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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7
제자벨 13 옮긴이의 말 297 |
Irene Nemirov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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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석으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창백한 얼굴에 멍하고 지친 기색이 드리웠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 p.15 연극이 끝나면 배우를 잊어버리듯 아무도 그라디스 아이제나흐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제 그녀의 역할은 끝났다. 결국 흔하디흔한 역할이었던 것이다. 치정 범죄와 적당한 형벌. 글라디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글다디스의 미래와 과거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 p.69 적당한 때 시드는 법은 이 작고 빨간 장미꽃만이 아는 거예요. 장미는 말라 죽는 게 아니라 온 생명을 다 바친 다음 소멸해요. --- p.83 행복이란 얼마나 잔인한 선물인가. 세상 만물에 끝이 있듯 너무나 완벽하고 대단한 행복에도 끝이 있기 마련이다. --- p.100 결국 세상에는 하나의 현실, 하나의 행복만 존재해요. 바로 젊음이죠. --- p.101 글라디스 아이제나흐는 아름답고 흠모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종종 마음 밑바닥에서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슬픔과 외로움을 마주했다. --- p.112 세상 어떤 기쁨을 사랑받는 기쁨에 비할 수 있단 말인가? 여자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누군가의 마음에 들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렇게 평범한 기쁨이 글라디스에게는 열정이 되었다. 남자들이 권력이나 재물에 품는 열정과 비슷했다. 글라디스는 해가 갈수록 더 목이 말랐고, 무엇으로도 완벽하게 그 갈증을 채울 수 없었다. --- p.113 알고 있소? 사랑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라는 걸 말이요. --- p.122 언제까지나 젊은 채로 있고 싶어.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 사람들이 나를 두고 글라디스 아이제나흐는 늘 아름다웠지, 하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p.125 내가 내 젊음을 질투하다니. --- p.127 어머, 저에게 딸의 나이를 묻지 마세요. 나이를 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만 말씀드리죠. --- p.130 자신이 엄마를 싫어했듯 자신 또한 마리테레즈에게서 미움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글라디스는 견딜 수가 없었다. --- p.151 늙은이들은 다 똑같아. 인생을 즐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젊은 우리에게 복수하는 거야. --- p.152 늘 그랬어요. 엄마는 제 삶과 행복을 가로채고 싶었던 거예요. --- p.167 구두쇠가 금은보화를 생각하고 야망가가 명예만을 떠올리듯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과 나이에 대한 집착이 글라디스의 몸과 마음을 구석구석 사로잡았다. --- p.206 자신들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강렬한 사람들이 벌인 이야기의 보잘것없는 목격자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어나는 듯. --- p.243 그렇게 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렴풋하지만 복잡한 증오를 키워갔다. 이 증오심으로 베르나르의 삶은 씁쓸하면서도 감미로운 맛을 띠게 되었다. --- p.244 마치 손으로 벌려보고 싶은 상처 같았다. 그로 인해 죽는다 해도 계속 손댈 수밖에 없는 상처. --- p.259 오직 같은 피를 나눈 존재에게 느끼는, 증오가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눈먼 잔혹함 속에서 드러날 때 느끼게 되는 감정. --- p.285 늙었으면 늙은이답게 우리가 당신들한테서 빼앗을 수 없는 것들로 만족하세요. --- p.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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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악하고 아름답다
독자를 복수와 증오의 충실한 공모자로 끌어들인다 아름다움과 젊음에 모든 것을 걸었던 여자 글라디스가 법정에 서 있다. 혐의는 젊은 남자를 유인해 살해했다는 것. 연약해 보이는 그녀가 정말로 그 남자를 죽였을까. 그렇다면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이렌 네미롭스키의 장편소설 『제자벨』은 한 여자의 파멸을 통해 ‘악녀’라는 낙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생히 추적한다. 여자로서의 자신을 끝내 내려놓지 못하며 타인의 삶과 행복을 아무렇지 않게 침범하고 마는 글라디스의 모습에는 작가 자신이 오랫동안 품어온 ‘어머니를 향한 복수심’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프랑스 문단의 샛별로 떠오른 1929년부터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1942년까지, 13년 남짓한 집필 기간 동안 평생치의 작품을 쏟아낸 비운의 작가 네미롭스키를 꾸준히 소개해온 레모는 『제자벨』을 국내 초역으로 펴내며 그의 작품 세계를 한층 선명한 윤곽으로 완성한다. 전쟁과 전쟁 사이, 균열하는 세계의 자화상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글라디스 아이제나흐가 재판을 받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의 죄목은 귀족 애인이 있음에도 아들뻘인 ‘베르나르’를 방에 끌어들여 죽였다는 것. 그러나 글라디스는 눈물로 결백을 호소해야 하는 법정에서도 자신을 감추려고만 한다. 젊은 남자를 유혹하고 소유하려 했다며 세상 사람들이 뒷공론을 늘어놓지만, 그 누구도 글라디스라는 사람의 진짜 인생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일평생 사랑을 좇았으나 단 한 순간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가장 큰 상실에 맞닥뜨린 순간에조차 그것이 상실인 줄도 몰랐던 여자의 이야기를. 그러나 젊음과 아름다움이 진정 권력이라면, 그 유효기간이 다한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 것일까. 『제자벨』은 모든 것을 가진 글라디스가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차갑고 생생하게 그린다. 삶의 전면에서 한발 물러나 다음 세대의 행복을 축복하는 것이 미덕인 나이에 여전히 아름다움과 젊음을 무기처럼 휘두르려 하는 글라디스의 모습이 도덕적 불편함을 안기면서도 쉽게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작가는 글라디스라는 한 사람의 내면에서 그치지 않고 흔들리는 질서와 계급의 균열, 세대 갈등과 같은 그 내면이 자라난 토양까지 샅샅이 들여다본다. 지나간 전쟁의 상처와 다가올 재앙이 안개처럼 드리워진 도시, 불안 속에서 향락에 탐닉하는 귀족들과 날로 팍팍해지는 현실의 벽에 신음하는 서민들, 기성세대에게 기회를 빼앗겼다고 외치는 젊은이들… 저마다 불안과 결핍을 안은 채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1936년 파리의 인간군상이 소설 전체에 핍진성과 긴장감을 더한다. 이렌 네미롭스키만의 눈부신 악의로 가득한 ‘어머니를 향한 복수 3부작’의 절정! 『몰락』을 발표한 1929년부터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1942년까지, 네미롭스키가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13년 남짓이었다. 그중에서도 비시 체제의 반유대주의 법령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 지극히 짧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시간의 틈새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제자벨』이다. 작품의 동력은 작가 자신의 오랜 상처에서 비롯되었다. 부유했지만 불행했던 어린 시절, 딸을 위해 곁을 내어줄 마음이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둔 어머니를 향한 복수심은 작가로 하여금 마음의 어둠을 헤집는 글을 끊임없이 쓰게 했다. 「무도회」(1930)와 『고독의 와인』(1935)을 지나 『제자벨』로 이어지는 ‘어머니를 향한 복수 3부작’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토록 진한 악의와 음습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네미롭스키의 글을 읽는 동안 나는 그가 보여주는 복수와 증오의 충실한 공모자다. 그가 보여주는 추악한 얼굴을, 그래서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얼굴들을 남김없이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유운 시인의 추천사는 『제자벨』을 읽는 경험을 정확히 겨냥한다. 소설의 제목이 된 ‘제자벨(Jézabel)’은 구약성서 열왕기에 등장하는 ‘이세벨’을 프랑스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서구권에서 오랫동안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어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글라디스는 어떻게 ‘제자벨’이 되었을까. 네미롭스키는 그 낙인이 작동하는 방식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여성의 권력으로 여겨지는 젊음과 아름다움, 즉 외모자본이 언젠가는 반드시 만료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그 공포가 한 여성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다른 여성에게 향하는 순간들을. 늙은 여자를 혐오하고 젊은 여자를 증오하며 딸이 ‘여자’가 되는 순간을 막으려는 글라디스의 악행은 사회의 규범을 내면화한 여성이 그것을 다른 여성에게 되돌려주는 자기혐오이자 타자혐오로서의 여성혐오이다. 낙인의 언어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공포의 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너희는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악녀라는 이름을 붙여왔느냐고1930년대의 제자벨이 오늘의 우리에게 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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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렌 네미롭스키는 내가 책상에서 종잇장을 넘기는 나약한 관찰자인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글라디스의 늙은 뺨과, 마리-테레즈의 떨리는 목소리와, 베르나르의 성마른 걸음걸이가 되기를 원한다. 내가 자신의 글을 읽으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증오에 빠져들어 복수를 다짐하는 자신의 공모자가 되기를 바란다. 살과 뼈를 가진, 선명하면서도 추악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을 내 앞에 끊임없이 들이댄다. 네미롭스키의 글을 읽는 동안 나는 그가 보여주는 복수와 증오의 충실한 공모자다. 그가 보여주는 추악한 얼굴을, 그래서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얼굴들을 남김없이 들여다보고 싶다. - 이유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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