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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부 에로스의 유령 1. 정오의 악령 2. 멜랑콜리아 I 3. 우울증에 빠진 에로스 4. 잃어버린 물건 5. 에로스의 유령들 2부 오드라덱의 세계: 상품 앞에 선 예술작품 1. 프로이트 혹은 부재하는 대상 2. 마르크스 혹은 만국박람회 3. 보들레르 혹은 절대상품 4. 보 브럼멜 혹은 비현실의 도용 5. 팽쿠크 부인 혹은 장난감 요정 3부 말과 유령: 1200년대 사랑의 시에서 나타나는 유령 이론 1.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2. 거울 앞의 에로스 3. “환상적 영” 4. 사랑의 영 5.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사이에서 6. “결코 끝나지 않을 기쁨” 4부 퇴폐한 이미지: 스핑크스의 관점에서 바라본 기호학 1.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2. 고유한 것과 고유하지 않은 것 3. 저항선과 상처 후기 옮긴이의 말 인명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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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선(善, bono divino) 앞에서의 후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영적 가능성 앞에서의 후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어쨌든 하나의 기본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중세 심리학이 이루어낸 가장 놀라운 성과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모순의 발견이다. 나태한 인간이 신의 섭리 앞에서 후퇴한다는 것은 사실 그가 신의 섭리를 잊어버린다거나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그에게 부족한 것이 구원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면,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나태한 인간의 후퇴가 결국 드러내는 것은 욕망의 사라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접근하기가 점점 불가능해지는 욕망의 대상이다. 나태한 인간의 타락은 대상은 원하면서도 그것에 이르는 길은 원하지 않는 욕망의 타락이다. 그는 욕망하면서도 욕망의 성취를 위한 길을 가로막는다.
---「에로스의 유령」중에서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에 의한 생산품이 상품으로서의 형태를 취하자마자 띠게 되는 이 “신비로운 성격”은, 더 이상 사용가치(인간의 어떤 특정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만을 가지고 있지 않는 물품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본질적인 이중화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이 사용가치는 동시에 무언가 다른 것의 물질적 지주이며 그 무언가란 곧 스스로의 교환가치다. 사용되는 물건인 동시에 가치운반체라는 이중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만큼, 상품은 본질적으로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자산이다. 때문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향유한다는 것은 축적과 교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드라덱의 세계」중에서 사물들에 대해 비양심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사회가 꿈꾸던 인물이 바로 댄디, 즉 불편함을 느낄 줄 모르는 남자였다는 것은 또렷하게 이해가 되는 일이다. 영국에서 가장 멋진 이름을 가진 인물들과 기득권층이 보 브럼멜의 한마디에 쩔쩔맸던 것은 이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던 이론을 바로 브럼멜이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아함과 과분함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여기는 댄디가 자연스러움을 상실한 인간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사용가치의 향유나 교환가치의 축적을 뛰어넘는, 사물들과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이다. 댄디는 사물들을 구원하는 대속자다. 그는 그의 우아함으로 사물들의 ‘상품’이라는 원죄를 말소시킨다. ---「오드라덱의 세계」중에서 앎의 과정에서 유령이 수행하는 역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유령이 지성의 필수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성이 일종의 상상(fantasia tis)이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그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강조했었고, 후에 중세의 지식 이론을 지배하게 될 인식론적 원리 속에 유령이 등장한다. 이 원리는 다음과 같은 중세대학의 한 표어 속에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다. ‘인간은 유령 없이는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다(Nihil potest homo intelligere sine phantasmata).’ ---「말과 유령」중에서 “보이지 않는 구분”에 가까이 도달했을 때에만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기호의 서구적인 해석을 지배하고 있는 이 형이상학을 정말 넘어설 수 있는 영역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잔의 한 작품이 서양의 마지막 철학자에게 암시하고 있는 듯한 이 “보이지 않는 조화”의 단순함 앞으로 되돌려진 현존이 과연 무엇일지 우리는 막연히 예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그리스철학의 태동기에 수집이나 은폐와는 거리가 먼 말하기로 비쳤을 주술적인 의미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먼 곳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을 향해 계속해서 정진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퇴폐한 이미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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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하는 미학자이자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문제작 행간을 통해 드러낸 인간 문화에 대한 이해, ‘고귀한 사랑’을 상실한 시대에 던지는 진실한 물음 1977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행간(Stanze)』은, 어떤 식으로든 소유하지 말아야 할 것을 소유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과제 앞에서 인간의 영혼이 대답을 시도하는 공간인 ‘행간’의 위치를 특유의 해석학적 체제로 그려낸 조르조 아감벤의 대표 저작이다. 아감벤은 서양문화의 근간이 된 ‘유령’이라는 테마를 토대로, 왜 비현실적인 것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해왔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단테의 시 분석과 함께 사랑을 절대적인 위치에 놓는 도덕관 속에서의 유령 이론, 상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예술작품이 차지하는 위치, 교부철학자로부터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우울증의 개념이 거쳐온 변화, 1500년대의 상징학이 현대의 기호학으로 발전하게 된 배경 등 책을 구성하는 주제들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인류의 문화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 즉 ‘유령’과 항상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는 사실에 있다. 『행간』은 바로 이 거대한 테마 속에서 읽을 수 있는 행(行)들의 관계를 연구한다. 벤야민적 비평과 바르부르크적 분석 방식을 과감하게 혼용하면서 아감벤은 아베로의 철학과 보들레르의 시, 단테의 시와 소쉬르의 기호학 이론, 중세 의학 이론과 라캉의 정신분석을 도마에 올려놓는다. 『행간』에는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유령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다양한 이름이 등장한다. 우울증 환자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악령과 부정의 언어 속에서 탄생하는 페티시즘의 주물(呪物)과 인간의 환상을 주재하는 프네우마와 표징, 상징, 기호 등이 바로 유령의 또 다른 이름들이다. 아감벤이 추적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유령들이 상이한 차원에서 드러내는 동일한 특징, 즉 운명적인 이유에서든 인간적인 필요에 의해서든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기 위해 명명되거나 창조되었다는 특징의 흔적들이다. 『행간』은 지금까지 한국에 번역된 아감벤의 정치철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작품이다. 아감벤의 미학자로서의 면모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며, 아감벤이 기본적으로 취하는 비평적 자세와 철학적, 문헌학적 방법이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글이다.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영혼에 관한 물음에 관해 아감벤이 내놓은 대답이 동문서답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동문서답을 통해 드러내는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이 결코 틀린 답이 아니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유령이라는 동일한 매커니즘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까지 확장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중세와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있는 까닭이다. 중세문화와 현대문화의 공통점을 찾는다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도 아감벤의 『행간』보다 적합한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