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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6
1부 포로의 발생과 수용 1장 공산군 포로의 획득·15 2장 포로의 수용 및 관리·19 3장 거제도 포로수용소·29 2부 반공포로의 출현 1장 포로의 분류 심사·41 2장 송환찬성 포로와 송환거부 포로·46 3장 포로수용소장 피랍사건·50 4장 대한반공청년단의 결성·53 3부 휴전협상과 포로문제 1장 휴전협상 의제 제4항·61 2장 자원송환과 강제송환 논쟁·66 3장 미국의 입장과 협상전략·70 4장 공산군 측의 입장과 태도·78 5장 한국의 입장과 태도·82 6장 협상 타결을 위한 유엔의 노력·92 4부 반공포로 석방 1장 포로의 분리·분산 수용·99 2장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109 3장 심야의 대탈출·115 4장 반공포로 석방에 대한 반응 및 영향·122 5부 휴전협상 체결과 포로송환 1장 포로송환협정 체결·131 2장 중립국송환위원회에 맡겨진 운명·136 3장 송환 설득을 이기려는 싸움·139 4장 자유의 품으로!·145 맺음말 · 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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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는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포로 등이 발생하게 마련인데 그 중에서 전쟁포로란 일반적으로‘ 적에게 사로잡힌 군사’를 말하며, 법적으로는‘ 적군에 생포된 전쟁 당사국 일방의 군대에 소속한 전투원이나 비전투원’을 가리킨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개념으로는 ‘제네바 협약’ 1)의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바, 이 협약은‘ 다음 부류의 하나에 속하는 자로서 적의 수중에 들어간 자’를 전쟁포로로 규정하고 있다.
--- p.6 또 이 시기 다수의 공산 측 조직원들도 포로수용소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당시로서는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북한의 특별부대 요원들이었다. 북한에서 훈련을 받은 그들은 수용소 내에서 전복과 테러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고 계획적으로 포로가 되어 수용소 내로 잠입한 후 은밀히 조직을 만들고 수용소 근처의 민간인이나 피난민을 매수하여 다른 동의 포로와 정보를 교환하는 한편, 외부의 게릴라를 통해 북한과의 연락을 시도하였다. --- p.36 공산군 포로의 신원과 사정은 매우 복잡했다. 그들 중에는 북한 출신이 있는가 하면, 남한 출신이 있고, 정규 인민군 출신의 포로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포로가 있었다. 그렇지 않은 포로의 성격은 더욱 복잡했다. 공산포로 중에서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남한 출신자 또는 적에게 잡혀 강제로 인민군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유엔군에 포로가 된 국군 장병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 p.66 이 시기에 이 대통령은 그동안 마음에 품어 왔던‘ 모종의 조치’를 단행할 결심을 하게 된 것 같았다. 여기서 모종의 조치란‘ 반공포로 석방’이었다. 반공포로 석방은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발상이었다. 설사 한 번쯤 생각해 볼 수는 있는 일이었겠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실현하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될 일임이 분명했다. --- p.111 반공포로를 돌려받은 유엔군사령부는 공산군 측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석방하기로 하였다. 1954년 1월 23일 한국 및 타이완 정부와 유엔군 관계관이 참석한 가운데 반공포로 인도·인수식이 거행되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타이완으로 보내졌고, 한국인 포로들은 대한민국에 인도되었다.48) 이로써 그 어느 편의 주권도 미치지 못하는 비무장지대에서 오직 반공의 일념으로 공산군과 끝까지 대결한 송환거부 반공포로들은 마침내 완전히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 p.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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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을 완성한 '반공포로 석방'에 얽힌 이야기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 반공포로들에게 소중한 자유를 선물한 이승만 대통령의 용단 반공포로는 외형상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포로였다. 그들 중에는 원래의 고향이 남한이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히 공산권으로의 송환을 반대하는 자도 있었지만, 북한 출신이면서도 귀환을 거부하는 자도 있었다. 실제로 북한 출신 포로들이 더 철저히 귀환을 거부하면서 더 강렬한 송환 반대 행동을 보였다. 그것은 이미 공산 통치 하에서 공산주의의 실상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본문」 중에서 6·25전쟁에서 국군 및 유엔군에게 붙잡힌 공산군 포로의 구성 및 성격은 제네바 협약으로도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했다.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수용하고 있던 적군(敵軍) 포로 집단 내에는 공산군 소속 군인으로서 자발적으로 유엔군에 귀순함으로써 별도의 취급을 받아야 했으나 그냥 포로로 분류된 자가 있었는가 하면, 국군 소속의 군인으로서 적에게 생포되었다가 북한군에 강제로 끌려 들어간 소위 의용군이 있었다. 또 국군 장병으로서 전선에서 낙오되었다가 복귀하는 도중에, 또는 공산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유엔군에게 포로가 된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제법과 역사적 관례에 의하면 전쟁이 끝나는 대로 포로는 지체 없이 송환될 것이므로 유엔군 관리 하에 있는 포로는 전원 북한이나 중국으로 송환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대단히 많은 수가 본국으로의 귀환을 거부하는 뜻을 나타냈던 것이며, 이런 사실은 공산군 측을 당혹케 만들었다.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포로가 있다. 국제법과 역사적 관례에 의하면 전쟁이 끝나는 대로 포로는 지체 없이 송환될 것이므로 유엔군 관리 하에 있는 포로는 전원 북한이나 중국으로 송환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대단히 많은 수가 본국으로의 귀환을 거부하는 뜻을 나타냈던 것이며, 이런 사실은 공산군 측을 당혹케 만들었다. 이미 공산 통치 하에서 공산주의의 실상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포로가 있다는 사실은 국제적인 망신일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21권을 차지하는 이 책은 이러한 반공포로를 북한으로 보낼지, 아니면 자유롭게 풀어줄 것인지에 얽힌 당시의 국제적 이해관계나 한미동맹을 반드시 맺어야만 했던 처지의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이 반공포로들에게도 소중한 자유를 선물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그의 큰 업적 중 하나라는 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