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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부 플로리다 시골소년, 미국 최고의 야전지휘관이 되다 네덜란드계 미국인으로 출생 아버지 권유로 미 육군사관학교 입학 육군 보병소위 임관과 웨스트포인트 동기생들 제1차 세계대전에 기관총 중대장으로 참전 제1차 세계대전 후 밴플리트 군대 경력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연대장으로 참전과 장군 진급 연대장에서 군단장까지 8개월만의 초고속 승진 그리스 군사고문단장 임명과 그리스의 내전 상황 미 군사고문단장으로서 그리스 공산화를 막다 한국전에서 참패한 미 제2사단의 해체를 막다 2부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아들과 함께 싸우다 미 제8군사령관 발탁 배경 승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워싱턴의 제한전으로 좌절된 39도선으로의 북진작전 휴전선을 있게 한 밴플리트의 제한된 공격작전 미군 사령관 중 이승만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전선시찰을 주야로 수행하다 한국전선에서 가족에게 편지 쓰는 군사령관 밴플리트의 외아들 한국전에서 전사하다 아들 잃은 슬픔 대신 실종된 부모들을 위로하다 아이스크림 때문에 목숨을 잃을 번한 헬기사고 3부 대한민국을 ‘제2의 조국’으로 여기며 헌신하다 백선엽의 장군 자질을 알아보고 발탁하다 군사학교 재 설치와 국군 장교의 미국 유학 추진 국군 사단에 대한 집중훈련과 육군 20개 사단 증편 추진 대한민국에 4년제 육군사관학교 설립 추진 미 제8군사령관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다 밴플리트 장군의 미 제8군 장병들에 대한 고별사 밴플리트 장군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고별 메시지 밴플리트 장군의 한국에서의 고별 기자회견 전역 후에도 대한민국과 군을 위해 계속 노력하다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제주도 ‘송당 목장’ 개발 추진 4부 대한민국의 영원한 은인으로 남다 밴플리트에 대한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보은(報恩) 한미동맹의 상징이 된 밴플리트 상(賞) 대(代)를 잇는 대한민국과의 깊은 우의(友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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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시절 밴플리트의 사격은 최우수였다. 그를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명사수였다. 그리고 승마, 체조, 야전훈련, 기동훈련 등 체육활동과 군사학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언어학, 법학, 사교댄스 등에서는 고전했다. 사관학교 성적은 중하위권을 유지했다.
--- p.27 전쟁터는 진흙탕으로 변했고, 장병들은 참호 속에 비를 맞으며 전투를 해야 했다. 밴플리트는 전투현장을 누비며 교전 중인 장병들을 격려했다. 모든 것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단 장병들은 빗발치는 적의 총탄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감행했다. 사단장을 중심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 믿고 싸웠다. 사단 장병들은 자신과 전우의 능력 그리고 지휘관의 리더십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싸우고 또 싸웠다. --- p.45 미 제8군사령부가 있는 대구에 도착한 밴플리트 장군의 지휘관으로서 첫 일성은 단호했다. 밴플리트 사령관은 부임 직후 철수 운운하는 지휘관과 참모들에게“, 나는 이 나라에 철수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중공군의 공세에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그것이 이승만 대통령이 밴플리트를 신임하며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중공군은 밴플리트를 그냥 보고 있지만 않았다. --- p.74 이승만 대통령은 전선시찰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했다. 힘든 상황인데도 대통령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농담하며,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했다. 그런 이승만 대통령을 위해 밴플리트 장군은 궂은 날씨나 기후에 관계없이, 이승만 대통령을 수행하며 전선사령관으로서의 역할과 책무를 다했다. --- p.96 밴플리트가 한국전선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방문한 국군부대가 백선엽이 지휘하는 동해안의 제1군단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전투를 통해 더욱 신뢰하게 됐다. 백선엽 장군이 그만큼 전투를 잘 했다는 의미다. 백선엽은 전투에서 단 한 번도 밴플리트를 실망시킨 적이 없을 정도로 국군에서 작전에 실패하지 않은 몇 명 되지 않은 장군 중의 한 사람이었다. --- p.114 1953년 8월 27일, 밴플리트가 한국을 방문했다. 전역 후 한미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그는 한국경제의 재건을 돕기 위한 원조 프로그램을 조정하기 위해 미국의 사업가들을 대동하고 왔다. 밴플리트가 한국에 오면 육군본부에서는 차량과 부관을 제공하며 편의를 제공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힘쓴 밴플리트에 대한 한국정부와 군이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성의이자 배려였다. --- p.140 국가보훈처는 2014년 3월,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헌신한 밴플리트 부자를‘ 이 달의 6.25전쟁의 영웅’으로 선정하여 추모했다. 밴플리트 장군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경의(敬意)이자 배려였다. 밴플리트가 오늘날까지 한국 국민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 p.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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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운 미국의 장군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은 누굴까? 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다. 그가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그가 한국에 제일 먼저 온 사령관이고, 인천상륙작전까지 성공시켜 전쟁의 국면을 한 번에 뒤바꾼 공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8군사령관을 역임한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들과 함께 참전했지만, 끝내 전사한 아들을 한국 땅에 묻었고 이승만 대통령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여긴, 4년제 육군사관학교 설립에 막대한 공헌을 했고 육군을 20개 사단으로 증설하는 것에도 기여한 밴플리트 장군이야말로 전쟁의 후반기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장군이었음에도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밴플리트 장군의 평전이다. 그가 태어난 후 웨스트포인트를 거쳐 한국전에 기여하는 모습이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저자 남정옥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편집위원으로 재직 중으로, 6.25 당시의 전쟁사와 영웅들에 대해 대한민국 그 누구보다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밴플리트 장군이 한국에 기여한 점만으로 그를 기억하자는 것이 아니다. 밴플리트는 당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전투지휘능력을 가진 장군 중 하나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앞장서 독일 나치를 무너뜨리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미 제8보병연대의 연대장이었으며, 전후에는 그리스 군사고문단장으로 활약하면서 공산 게릴라 소탕에도 탁월해 그리스의 공산화를 막아낸 중요한 역사적 기여가 있다. 이런 그의 경험은 나중에 한국에서 지리산 빨치산을 소탕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가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여기고 열정과 헌신을 다한 점은 대한민국으로선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등을 만들어 한미관계의 발전에도 큰 공적을 남긴 그에 대해 그간 너무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 책을 통해 그의 업적과 헌신을 새삼 상기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