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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하루의 끝에 모여서 맛보는
향긋한 여름밤의 축제! “내가 들고 갈게.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들면 돼요.” 무료한 여름 한낮, 방바닥에 배를 깔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던 동하는 시장에 다녀오겠다는 엄마의 목소리에 눈이 커진다. 오늘만큼은 꼭 시장에 따라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철을 타고 다섯 정거장을 가서 큰 시장에 도착한 동하를 먼저 반기는 것은 언제 맡아도 좋은 자동차 냄새다. 갖가지 물건과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찬 시장은 마치 축제 같다. 그러나 구경하는 내내 동하의 머리 위로 해는 줄곧 이글대고, 땀은 줄줄,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그냥 집에서 놀걸, 후회하던 동하의 눈에 산처럼 쌓여 있는 수박이 보인다. 초록색과 검정색의 멋진 무늬, 저 껍질을 열면 붉디붉은 속살에서 시원한 향기가 날 것 같다. 물이 줄줄 흐르는 속살을 한입 베어 물면 목마름과 더위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다. 때마침 수박 장수는 통통 맑은 소리를 들려주고, 솜씨 좋게 칼끝을 움직여 뾰족하게 자른 맛보기 수박을 보여 준다. 동하는 오늘, 이 수박을 꼭 사야겠다! “엄마, 이 길이 그 길이 맞아? 우리 집 가는 길?” 결국 자기 몸통만 한 수박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 동하는 전철에 탄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보는 것만 같다. 아이가 저렇게 커다란 수박을 너끈히 들고 가다니 대단하다고 여기겠지 싶어서 괜히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동네에 도착해 둑길을 걷는데 동하의 팔이 점점 늘어진다. 감싸 안아도 보고 무릎으로 받쳐도 보지만 걸어도 걸어도 집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오늘 밤 과연 동하네 식구들은 저녁을 먹고 나서 시원한 수박 파티를 열 수 있을까? 화가 장선환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감각과 기억, 그리운 나날들 『선로원』 『나는 노을빛이 되어 날아올라요』처럼 삶을 관통하여 흐르는 묵직한 이미지를 선보인 작품, 『물총 팡팡』 『파도타기』처럼 자유로운 에너지로 공간을 구축하는 작품, 단순함의 미학을 갖춘 아기 그림책들부터 『나는 흐른다』 『안개 숲을 지날 때』처럼 새로운 텍스트를 신비롭게 시각화하는 작품까지, 화가 장선환은 독자에게 드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여 왔다. 『수박을 샀다』에 펼쳐지는 화폭은 수채와 오일파스텔, 과감하게 변화하는 구도, 그리운 풍경과 정감 가는 캐릭터들로 조화롭게 채워진다. 마른 재료와 물기 있는 재료의 질감이 부딪치며 만들어지는 재미난 표현들 속에는 여름의 다양한 조각들이 들어 있다. 높게 자란 풀들, 붉은 저녁놀, 모기향의 냄새와 빨랫줄의 비누 향기까지, 긴 하루를 채우는 정겨운 감각들이 품어 전하는 것은 스스로 한껏 자라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다. 동하가 남기고 간 여름의 조각들로 또 다른 작은 손님들이 한밤의 파티를 즐긴다. 이런 밤들이 쌓이고 쌓이며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