고 반격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함에 있어 맥아서, 백선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휘관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리지웨이를 기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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