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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육화에 대한 질문 I. 현상학의 전복 1. 현상학의 대상: ‘나타남’에 대한 질문 2. 현상학의 현상학적인 전제들의 애초의 비규정성: ‘현상학의 원리들’ 3. 현상학의 전제의 감춰진 편견: 모든 ‘나타남’을 세계의 나타남으로 환원하는 파괴적인 환원 4. 하이데거에서 현상학의 위기: ‘세계’의 나타남의 존재론적 빈곤 5. 언어의 기준: 언어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의 결정적인 진전과 한계 6. 탈실재화의 힘으로서 ‘세계’의 역설 7. 실재의 설립자로서 인상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 인상의 현상학적 지위의 문제, 지향성과 인상 8. 시간의 흐름 안에서 인상의 자기 밖에 도래와 인상의 파괴 9. ‘본래적 인상’의 기원: 인상의 현상학에서 삶의 현상학으로의 불가피한 반송 10. 인상의 본래적인 수동성과 삶의 초월론적인 정감성 안에서 ‘정념’: 살아 있는 현재 11. 본래적 나타남에 대한 질문과 데카르트의 코기토: 코기토에 함축된 세 개의 근본적인 질문 12.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대한 후설의 잘못된 해석과 그 결과들: 단독적인 삶에 대한 불신 과 현상학적 방법의 주제 변경 안에서 삶의 ‘본질’에 의한 단독적 삶의 대체 13. 주제의 변경에 대한 분석: 현상학적 방법의 아포리아 14. 아포리아를 극복하기 위한 궁극적인 시도: 비가시적인 삶의 ‘이미지로 된 소여’에 대한 질문 15. 현상학적 방법의 토대로서 삶의 본래적인 자기-계시: 삶의 사유 가능성에 대한 철학 일반의 문제에 대한 대답 II. 살의 현상학 16. 세계의 나타남과 내용: ‘감각적 세계’에 대한 질문 17. 감각적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갈릴레이의 환원의 기여와 한계들 18. 데카르트의 반-환원적 태도 19. 『위기』에서 갈릴레이의 환원에 대한 후설의 비판 20. 세계의 감각적 신체의 분석의 회귀: 느껴진 신체에서 그것을 느끼는 초월론적인 신체로의 반송, ‘감각적’이라는 개념의 애매성 21. 느끼는 신체와 느껴지는 신체 대립의 극복 시도: 후기 메를로-퐁티의 철학적 문제와 감각적인 것의 절대화 22. 초월론적인 신체의 분열: 자신의 본질을 삶 안에서 발견하는 내재적인 본래적 신체성 23. 절대적 삶 안에서 살의 생성: 이 생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살의 본래적이고 현상학적 인 특징들 24. 신체의 그리스적 개념화에서 살의 현상학으로: 이레네오와 터툴리안의 근본적인 철학 적 문제들 25. 삶의 현상학적 물질이며 삶의 자기-계시로서 살에 대한 근본적인 해석: 이레네오의 기 독교적 코기토 26. ‘나는 할 수 있다’에 대한 분석, 신체의 만질-수-있음과 신체에 부여된 모든 할 수 있음의 조건으로서 스스로-움직일-수-있음: 콩디악과 멘느 드 비랑 27. 살, 세계의 기억할 수 없는 기억 28. 살, 감각과 세계 이전에 주어진 알려지지 않은 신체의 증여의 장소: ‘유기적 신체’의 구조화와 속성들 29. 유기적 신체의 살적 충동으로서 행위의 본래적인 가능성: 세계의 내용의 비가시적인 실천적 실재, 객관적인 고유한 신체의 구성과 지위 30. 『이념들 II』의 3장에서 고유한 신체의 구성이론: ‘나는 할 수 있다’와 유기적 신체의 실존과 신체 위에 우리의 인상들의 자리잡기라는 삼중의 초월론적인 가능성의 은폐 31. 키아즘의 회귀: ‘만져짐’의 의미, 고유한 신체의 구성이론의 완성으로서 피부의 현상학 32. 콩디악의 테제의 회귀: 조상 자기-에로티시즘, 상실의 장소로서 살, 살의 현상 학에서 육화의 현상학으로의 필연적인 이행 III. 육화의 현상학-기독교적 의미에서 구원 33. 현상학의 전복과 살의 현상학적 분석의 의해 얻은 결과들의 요약 34. 육화의 현상학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다’에 대한 질문 35. ‘나는 할 수 있다’의 환상과 실재 36. 삶의 망각과 일상적인 실천의 정념 안에서 삶의 상기 37. 삶의 망각과 불안 안에서 삶의 정념적인 상기 38. 나타남의 이중성과 불안의 배가 39. 욕망과 ‘죄 안에서 도약’ 40. 성적인 관계의 초월론적인 두 개의 살: 기술의 자아 41. 삶의 내재성 안에서 성적인 관계: 욕망의 실패 42. 세계의 나타남 안에서 성적인 관계: 실패의 반복 43. 허무주의 시대에 성적인 관계의 객관적인 성관계로의 환원 44. 삶은 이유가 없다: 삶은 선하다 45. 수동성의 정도들: 창세기에서 요한복음의 1장까지 46. 이레네오와 아우구스티누스에서 구원의 길 47. 삶의 현상학에서 타인의 경험 48. 기독교에서 타인과의 관계: 그리스도의 신비한 신체 결론 현상학과 신학을 넘어서: 요한의 최초의-지성체 옮긴이 후기 |
Michel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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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체?한편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을 스스로 겪는 우리의 신체, 다른 한편으로는 길가의 돌멩이 혹은 그것을 구성하는 미소한 원자들 사이의 차이가 문제인 우주의 타성적 물체와 같은 신체?의 차이를 고유한 용어로 확정한다. 우리는 첫 번째 의미로 신체를 살chair이라고 부를 것이며, 신체corps라는 단어의 사용은 두 번째 의미에 한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살은 스스로 자기를 느끼고, 고통을 견디고, 자기를 감내하고, 자기를 짊어지며, 항상 다시 태어나는 인상들을 따라서 자기를 향유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p.13~14
요한의 말 그 자체로부터 솟아난다. 왜냐하면 요한은 말씀이 신체를 취했다고, 말씀이 인간의 모습을 입었다고 말하지 않고 그는 말씀이 “살이 되었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살이지 신체가 아니며 만약 살과 신체의 차이가 본질적인 접근으로부터 나타난다면 신체가 아니라 살이 기독교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또한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육화된, 즉 신체를 가진 존재에서 육화의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지성을 이끄는 인도의 끈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요한은 말씀이 이 살의 ‘모습’을 띤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말씀이 “살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형상이나 모습을 띨 수 있는 것은 신체에 의해서일 뿐이다. 반면에 살에 관한 한, 더 엄격하게 말해 육화인 살 안에 도래에 관한 한 요한의 ‘살이 되다’의 의미에서 ‘됨se faire’만이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됨은 더 이상 ‘형상’, ‘모습’, ‘외양’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살이 되는 것은 그 자체 안에서 말씀의 본질과 실재 안에서이다. ---p.38 후설과 하이데거의 저 놀라운 분석들을 거쳐서 현상학이 이른 진리의 가장 본래적인 현상이 현상학에서 아주 결정적이라고 할지라도 이 진리의 개념은 여전히 우리를 어떤 문제 앞으로 인도한다. 순수한 나타남, 순수한 현시, 순수한 현상성이 모든 가능한 현상의 조건이라는 사실, 현상은 우리에게 드러나는 한에서, 그리고 그것 밖에서는 아무것도 드러날 수 없으며 어떤 종류의 현상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나타남을 현상학의 유일하고 진정한 대상으로 현상학적인 반성의 핵심에 놓는다. 그런데 이것은 아직 이 순수한 나타남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도 말하지 않는다.---p.55 자기 자신에 앞서서 존재한 적이 없는 살, 삶의 최초의-고통을 느낄 수 있음 안에서 초월론적인 탄생으로부터, 삶의 말씀으로부터, 그들에게 공통된 정신이 상호적이고 현상학적인 그들의 내재성 안에서 살이 된다. 이미 인용한 전도서에 의하면 “당신들의 신체는 성신의 성전”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된 인간은 흙이면서 동시에 살이다. ---p.478 우리의 살은 자신 안에 자신의 현시의 원리를 지니며, 이 현시는 세계의 나타남이 아니다. 정념적인 자기-인상성 안에서, 자신의 살 안에서, 절대적인 삶의 최초의-고통을 느낄 수 있음 안에서 자기에 주어진 살은 이 살을 자기에서 계시하는 절대적인 삶을 계시한다. 살은 자신의 정념 안에서 삶의 최초의-계시이며 절대의 현전이다. 삶의 밤 한가운데에서 우리의 살은 신이다. ---p.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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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상학자 미셸 앙리
현상학을 통한 삶의 성찰 중요한 것은 현상, 즉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남의 행위’에 있다 존재론적 일원론에 대한 전복적 도전 프랑스 현상학자 중 가장 ‘근본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미셸 앙리는 그의 철학적 성과에 비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이다. 국내 첫 역서인 『물질 현상학』을 통해 후설의 ‘지각 현상학’과 구별되는 논점을 제시했다. 종래 현상학이 가시적인 현상들, 지각할 수 있는 대상들을 중시했던 것에 반해, 앙리는 ‘실재’의 영역까지 현상학의 범위로 확장한다. 더 나아가서 절대적 진리 탐구에 매진하기보다는 현상학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화, 살의 철학』에서 앙리는 고전 현상학이 중시하는 ‘존재론적 일원론’을 비판하면서 ‘나타남의 이중성’에 대해 논한다. 그는 ‘신체corps’와 ‘살chair’을 의미적으로 구분하면서 ‘스스로 자기를 느끼고, 고통을 견디고, 자기를 감내’하는 살은 돌멩이처럼 객관화가 가능한 대상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앙리는 살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자기 외부와의 능동적이고 감각적인 소통의 결과로 보고 있다. 미셸 앙리의 현상학은 고전 현상학이 거부했던 ‘말씀’과 ‘살’의 관계를 부각시킨다. 고전 현상학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비가시적인 ‘물질’과도 같은 살을 가시적이고 명징한 절대적 진리인 ‘말씀’과 엄격히 구별하면서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앙리는 그런 고전 현상학의 관점을 비판한다. 그는 고전 현상학이 절대적 진리로 인식하는 그 말씀이 어디서 오는지, 후설의 현상학에서 중심이 되는 ‘지향성’이 어디에서 오는지 명징하게 논증되지 못했다고 역설하면서 ‘말씀은 살로부터 나온다’는 그의 논의를 전개한다. ‘삶’이 없이는 우리의 ‘존재’도 없다 왜 미셸 앙리는 현상학에서 ‘삶’을 찾는가? 『물질 현상학』과 더불어 『육화, 살의 철학』도 삶의 문제에 대한 앙리의 천착을 보여준다. 앙리는 후설을 비롯한 고전 현상학이 삶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명징하고 절대적인 이성적 지향성은 가시적이고 교리적인 기준으로 삶의 ‘실재성’을 재단하고 우리의 삶을 구속한다는 것이다. ‘물질 덩어리’와 같은 인간의 순수한 욕망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전 현상학은 인간의 욕망을, 삶을 신의 계시와도 같은 엄격한 이성적인 판단으로 온전히 지각할 수 있고 분석할 수 있는 것으로 보며 그들의 입맛에 맞게 규격화한다. 앙리는 이런 이유로 고전 현상학을 통해서는 삶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순수한 삶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규정할 수 없는 실재물인 우리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확고부동한 이성을 깨야 한다. 『육화, 살의 철학』을 통해 앙리는 ‘어떻게 삶이 살 안에 도래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앙리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은 가시적이고 고정적인 세계의 부속물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실재’로서의 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능동적인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삶의 대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