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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혐오란 무엇인가?
2장매력적인 거부감 3장기쁜, 맛있는, 혐오스러운 4장미적 혐오의 다양성 5장혐오의 자력 6장심장 7장추악함과 아름다움 |
Carolyn Korsmeyer,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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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혐오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사례들은 인간의 취약성과 필멸성(mortality)을 강한 정도로 주장하며 거기에서 혐오가 물질적이고 본능적인 방식으로 매우 중요하고 미묘한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미적 혐오의 경우에도 도덕적인 반향은 일어날 수 있지만, 내 연구의 대부분은 핵심적이거나 물질적인 혐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즉, 상한 우유·오물·끈끈한 점액질·민달팽이·구더기·이·감염된 상처·곪은 살·썩어 가는 시신 등을 우연히 접할 때 전형적으로 따라오는 정서가 그것이다.
--- p.13 우리 자신의 경계는 이 정서의 그림자 안에서 내적으로 붕괴되는 것이다. 혐오스러운 것들은 인간 신체의 일면, 여성성, 질병, 성, 불가피한 모욕에 연관되어 있기에, 이 정서는 풍성하지만 혼란스러운 차원을 생산하는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실천을 위한 자원이 된다. 우리를 매혹적으로 사로잡는 차원이 이 정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아니지만 거기에 온전히 매력이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당혹스럽기에 이에 대한 탐구와 설명이 필요하다. --- p.64 혐오의 감각적 유발요인을 소환하는 상상의 능력은 그 [혐오] 정서가 모든 역겨움(repulsiveness) 속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한다. 혐오에 대한 가장 극적인 신체 반응은 메스꺼움과 구토, 즉 혐오스러운 물질이 실제로 몸에서 배출되는 가장 불쾌한 신체적 경험이다. 예술은 이러한 신체적 반응을 거의 유발하지 않지만, 예술, 특히 영화와 시각예술, 그리고 문학은 미적 혐오의 좀 더 차분한 성향을 쉽고 빠르게 불러낸다. --- p.93 내가 미적 혐오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청중, 관객, 독자가 예술적 속성을 파악하고 감상의 요소를 구성하는 상황에서 혐오가 유발된다는 것이다. …… 물론 예술은 감상의 차원이 아닌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영화 속 더러운 소재 때문이든 저급한 유머 때문이든) 더 이상 누군가 더는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반감이 생겨서 극장에서 뛰쳐나왔다면, 이는 혐오를 느낀 것이지 감상으로는 간주되진 않는다. 그것이 예술의 질적 측면을 판단하는 데 포함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적 혐오를 드러내는 까다로운 이해와 같은 것은 아니다. --- p.134 다시 말해 혐오는 문화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변할 수 있기에 허구적 인물이나 관객 중 마땅히 어느 한쪽에만 귀속시킬 수 있는 정동이 아니다. 결국 “변장한 사랑”이 보여 주듯 심장은 흔한 음식이었고, 이 사회에서 한때 혐오스러웠던 것이 다른 사회에서라면 사랑 받을 수도 있다. 혐오는 범문화적 정서이면서도, 혐오의 특정 대상들은 가변성을 가지는데 그것이 특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될 때 더 그렇다. …… 미적 혐오는 이런 독특한 공포가 주는 신체적 친숙함을 파악한다. 혐오가 낳는 신체적 경련이 시간의 심연을 가로질러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역사상 그토록 많은 이야기에서 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p.234 혐오를 아름다움의 적절한 동반자로 본 회의주의자들 대부분은 혐오를 생명의 추악하고 지저분한 측면과 관련짓는다. 혐오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인간의 존엄이나 명예와 함께할 수 없으며, 이는 “영혼의 고귀함이라는 개념과 분리할 수 없는” 숭고와 대비된다.1) 혐오를 이용하는 예술 대다수는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움을 의도하지도 않는다. 예술의 혐오스러운 양상들은 재미있고, 비극적이며, 비참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자극적이고, 또한 매혹적이고, 부드러울 수는 있지만, 과연 아름다울 수도 있을까? --- p.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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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일상이 된 시대, 우리는 왜 이 감정에 주목해야 하는가?
우리는 매일 뉴스화면과 SNS에서 ‘혐오’를 목격한다. 특정 집단을 향한 배제, 전쟁의 참혹함,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회적 갈등까지. 혐오는 이제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가장 흔한 정서가 되었다. 대개 사람들은 혐오를 그저 사적인 불쾌감이나 군중심리 정도로 여기고 고개를 돌려버리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미학 이론의 대가 캐롤린 코스마이어가 쓴 혐오 음미하기는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이 ‘역겨운 감정’의 밑바닥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통찰하며, 혐오야말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하고도 은밀한 장치라고 경고한다. 문학작품 속 인물들부터 잔혹 미술까지, 권력이 사랑한 ‘혐오의 역사’ 책은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혐오를 ‘학습’하고 ‘복제’해 왔는지 추적한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속 샤일록이나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속 페긴처럼, 문학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교묘하게 전형화하며 우리를 반복적으로 길들여왔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기 전 전시회와 영화를 통해 혐오 프로파간다를 퍼뜨렸던 것처럼, 혐오는 늘 권력관계 속에서 차별과 배제의 통치 수단으로 실현되어 왔다. 저자는 고야의 잔혹한 전쟁 판화와 현대 미술가 채프먼 형제의 훼손된 시신 조형물 등을 통해, 왜 인류의 역사에서 폭력과 혐오의 장치가 사라지지 않는지를 날카롭게 되묻는다. 머리가 아닌 ‘내장’이 먼저 반응하는 직접성의 힘 이 책이 기존의 인문학 책들과 궤를 달리하는 지점은 혐오를 이성적으로 통제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혐오를 ‘내장적(visceral)’ 반응이라 명명한다. 썩어가는 유기체나 끔찍한 사체를 보았을 때, 우리는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온몸으로 진저리치며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 책의 제목인 ‘음미하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거리를 두고 고상하게 관조하는 미학이 아니라, 혐오가 주는 그 생생하고 노골적인 충격을 온몸으로 밀착해 겪어내는 체화된 경험이다. 저자는 혐오가 가진 이 직접적이고 강렬한 에너지야말로, 역설적으로 기존의 가짜 위선들을 단숨에 폭로하고 무너뜨리는 강력한 ‘반동의 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추하고 불쾌한 것들이 전하는 뜻밖의 긍정적 가치 전통적인 미학은 주로 아름답고 긍정적인 것만 다루어왔다. 하지만 혐오 음미하기는 불쾌하고 부정적인 혐오 경험 속에도 삶과 죽음의 순환, 신체의 순결함을 지키려는 본능, 그리고 거대한 권력에 저항하는 전복적인 가치가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밀어내려고 할수록 자석처럼 다시 이끌리게 되는 혐오의 미학적 역설을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눈을 얻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